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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형 제도, 中닮음꼴 만드나...검수완박은 개혁 탈 쓴 개악 [Law談-윤웅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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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검사를 수사에서 배제하고 기소만 하게 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 것처럼 호도하면서 검사로부터 수사권과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박탈하고, 이를 이른바 ‘검찰 개혁’이라고 포장했다. 그러나 수사에 관한 권한을 전적으로 경찰에게 맡기고 검사는 기소만 하는 제도(이른바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중시하는 서구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우므로 이를 세계적 추세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에 가깝다.

지난 2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임명장을 받은 검사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임명장을 받은 검사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뉴스1

결론적으로 검사에게 수사권, 수사지휘권 등 수사 관련 권한을 법률로 인정하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이고, 특히 서구 선진국들의 전통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대부분의 국가들이 형사소송법을 통해 검사에게 수사권, 수사지휘권을 인정하고 있고 오스트리아·스페인·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는 이를 헌법으로도 규정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주요 국가들의 형사소송법 등 규정을 살펴봄으로써 검사에게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이 법률상 부여되고 있는 것이 세계적 표준임을 밝혀보고자 한다.

대혁명 이후 검사 제도를 가장 먼저 시작한 프랑스는 그 형사소송법에서 “경찰에 대한 지휘의 일환으로, 검사는 경찰에 일반적인 지시나 구체적인 지시를 할 수 있다(Dans le cadre de ses attributions de direction de la police judiciaire, le procureur de la République peut adresser des instructions générales ou particulières aux enquêteurs), 검사는 형벌 법규에 반하는 범죄의 수사 및 소추를 위하여 필요한 일체의 처분을 행하거나 또는 이를 행하게 한다(Le procureur de la République procède ou fait procéder à tous les actes nécessaires à la recherche et à la poursuite des infractions à la loi pénale)”라고 규정하여 검사에게 수사권과 경찰에 대한 일반적, 구체적 수사지휘권을 부여하고 있다.

독일의 형사소송법을 보면 “검사는 모든 종류의 수사를 스스로 수행하거나 경찰을 통하여 수행할 수 있다(Die Staatsanwaltschaft befugt Ermittlungen jeder Art entweder selbst vorzunehmen oder durch die Behorden und Beamten des Polizeidienstes vornehmen zu lassen)”라고 규정하여 역시 검사의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을 인정하고 있다.

일본의 형사소송법은 “검사는 스스로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検察官は自ら犯罪を捜査することができる), 검사는 경찰에 대하여 그 수사에 관하여 필요한 일반적 지시를 할 수 있다(検察官は司法警察職員に対しその捜査に関し必要な一般的指示をすることができる), 검사는 스스로 범죄를 수사하는 경우 필요한 때에는 경찰을 지휘하여 수사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検察官は自ら犯罪を捜査する場合において必要があるときは司法警察職員を指揮して捜査の補助をさせることができる)”라고 규정하여 검사에게 수사권과 함께 경찰에 대한 일반적 수사지휘권과 구체적 수사지휘권을 인정하고 있다.

주요국 검찰 수사 및 수사지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주요국 검찰 수사 및 수사지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국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미국 검사는 수사권이 없다’고 터무니없는 말을 하자, 미국 검사들이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를 반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생겼다.

미국의 연방검사 직무규정(USAM)은 “형사 사건과 관련된 연방검사의 권한, 재량권, 책임은 열거된 것에 제한 없이 다음을 포함한다. A. 의심되는 또는 혐의를 받는 미합중국에 대한 범죄의 수사. B. 적절한 연방법집행기관으로 하여금 수사가 실행되도록 하는 것(The authority, discretionary power, and responsibilities of the United States Attorney with relation to criminal matters encompass without limitation by enumeration the following: A. Investigating suspected or alleged offenses against the United States, B. Causing investigations to be conducted by the appropriate federal law enforcement agencies)”이라고 규정하여 검사에게 수사권은 물론 미 연방수사국(FBI) 등 연방법집행기관에 대한 지휘권이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항을 가지고 있다.

위와 같이 서구 선진국들이 법률에 의해 검사에게 수사권을 부여하고 수사지휘권으로 경찰 수사를 통제하도록 한 반면, 중국은 그 형사소송법에서 “형사사건과 관련된 수사, 구금, 체포의 집행, 예심 등은 공안 기관의 책임으로 한다(对刑事案件的侦查, 拘留, 执行逮捕, 预审, 由公安机关负责)”라고 규정하여 수사는 공안(경찰)에서 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선언하고 있다. 즉 서구 선진국들이 수사의 주재자를 검사로 규정한 것과는 달리 중국은 경찰을 수사의 주재자로 삼고 있는 것이다.

중국 검사에게는 공안에 대한 수사지휘권도 인정되지 않아, 검사가 당(黨)과 공안이 결정한 것과 다른 의견을 내거나 공안의 수사를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국 중국은 제도적으로 검사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경찰의 수사를 통제할 수 있는 세계 표준의 ‘검사가 있는 나라’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중 두 번째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표결 절차에 들어선 가운데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가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중 두 번째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표결 절차에 들어선 가운데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가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문재인 정부가 완성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그간 서구 선진국들의 제도를 본받아 시행돼온 대한민국의 검찰 제도를 공교롭게도 중국의 검찰 제도와 닮은꼴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 검찰에 많은 문제점이 있고 이를 개혁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필요한 일이다. 그렇다고 검사에게서 수사권과 수사지휘권을 빼앗아 정치 권력에는 면죄부를 주고 국민의 인권 보장에는 취약한 사법제도를 만든 것은 개혁의 탈을 쓰고 개악의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검찰 개혁은 서구 선진국 제도의 틀을 유지하면서 한국 검찰이 서구 선진국 검찰에 비해 무엇이 문제인지를 분석해, 새로운 방향을 잡아 다시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

로담(Law談) : 윤웅걸의 검사이야기

검찰의 제도와 관행, 검사의 일상과 경험 등을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검사와 검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이를 통해 바람직한 형사 사법제도의 모습을 그려 보고자 합니다.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변호사

※윤웅걸 법무법인 평산 대표변호사. 전 서울지검 2차장검사/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제주지검장/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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