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시/저녁되면 역사에 부랑자 “우글우글”(세계의 사회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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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비용절감 위해 공장기숙사 폐쇄 등이 원인/헝가리인만 2만명… 루미나아인도 한 몫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시 켈레티 역사는 기차여객이 거의 없을 밤시간에도 항상 만원이다.
집도 절도 없이 길거리에서 떠도는 노숙자들이 저녁만 되면 찾아와 역사구내를 빈틈없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다페스트에 노숙자들이 많아진 것은 헝가리가 자본주의사회로 변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헝가리 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헝가리의 노숙자는 헝가리 국적자만 약 2만명으로 최근 몇달새 약 6천명이 늘어났다.
이밖에 루마니아인 수천명이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고 트란실바니아지역에서 유입돼온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이들 외국인 무주택자들은 모국의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지난해부터 가족들과 함께 헝가리를 찾아와 가족단위로 노숙을 하고 있다.
과거 공산정권은 공식적으로 가난이란 없는 것으로 주장해 왔다. 이 때문에 공원등 공공장소에서 잠을 자거나 구걸하는 행위는 사회에 기생하는 범죄로 처벌대상이었고 모든 시민들은 주소를 가져야 하며 주소지에서만 거주해야 했다.
그러나 민주화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도 더 이상 과거처럼 억압과 은폐만을 능사로 삼고 있진 않은 것이다.
부다페스트시 당국은 최근 무주택문제를 담당하는 「위기해결 대책반」을 구성,이 문제를 본격적인 시정문제로 처리하려는 결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경험부족ㆍ재정부족ㆍ인력부족 등 처리능력에 비해 상황이 너무 급격히 악화되고 있어 문제가 개선될 조짐은 전혀 없다.
대책반이 확보하고 있는 재원은 약 50만달러(3억6천만원). 이 돈과 6명의 인원으로 헝가리 전체 무주택자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는 부다페스트의 겨울을 치러내야 한다.
현재 확보되어 있는 노숙자 수용시설의 침대수는 1천5백개,무료로 제공되는 식사는 하루 3백인분 뿐이다.
아직까진 날씨가 그다지 추워지지 않아서 기차역이나 공원벤치가 무주택자들의 거처로 사용되지만 겨울만 되면 굶어죽고 얼어죽는 사람이 속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처럼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많은 공장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독신자용 숙소를 폐쇄했다. 주택사정이 좋지 않은 헝가리에서 수십만명에 달하는 독신 공장근로자들은 대부분 공장기숙사에서 기거했었지만 자본주의화가 진행되면서 공장마다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이들 기숙사를 폐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밖에 지난 6월에는 감옥에 있는 수형자들중 남은 형기가 1년 이하인 3천명이 석방된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노숙자가 크게 늘게 된 것은 외국인들의 입국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헝가리에 거주하는 루마니아인은 최근 약 10만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이들중 상당수가 뚜렷한 직업과 거처없이 떠도는 형편이다.
예컨대 부다페스트시 켈레티 역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중 약 절반가량이 루마니아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켈레티역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최근 이들 노숙자들 때문에 각종 범죄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이유로 이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며 파업위협을 하는등 노숙자문제는 사회안정을 위협하기에까지 이르고 있다.
헝가리의 노숙자문제는 인플레ㆍ실업ㆍ주택난 등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빚어지는 각종 사회적 부작용이 집약된 상징처럼 되어가고 있다.<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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