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없는 나라…누구의 천국일까? 이곳 보면 알 수 있다 [Law談-윤웅걸]

중앙일보

입력 2022.05.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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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검사로 일하던 시절 동료들과 가끔 농담처럼 “판·검사와 의사가 실업자가 되면 그곳이 천국이다. 죄인도 병자도 없는 것이니까”라는 말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불행히도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어서 그런지 판·검사나 의사가 없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나라 중에서 비교적 최근까지 검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거나 상당 기간 검사가 사라졌던 나라가 있다. 바로 영국과 중국이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를 불과 며칠 앞두고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공포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임기를 불과 며칠 앞두고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공포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검찰 깃발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연합뉴스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다수의 대륙법계 국가들이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으로 태동한 검찰 제도에 따라 수사권과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가진 검사가 형사소추를 담당하는 ‘국가소추주의’를 발전시켜온 데 반해, 영·미법계의 원조인 영국은 개인도 형사 소추를 할 수 있는 ‘사인소추(私人訴追) 제도’의 영향으로 검사 없이 경찰이 수사는 물론 기소까지 하는 체제를 비교적 최근까지 유지했다. 영국은 그야말로 검사가 없는 나라였다.

그런데 경찰이 기소한 사건에서 무죄가 속출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표출되자, 영국은 1980년대 중반에 와서야 ‘기소청(CPS)’을 설치함으로써 비로소 법률가인 검사가 기소권을 행사하는 검찰 제도를 가지게 됐다. 검찰 제도의 걸음마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국도 검사가 수사자문(advice)을 통해 초동 단계부터 경찰 수사에 개입해 그에 대한 사법적 지원과 통제를 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등 그 기능과 역할을 확대해 오고 있다.

중국은 청나라 말기에 대리원심판편제법 등을 공포하면서 서구식 검찰 제도를 도입한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으로 소련식 검찰 제도를 가미해 이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1950년대 대약진운동 등을 거치면서, 문명국가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검사가 법률에 따라 직권을 독립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특권 의식에 기초해 ‘공산당의 지시나 결정에 항거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1966년부터 약 10년간 진행된 문화혁명 동안에는 검찰이 ‘인민의 적’으로 간주돼 각급 인민검찰원이 차례로 폐지됐고, 1975년 제4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회의에서 헌법을 수정해 급기야 “검찰기관의 권한은 각급 공안기관에서 대신 행사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검사의 권한을 모두 경찰인 공안에 넘겨주고 검찰 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주요국 검찰 수사 및 수사지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주요국 검찰 수사 및 수사지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 후 문화혁명이 끝나면서 대중노선에 의한 인민재판으로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처벌을 받았다는 반성과 함께 현대적 사법제도와 법치주의의 중요성을 실감한 중국은 1978년 헌법을 다시 수정해 인민검찰원 재건 등 검찰 제도의 복원을 시도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아직 서구의 검찰 제도와 많은 차이가 있다. 선진국 그룹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이 헌법이나 형사소송법으로 검사에게 수사권과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부여한 반면, 중국은 수사의 주도권이 경찰인 공안에 주어져 있고 검사의 주된 역할은 수사보다는 기소심사로서 그 수사권은 직권이용, 인권침해범죄 등 일부 범죄에 한정돼 있다.

그나마 2018년 중국판 공수처인 ‘국가감찰위원회’가 설치되면서 검사에게 남은 일부 수사권마저 유명무실하게 됐다. 그 외 중국의 검사는 공안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없고 공안이 보내온 사건에 대한 기소심사 과정에서 공안에 보충수사(補充搜査·중국식 표현은 补充侦查)를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중국은 검사가 그저 공안이 결정한 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공안 우위의 수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위 내용은 중국의 형사소송법에서 발췌한 것인데, 문재인 정부가 이른바 ‘검찰개혁’이라고 조치한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국도 구한말 이래 서구의 검찰 제도를 본받아 검사가 수사의 주재자로서 수사권을 보유하고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행사해 왔으나, 문재인 정부는 중국처럼 경찰의 수사권은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검사에 대하여는 부패수사 등 6대 범죄만 수사할 수 있도록 수사권을 제한했다. 그리고 검사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폐지해 검사가 경찰 수사를 통제할 수 있는 기능을 없애고, 대신 중국식 ‘보충수사 요구권’과 유사하게 용어만 바꿔 검사에게 ‘보완수사(補完搜査) 요구권’을 부여했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검수완박 법안을 규탄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검수완박 법안을 규탄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임기 종료 며칠 전 문재인 정부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다수 의석의 입법권을 동원해 일부 범죄에 남아 있는 검사의 수사권마저도 박탈함으로써 검사로부터 수사에 관한 모든 권한을 박탈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는 것을 감행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권 박탈은 그 절차나 내용에 있어서 마치 중국 공산당이 문화혁명을 통해 검찰을 단계적으로 폐지해 나가는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중국이 문화혁명을 통해 검찰을 폐지한 결과가 참담했던 것처럼, 검수완박의 종착점은 권력이 있는 사람은 처벌하기 어렵게 되고 일반 국민들은 수사과정에서 피해 회복이나 인권 보장을 받기 어렵게 되는 상황으로 귀결될 것이다.

검사가 없어도 천국 같았던 영국도 경찰 제도만으로는 사법 제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결국 검찰 제도를 도입해 검사가 기소뿐 아니라 수사에도 관여할 수 있게 했다. 한편, 검찰 제도를 폐지한 문화혁명 기간 동안 인민재판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생명을 잃고 처벌을 받은 중국은 그 누구도 천국이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검사에게서 수사권을 몰수하는 검수완박은 그간 문명 세계에서 발전시켜온 검찰 제도에 종언을 고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본질적 의미의 검사, 세계 표준의 검사는 대한민국 땅에서 사라지게 된다. 검사가 없는 세상이 범죄자의 천국, 권력자만의 천국이 아닌 진짜 모두에게 천국이었으면 좋겠다.

로담(Law談) : 윤웅걸의 검사이야기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과 경험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검사와 검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형사 사법제도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합니다.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서울지검 2차장검사/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제주지검장/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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