미군은 '레드팀' 일부러 만들었다…한국 검찰도 꼭 필요한 이유 [Law談-윤웅걸]

중앙일보

입력 2022.06.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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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검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검사장이나 부장검사 등 상관은 나쁜 악당, 젊은 평검사는 정의로운 사람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검찰의 의사 결정 과정을 그리면서 극적인 재미를 높이기 위해 그런 설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열정과 패기를 가진 주임검사는 나무는 볼 수 있으나 숲은 보기 어렵고, 경험과 경륜을 갖춘 상관들은 숲은 볼 수 있으나 나무는 보기 어렵다. 위와 아래의 지혜를 모아 나무와 숲을 다 보고 적정한 결론을 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할 것이다.

검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 '비밀의 숲 2' . 사진 TVN

검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 '비밀의 숲 2' . 사진 TVN

검찰은 의사 결정을 하면서 ‘주임검사-부장검사-차장검사-검사장’의 순서에 따른 수직적인 결재 제도를 거친다. 중요한 사건은 ‘지방검찰청-고등검찰청-대검찰청-법무부’ 등 상급 기관에 대한 보고 과정을 거치면서 대검찰청, 법무부도 의사 결정에 참여하게 된다. 통상 고등검찰청은 보고만 받고 의사 결정에는 배제된다. 검찰을 장악한 정치권력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통해 검찰의 의사 결정에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검찰청법 제8조의 취지는 정무직으로서 대통령의 참모인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구체적 사건에 관여해서는 안 되고, 검찰총장에게는 정치적 외압을 견뎌내라는 의무를 부여한 것으로 이해된다. 정치권력의 의사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단계에서 차단돼야 한다는 것이 법의 정신인 것이다. 특히 정치권력이 수사의 대상이거나 사건의 일방 당사자인 경우 민정수석실이 검찰의 의사 결정 과정에 개입하는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면에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민정수석실을 폐지한 것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려는 노력으로 읽힌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이전의 추미애, 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검찰총장에게 남발했던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지 않겠다고 하니 기대해 볼 만한 일이다. 다만,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고도 정치권력이 인사권 등을 활용해 사실상 검찰을 장악하거나, 법무부 장관이 공식적인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지 않는 대신 과거처럼 은밀하게 구체적 사건에 수사지휘를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민정수석실을 폐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는 민정수석실을 폐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검찰은 결재 또는 보고 과정에서 각 구성원의 경험·지식·가치관 등 내적 요소와 여론·압력 등 외적 요소에 따라 의견 충돌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의견 충돌은 검찰 내에 상시로 존재하고 건강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도 있으므로 의견 충돌 자체를 이상하게 볼 것은 아니다. 의견 충돌이 있는 경우 대부분 합리적으로 해결되기는 하나, 어떤 경우에는 상하 간에 극심한 대립과 긴장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검찰 내 의견 충돌로 국민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사건은 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이다. 대선 과정에서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포털사이트 등에 조직적으로 댓글을 단 국정원 직원들에게 국정원법(정치관여 금지)만 적용할 것인지, 선거법까지 적용할 것인지를 두고 수사팀부터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결재선상의 모든 이들의 의견이 양쪽으로 갈라져 대립하는 전쟁 같은 상황이 전개됐다. 결재·보고선 층층이 공안부 라인과 특수부 라인이 겹쳐 있었는데 대략 특수부 라인은 선거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안부 라인은 선거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위 사건은 수사팀의 의견대로 선거법 위반을 포함해 기소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당시 윤석열 수사팀장은 권력에 항명했다는 이유로 좌천돼 그 후 상당 기간 지방을 떠도는 신세가 됐다. 위 사건이 기소된 후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에 임명된 필자는 공안부를 지휘해 위 사건의 공소 유지를 맡게 됐다. 그러던 중 1심에서 국정원법 위반은 유죄, 선거법 위반은 무죄가 선고됐는데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안부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충돌 없이 선거법 위반 무죄에 대해 불복하고 항소를 결정했다. 항소한 사유는 1심 재판부가 선거법 위반에 무죄를 선고하면서 디지털 증거의 증거 능력에 대해 불합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오로지 객관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 후 2심에서 선거법 위반에 대해 유죄가 선고됐고,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도 그렇게 확정됐다.

위 사건의 재판에서 선거법 위반에 대한 유·무죄가 오락가락했으나, 수사 당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치열하게 대립했나 싶을 정도로 재판은 평화롭게 진행됐고 법리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론이 났다. 수사 당시 의견 대립 과정에서 검사로서 다들 각자의 소신과 가치관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검사는 수사가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하면 안 된다”는 일본의 전 검사총장 요시나가 유스케의 말처럼 의견이 대립했던 양쪽 모두 검사로서 선거법 적용을 매개로 정권에 타격을 주거나 아니면 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없었기를 바랄 뿐이다.

검찰 내부 구성원 간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국민에게는 큰 충격을 안긴 위 사건은 많은 검사가 지휘 계통상에서 의견 충돌이 있는 경우 어떻게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을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검찰청법 제7조 제2항은 ‘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상급자의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에 대하여 이견이 있을 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는 있으나, 지휘·감독하는 상급자와 이의를 제기하는 검사 중 누가 적법하고 누가 정당한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모습.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모습. 연합뉴스

검사의 의사 결정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직적·단선적 의사 결정 구조로 인해 조직 편향적인 결론이 도출되기 쉬운 취약점이 있다. 검찰 내 의사 결정 과정에서는 기존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기보다 오히려 자기 생각을 더 공고히 하려는 경향인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초기 정보에 사고가 얽매여 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인 앵커링(anchoring), 응집력이 강한 구성원 간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만장일치를 이루려는 경향인 집단사고(group think), 구성원들의 의견이 리더 또는 제안자의 의견으로 모아지는 경향인 폭포효과(cascade effect) 등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아울러 고집이 세고 목소리 큰 구성원의 의견이 관철되는 오류도 나타날 수 있다.

검찰의 조직편향(group bias)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수직적 결재 제도 이외에 수평적 의견 교환이나 다양한 관점과 입장, 특히 반대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 사례들이 많이 있다. 먼저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은 카톨릭의 성인 추대 심사에서 후보의 불가 이유를 집요하게 주장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으로 의도적인 반대 입장을 취하면서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한 것이다. 조선시대 어전회의에서는 호조판서에게 모든 안건에 무조건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임무를 부여해 의견의 균형을 잡도록 했다고 한다. 미군은 내부 전략 수립에 개입되지 않은 독립적인 레드팀(red team)으로 하여금 적군의 입장에서 아군의 기존 가설을 공격·검증하고 나아가 대체 방안까지 제시하게 하는 방식을 활용하는데, 이것은 세계적 다국적 기업이나 미국 대형로펌 등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 내 수직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의견 대립이 발생한 후 갈등만 증폭되고 결론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신속히 수평적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해당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내부 구성원 또는 외부 인사들로 심의회를 구성하고 의견이 대립하는 당사자들이 심의회에 참석해 위원들을 합리적으로 설득해 내는 쪽의 의견을 채택하는 방법을 말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여한 모두가 그 결론에 승복하는 것이다. 이에 검사장 등 의사 결정의 최상급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다른 결론이 나더라도 승복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 더 나아가 수직적 결재 과정에서 모든 구성원이 같은 의견에 동의했더라도, 중요한 사건에 대하여는 혹시라도 있을 집단 편향을 제거하기 위해 의도적 반대 의견을 제시할 레드팀을 구성해 기존 의견에 대해 혹독한 점검을 하게 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일본 검찰의 경우 2009년 오사카지검 특수부 검사의 증거 조작 사건이 발생한 후, 수년간의 연구 끝에 공판부 검사를 ‘총괄심사검찰관’으로 지정해 주임검사와는 다른 입장에서 변호인의 시각까지 고려해 수사에서 사실관계나 법령 해석상 문제점이 없는지를 심사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일본 검찰이 수직적 결재 과정에서 오는 오류를 개선하기 위하여 레드팀의 역할을 하는 수평적 견제 장치를 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리 검찰도 위와 같은 요소들을 일부 적용한 ‘합리적 의사결정 시스템’, ‘검찰시민위원회’ 등을 가동 중이나 요즈음도 언론을 통해서 보면 정작 이러한 시스템을 활용해야 할 중요 사건에서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의사 결정 참여자 간에 극심한 대립을 수습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의 대립과 갈등을 방치하지 말고, 집단 편향을 제거하거나 합리적 의사 결정을 도출하기 위해 수평적 다수가 참여하는 관련 제도를 연구·보완하고 이를 적극 적용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이점을 살려야 할 것이다.

로담(Law談) : 윤웅걸의 검사이야기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과 경험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검사와 검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형사 사법제도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합니다.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전 서울지검 2차장검사/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제주지검장/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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