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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싱가포르판 공수처도 문제 많다…그래도 꼭 살리겠다면 [Law談-윤웅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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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독일·프랑스·일본·미국 등 사법 선진국들의 제도를 따른 것이 아니라, 공수처 도입론자들이 명시적으로 밝힌 바와 같이 동남아시아 일부 도시국가에서 시행하는 부패 수사기구를 본떠 설치한 것이다.

지난해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 모습. 장진영 기자

지난해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 모습. 장진영 기자

공수처와 같은 수사기관을 설치하는 이유는 대략 3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째, 검찰 제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국가에서 부패한 기존 수사기관을 대체하기 위해 만든 경우로서 홍콩의 염정공서(ICAC),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CPIB), 인도네시아의 부패근절위원회(KPK) 등이 있다. 둘째, 장기 집권의 목표 하에 부패 척결을 명목으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만든 경우로서 중국의 국가감찰위원회가 있다. 셋째, 검찰의 정치적 편파성이 문제가 돼 이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경우로서 그 예는 찾아보기 어려우나 굳이 분류하자면 한국의 공수처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공수처법은 그 제정 이유에서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등의 범죄를 독립된 위치에서 수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치한다”고 그 도입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한국 검찰만큼 전직 대통령이나 장·차관,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많이 수사하는 수사기관은 세계적으로도 드물기 때문에 한국 검찰의 고위공직자 수사 실적이 미진해 공수처를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공수처는 국민이 검찰에 대해 가장 문제가 있다고 보는 부분, 즉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는 수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죽은 권력에는 가혹한 잣대를 대는 등 그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키지 못하였다는 것을 이유로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설치됐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공수처 도입론자들은 제정 이유 등을 통해 “홍콩의 염정공서와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이 공직자 비위 근절과 함께 국가적 반부패 풍토 조성에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밝히고, 이들을 모델로 해 공수처 도입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공수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위 두 기관도 생각하는 것만큼 그다지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은 경찰의 아편 강탈 관여 등 부패가 만연하자 1952년 설치됐고, 홍콩의 염정공서는 경찰 고위 책임자가 거액을 횡령하고 해외로 도주한 사건이 계기가 돼 1974년 설치됐는데, 이러한 기관들은 검찰 제도의 발달이 미약한 영연방 도시국가에서 설치됐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위 기관들이 부패 수사에 일정 부분 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나, 홍콩에서는 도청·감시·몰래카메라·미행 등 불법적 수사 방법으로 사회적 파장이 있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 독립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탐오조사국 자체의 비리가 문제 되기도 했고, 정부 비판 인사에 대해 정치적 기획 수사를 벌였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 외 공수처 유사 기관인 인도네시아의 부패근절위원회는 장기 집권한 전직 대통령의 부패 의혹이 계기가 돼 2003년 발족됐는데, 경찰국장의 부패 혐의를 수사하던 중 그 위원장이 살인교사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것을 1차로 해 수차례의 ‘도마뱀(부패근절위원회) 대 악어(경찰) 케이스’가 발생하는 등 수사기관 간의 소모적인 갈등과 충돌이 계속됐다. 그런 와중에 부패근절위원회가 권한남용 등으로 물의를 빚자 인도네시아 국회는 부패근절위원회를 감시할 ‘감독위원회’를 설치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기는 등 ‘옥상옥(屋上屋)’의 또 다른 감시 기구까지 만들게 됐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경기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는 모습.뉴스1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이 경기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는 모습.뉴스1

중국은 2018년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공직자에 대한 심도있는 반부패 작업을 펼치기 위해 ‘중화인민공화국 감찰법’을 통과시킴으로써 공수처 유사기관인 국가감찰위원회를 설치했다. 국가감찰위원회에는 공직자 및 공직 수행 사인(私人) 등 특정 범위의 사람들에 대해 압수수색, 재산조회 및 재산동결, 최대 6개월의 인신구속, 심문 등 강제수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됐다. 그러나 국가감찰위원회는 부패 척결을 명목으로 삼고 있음에도, 부패를 내세운 효율적인 정적 제거 등 최고 통치권자인 주석의 권력 공고화와 장기 집권에 기여하고 있다는 언론의 혹평을 받고 있다.

공수처의 원형 기관 또는 유사 기관 모두 위와 같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으므로, 이런 기관들을 본떠 만든 한국의 공수처 역시 같은 문제점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출범한 지 1년 남짓한 공수처에 대해 민간인 사찰, 불법 압수수색, 피의자 권리침해 등 여러 가지 논란이 발생하자, 공수처의 설립을 주도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마저 “공수처에 대한 국민적 여망과 기대가 충분히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저 역시 일정 부분 실망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공수처는 1996년 참여연대의 '부패방지법' 입법청원으로부터 논의가 시작됐다고 하는데, 그러한 참여연대의 공익법센터 소장 출신 양홍석 변호사도 “공수처 사건을 담당하는 특검을 설치해야 한다, 기소든 불기소든 공수처가 한 수사를 믿을 수가 없지 않은가”라고 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무엇을 위해 공수처를 만들었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공수처를 꼭 존속시켜야 한다면, 검찰이 지닌 2가지의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 존재 의의를 다시 부여하는 것이 좋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신분이던 지난 2월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사법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공수처 정상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신분이던 지난 2월1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사법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공수처 정상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뉴스1

첫째, 고위공직자 수사에 대한 경험과 인프라가 풍부한 검찰에 고위공직자 부패 수사를 전담시키되, 검찰이 권력에 대한 수사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 그간 특별검사에게 맡겼던 부분을 공수처에 맡기면 될 것이다.

둘째, 검사 비리에 대해 4차례 발동된 특임검사가 문제 된 검사들을 모두 구속하는 등 검찰 자체적으로 검사 비리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있었음에도, 일부 특정 사건에서 ‘제 식구 감싸기’라는 국민적 비판이 거세게 일어 검사 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이므로 이에 대해 공수처가 수사권을 발동하는 것은 바람직할 것이다.

공수처는 원형기관과 유사기관이 가진 문제점에 더해 그 규모나 역량에 비추어 너무나 많은 짐을 지고 있어 기존 검찰에 못지않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따라서 공수처에는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상실하는 사건과 검사 비리 사건 등 소수의 사건에만 그 수사력을 집중하게 함으로써 공수처 역할의 실질화는 물론 검찰개혁의 성과와 함께 국가적 반부패 역량의 효율성까지 도모하는 방안을 제시해 본다.

로담(Law談) : 윤웅걸의 검사이야기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과 경험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검사와 검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형사 사법제도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합니다.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서울지검 2차장검사/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제주지검장/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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