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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 처벌 32개 풀어준다…형벌 폐지하고 형량도 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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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경제 규제 완화를 선언한 정부가 기업인에 대한 형벌 규정을 개편한다. 기존에 있던 형벌 조항을 폐지하거나 형량을 줄이는 방식이다. 그동안의 경제 관련 형별 규정이 기업 활동을 위축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를 막는다는 게 정부와 경제계의 문제의식이다.

26일 윤석열 대통령은 대구 달서구 성서산업단지에서 정부 출범 이후 첫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열고 경제 형벌 규정 개편안에 관한 기획재정부·법무부의 보고를 받았다. 이날 정부는 1차 과제로 총 32개의 경제 형벌 규정을 개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선 13개 형벌 조항을 ‘비범죄화’하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식품위생법상 일반 음식점 등 식품접객업자가 손님을 꾀어 끌어들이는 이른바 호객행위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매기던 것을 형벌 부과 대상에서 제외한다. 대신 업자에게 허가·등록 취소, 영업정지 등의 행정제재를 내리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대구 달서구 성서산업단지에서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 앞서 설비와 로봇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강현실(AR) 체험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대구 달서구 성서산업단지에서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 앞서 설비와 로봇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강현실(AR) 체험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기업이 상대적으로 경미한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형벌 대신 과태료를 부과한다. 예컨대 공정거래법상 기업이 각종 신고 의무를 단순 행정상 과실로 위반할 경우 기존에는 벌금을 부과했지만, 앞으로는 과태료를 매긴다.

형벌이 필요한 상황이라도 행정제재를 먼저 내리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 형벌을 부과하도록 개편하는 조항도 5개 발굴했다. 일례로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르면, 사업자가 납품업자에게 자신과 배타적으로 거래하도록 하거나 다른 사업자와의 거래를 방해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여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과징금·시정명령을 먼저 내리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형벌을 부과한다. 원사업자에 대한 처벌에 집중하기보다 하도급·납품기업의 피해 회복을 우선 도모한다는 취지가 들어 있다.

불공정무역조사법 등의 14개 형벌 조항은 형량을 낮춘다. 현행 환경범죄단속법은 오염물질을 불법 배출해 사람을 죽거나(사망) 다치게(상해) 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부과하게 돼 있는데, 상해한 경우의 법정형을 무기 또는 3년 이하의 징역으로 하향해 사망과 차등화한다. 정부는 “처벌의 규정이 과도하거나 책임의 정도에 비례하지 않는 경우를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현실에 맞지 않는 법령 한 줄, 규제 하나가 기업의 생사를 갈릴 수 있다”며 “이것은 어떤 이념과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하게 현실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제 형벌 규정도 글로벌 기준이나 시대 변화와 괴리된 부분은 원점에서 과감하게 재검토를 해 나가야 한다”며 “기업인의 경영활동이 위축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많은 투자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1차 과제는 대부분 법을 바꿔야 하는 사안이다. 정부는 올해 안으로 법을 개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여당보다 야당 의원 수가 많은 여소야대 국회에서 기업인에 대한 형벌을 약화하는 개정안에 대해 야당의 동의를 얻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필요 시 의원입법을 통해서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방기선 기재부 제1차관은 “기본적으로 시행령을 고쳐야 되는 것은 시행령 개정으로 하고, 법률을 고쳐야 될 부분은 연말까지 정부가 입법안을 마련해서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며 “소관 상임위원회 등을 통해 입법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앞서 6월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소개하며 “경제법령상 형벌이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하지 않도록 행정제재로 전환하거나 형량을 합리화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경제 형벌규정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개선 과제를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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