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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엄마와 드라이브 좋아했는데" 15세 아들 황망한 죽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엄마따라 주자창 갔다가 변을 당해" 
 7일 낮 12시 경북 포항시 북구 경북포항의료원 장례식장.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침수된 포항 남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사망한 7명의 빈소가 마련됐다. 빈소와 복도 곳곳에서는 갑작스런 재해로 가족을 떠나보낸 유족과 조문객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50대 엄마와 함께 지하 주차장을 갔다 숨진 A군(15)의 빈소는 이 장례식장 2층에 마련됐다. A군을 아는 유족 지인들은 연신 울먹이며 “우리 ○○야…. 얼마나 착하고 엄마를 잘 따랐는데 어떡해”라고 통곡했다.

 7일 오후 2시쯤 경북 포항 북구의 경북포항의료원 장례식장에서 A(15)군 친구들이 조문하고 있다. 김군은 지난 6일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침수된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엄마와 함께 갔다 실종, 숨진 채 발견됐다. 안대훈 기자

7일 오후 2시쯤 경북 포항 북구의 경북포항의료원 장례식장에서 A(15)군 친구들이 조문하고 있다. 김군은 지난 6일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침수된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엄마와 함께 갔다 실종, 숨진 채 발견됐다. 안대훈 기자

조문을 하러 온 A군의 친구들은 “친구랑 약속 있어도 엄마가 가자고 하면 약속을 깨고 갔을 정도로 어머니를 잘 따랐던 친구”라고 기억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B모(15)군은 “(A군이)엄마랑 차 타고 드라이브도 가고, 엄마가 장 보러 가자고 하면 장 보러 선뜻 잘 갈 정도로 엄마랑 찰싹 붙어 다녔다”고 했다.

"엄마랑 드라이브 좋아해"
A군 어머니 C씨(52)씨는 지난 6일 오후 9시41분 구조돼 인근 포항성모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B군은 “친구가 가끔 위험하게 놀아서, 제가 ‘너 그러다 죽는다’고 하면 저한테 ‘너보다 오래 살거야’라고 매일 말하곤 했다”며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말없이 떠나버리니 잘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B(15)군이 친구 A(15)군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하지만 답장은 받을 수 없게 됐다. 안대훈 기자

중학교 2학년 B(15)군이 친구 A(15)군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하지만 답장은 받을 수 없게 됐다. 안대훈 기자

B군은 사고 당일인 6일 오전 9시에도 A군과 같이 놀기로 약속했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 오전 7시부터 1시간 단위로 전화했지만 A군은 받지 않았다고 한다. B군은 실종자 수색이 진행되는 6일 밤늦게까지 사고 현장에서 자리를 지켰다. B군은 친구의 안타까운 소식을 알게 된 이후 40통이 넘는 문자 메시지를 친구에게 보내고 있다. 답장을 받을 수 없는 메시지다. B군은 “왜 넌 지금 간 걸까. 너 만약에. 만약에. 내 꿈에 나온다면 나와줄 수 있을까? 한번만 나와줘”라고 메시지를 썼다.

A군은 사고 당시 주차장으로 나선 어머니를 따라갔다고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병원 관계자는 “C씨가 사고 당시 두려움으로 인해 좀더 안정을 취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말했다.

70대 노모 모시던 50대도 사고 당해  
72세 노모를 모시고 살다가 사고를 당한 D씨(52) 유족도 고인의 영정 앞에서 숨죽여 울었다. D씨는 1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72)와 함께 침수 사고가 난 아파트에서 살았다.

D씨의 친동생인 E(45)씨는 “어제 새벽 비가 많이 와서 서너번씩 어머니가 괜찮으신지 물어봤다”며 “오전 7시쯤 어머니한테서 ‘형이 차를 가지러 갔다가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전화를 받고 아파트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C씨는 휴대전화를 방에 놓고 가는 바람에 연락도 되지 않았다.

11호 태풍 힌남노로 인명피해가 난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소방 관계자가 물을 퍼내고 있다. 연합뉴스

11호 태풍 힌남노로 인명피해가 난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소방 관계자가 물을 퍼내고 있다. 연합뉴스

E씨는 어머니 전화를 받고 20분을 걸어서 D씨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는 “주차장 입구를 보니 이미 물이 가득 차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며 “어머니가 형 소식을 듣고 식사를 제대로 못하실 정도로 충격을 받으셨다”고 했다. D씨는 1990년대 초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이후 대학 강사로 일했다고 한다.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다.

E씨는 “형은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아 교수가 되는 게 목표였던 것 같다”며 “집 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졸업한 이후 학업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대학에서 강사 일을 하며 생활했다”고 말했다. 홍씨는 D씨와 함께 살았던 노모를 걱정했다. 그는 “형은 어머니가 해 주는 집밥을 가장 좋아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형을 챙겨주는 낙으로 사셨는데 이제 나와 여동생이 잘 챙겨드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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