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한 보선유세장/전영기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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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영광­함평 보궐선거의 첫 합동연설전이 2일과 3일 세 차례에 걸쳐 실시됨으로써 예정된 횟수의 반을 치렀다.
이번 합동연설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청중유권자들의 반응이 대단히 저조했다는 점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차분하고 조용하다」 「미지근하다」 「냉랭하다」 「무관심하다」는 등의 여러 형용사로 이 사태를 표현하고 있으나 13대 총선 당시의 80% 가까운 투표율과 전통적으로 이 지역 유권자들이 보여준 높은 정치적 관심을 생각해보면 이같은 저조한 분위기는 「의외의 사태」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2천여 명이 모인 세 차례의 유세장이 시종 가라앉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사생결단으로 달라붙는 각 후보들의 극한적인 발언에 대해서는 시비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선거운동원을 중심으로 서로간에 작은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후보의 소속을 떠나서 「김대중 선생님」이라는 말이 나오면 청중들은 연호와 박수로 환호했다.
그러나 「황색바람」이 휘몰아치기를 바라는 평민당 의원들조차 『아직 분위기가 안 뜬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들은 우선 시기적으로 농번기라 짬을 내 유세장에 가기 어렵다고 했다.
김대중 총재에 대한 압도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타지역 사람이 김 총재 「대리인」으로 나온 것이 못내 섭섭하다는 반응이다.
『우리 농촌에 해놓은 것이 무엇이고 추곡수매가ㆍ수매량 결정조차 못하고 있는 저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느냐』는 냉소적 태도도 많았다.
또 자신들이 뽑은 서경원 전 의원의 사건 여파가 지역주민들에게 꽤 큰 상처를 주었다고 한다.
조그만 영세점포를 하는 50대 남자 주인은 『아무개가 안되겠능가.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 누구를 찍겠다고 미리 얘기하는 사람은 없을 거이다』라며 13대 때와는 달라진 기류를 전했다.
결과적으로 민자당측은 이같은 분위기가 자신들의 「잠행ㆍ일대일 접촉」 전략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반면 평민당측은 지역구 전체를 훑으면서 「김대중 정서」를 조직하고 바람을 일으키는 데 진력하고 있다.
정치권이 영광­함평 보선과정을 통해 그들에 대한 「정치불신」이 지방의 작은 농촌지역에까지 심각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주길 바란다면 너무 무리한 기대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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