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마지막까지 롯데 사랑… 2군 구장 옆에 잠든 사직 할아버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고 케리 마허 교수의 추모식. 연합뉴스

지난 1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고 케리 마허 교수의 추모식. 연합뉴스

마지막까지도 그는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었다. 별세한 케리 마허 전 영산대 교수가 롯데 2군 구장이 위치한 김해 상동에 잠들었다.

롯데 팬으로 유명한 마허 교수는 지난 16일 부산 동아대병원에서 별세했다. 코로나19 확진 이후 후유증으로 폐가 크게 손상된 마허 교수는 병마와 싸웠으나 열흘 만에 눈을 감았다.

그는 생전 흰 수염을 휘날리며 열정적으로 롯데를 응원해 '사직 할아버지'로 잘 알려졌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출신으로 부친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2008년 울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교사로 일하기 위해 한국에 왔고, 2011년부터는 영산대에서 강의를 했다. 롯데 구단에서 두 차례 시구자로 초청했고,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뒤에는 롯데 구단 직원으로도 일했다.

2017년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시구자로 나선 케리 마허 교수. 중앙포토

2017년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시구자로 나선 케리 마허 교수. 중앙포토

마허 교수의 가족들은 모두 미국에 있다. 마허 교수의 지인들은 형제들의 허락을 받아 공동 상주가 됐다. 사직구장이 보이는 아시아드 장례식장에서 상을 치렀다. 이대호와 박세웅 등 롯데 선수들은 물론 손아섭(NC 다이노스), 신본기(KT 위즈), 최준석 등 롯데를 거친 선수들도 화환과 조의를 보냈다. 래리 서튼 감독과 라이언 롱 코치, 댄 스트레일리 등 마허 교수와 가깝게 지낸 외국인 선수들도 슬픔을 함께 했다.

롯데 구단은 장례식 식음료비용을 지원하고, 17일 경기 전 마허 교수의 영상을 전광판에 틀어 고인을 기렸다. 가장 슬픈 응원가를 다 함께 부르는 시간이었다. 롯데는 마허 교수가 앉던 121블럭 4열 11번 자리를 포함한 테이블을 시즌 마지막까지 비우기로 했다. 고인과 고인을 그리워하는 팬들을 위한 선물이다.

유해는 지난 20일 사직야구장 그라운드와 마허 교수가 항상 앉던 좌석을 거친 뒤 경남영묘원 신어공원추모관(김해시 상동면 소락로 23)에 안치됐다. 롯데 퓨처스(2군) 팀이 훈련하는 상동구장에서 차로 7~8분 거리에 위치한 곳이다.

마허 교수를 추모하는 야구 팬들. 연합뉴스

마허 교수를 추모하는 야구 팬들. 연합뉴스

상주 김중희(42)씨는 "교수님 가족들과 상의해 고인이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낸 한국에 모시기로 했다. 그러나 부산시민이 아니어서 납골당 이용이 어려워 여러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상동구장 인근에 납골당이 있어 모시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을 유독 좋아했던 마허 교수는 평소 어려운 아동들을 위해 쓰면 좋겠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상주들은 논의 끝에 마허 교수의 유산을 기부하기로 했다. 쌍둥이 형제 케빈도 이에 동의했다.

김중희 씨는 "재산 정리 절차를 거쳐 장학금을 전달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마허 교수의 뜻에 동참하고자 하는 팬들도 있다. 마허 교수의 롯데와 부산에 대한 사랑이 오래 남을 수 있도록 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