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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5세 초등생' 野·교육단체 반발..."尹지지 더 떨어질텐데, 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한국 나이 8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안을 두고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박순애 “교육청과 논의 안 했다”…野 “번갯불 콩 구워 먹나”

발단은 지난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장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시작한다. 박 부총리가 “1년 일찍 초등학교에 가는 학제 개편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라고 보고하자, 윤 대통령은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사회적 약자도 빨리 공교육으로 들어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것”(브리핑)이란 게 박 부총리의 설명이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2025학년도부터 한 학년을 15개월 출생 단위로 끊어 4년에 걸쳐 만 5ㆍ6세를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19년 1∼3월에 태어난 아이가 한국 나이로 7세에 2018년생과 함께 초등학교 입학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후 2019년 4월∼2020년 6월생이 한 학년이 되는 식이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진행한 부처 업무보고 결과를 브리핑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29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진행한 부처 업무보고 결과를 브리핑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그러나 개편안이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 없이 발표됐기 때문에 야당에선 비판이 나왔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국정 과제에도 없는 내용인 데다, 이날 박 부총리는 “학제 개편과 관련해 아직은 교육청과 공식적으로 논의를 하지않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인 박용진 의원은 이튿날 페이스북에 “학제 개편을 교사와 학부모 등의 의견 수렴 없이 발표하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다”며 “교육은 백년대계인데,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하면 일선 학교 현장과 가정의 혼란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지적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30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페이스북 캡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30일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페이스북 캡처

전당대회 최고위원 후보인 장경태 의원도 이날 “경찰장악, 극우 인사 채용, 정치보복 등 현재 윤석열 정부 실정을 감추기 위한 시선 돌리기 용 정책 추진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고 썼다. 국회 교육위 소속인 강득구 의원은 3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독단적이고 주먹구구식 정책을 하는 대통령과 교육장관은 즉각 사과하고 철회하라”고 말했다.

일부 교육계ㆍ학부모계…“野와 함께 투쟁할 것”

일부 교육계와 학부모계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30일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는 “역대 정부도 학제개편을 제안 했다가 혼란만 초래하고 매번 무산된 점을 직시해야 한다”며 “야당 국회의원과 대국민 홍보 투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삼ㆍ노무현ㆍ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때도 취학 연령 하향 논의를 했었지만, 번번이 여론 반대에 무산된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밖에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동조합이나 한국어린이집연합회 등도 연쇄적으로 비판 대열에 동참 중인데, 오프라인 시위까지 예고됐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13개 시민 단체는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 연대’를 결성하고 내달 1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내달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만5세 초등학교 조기취학 학제개편 반대’ 13개 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한다는 보도자료. 홈페이지 캡처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내달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만5세 초등학교 조기취학 학제개편 반대’ 13개 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한다는 보도자료. 홈페이지 캡처

익명을 원한 교육계 관계자는 “유아 교육계는 공교육 취학 연령이 낮아질 경우 그만큼 원생 확보에 차질이 생기는 이해당사자이고, 이번 제도에 영향을 받는 학부모 입장에선 자녀들이 장차 대입과 취직에서 다른 학년보다 25% 더 경쟁자가 많아지는 부담이 있다”고 지적했다.

“개편 논의 필요하다” 반론 있지만…“尹 지지율 하락할 듯”

학령 개편에 찬성 의견도 있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영유아의 신체발달과 인지발달이 빨라진 점, 선거권 연령이 하향된 점, 취업 등 입직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학제 개편은 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학제개편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높다는 점이 정부의 부담이다. 이미 조기입학을 허용하는 제도가 있지만, 조기입학자가 2009년 9707명에서 2020년 521명(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으로 급감했다. 학부모들이 조기입학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또 201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한국을 포함한 26개국(68.4%)의 초교 입학연령이 만 6세이며, 이 이하인 곳은 영국 등 4개국(OECD 교육지표 2021)밖에 없다.

가뜩이나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세인 상황에서 이처럼 논란을 부르는 정책을 추진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교육은 국내 정서에서 상당히 예민한 주제”라며 “충분한 소통이나 설득력 있는 논리 없이 밀어붙이는 듯한 모습은 지지율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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