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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료 유탄 맞은 국민연금…공단도 “건보료 조심” 경고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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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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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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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건강보험의 유탄을 맞았다. 정부가 지난달 29일 ‘소득 중심의 건강보험료 2차 개선안’을 내놓고 9월 시행을 예고하면서다. 이번에 건보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기준을 대폭 강화하면서 국민연금 수령자가 영향을 받게 됐다. 그동안 연금을 늘리기 위해 수령 시기 연장, 추후 보험료 납부(추납) 등의 노력을 해왔는데, 연금 증가로 인해 피부양자 탈락에다 재산 건보료라는 벽에 부딪혔다. 하지만 ‘무임승차 축소’라는 명분 앞에서 크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국민연금공단은 며칠 새 건보료 문의가 쇄도하자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단은 노령연금(일반적 형태의 국민연금) 수급개시(만 62세) 안내장에 유의사항을 명시해 9월부터 발송한다. “반납금 납부, 추후 납부로 노령연금 수령액이 증가할 경우 연금소득세 및 건강보험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반납과 추납대상자는 4월부터 안내하고 있다. 공단은 이와 함께 연금 수령 개시자에게 건보료 상담서비스를 하기 위해 전산프로그램 개발에 착수했다.

건보료 부과체계 2차 개선 후폭풍
수령 연기 등 연금 늘리기에 찬물
연금공단, 안내장 발송·상담 도입
“소득중심 부과로 과감히 바꿔야”

66세 은퇴자 건보료 0원→15만원

경기도 안양시 정모(66)씨는 대기업에서 퇴직했다. 국민연금(120만원), 금융 이자소득 등으로 월 200만원가량의 소득이 있다. 그동안 직장가입자인 아들(36)의 건보증에 피부양자로 얹혔다. 최근 뉴스를 보고 걱정이 돼 건보공단 지사를 찾았더니 ‘피부양자 탈락’ 대상이었다. 정씨는 “부부가 빠듯하게 사는데 매달 15만원 넘게 건보료 나온다니 걱정”이라며 “4대 사회보험이 되는 단기 일자리라도 알아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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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연금·이자·배당·임대·사업 등의 소득이 연간 3400만원 넘지 않으면 피부양자가 된다. 9월 이 기준이 2000만원(월 167만여원)으로 강화돼 27만3000명이 피부양자에서 탈락한다. 앞으로 국민연금 수령자와 연금액이 계속 늘어나게 돼 있어 탈락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그동안 연금공단이나 복지부, 노후소득 전문가 등이 한목소리로 ‘연금 늘리기’를 권장해 왔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가령 국민연금 수령 시기를 최대 5년 연장하면 36%(연간 7.2%)의 연금을 더 받으니 여건이 되면 이를 활용하는 게 낫다는 식이다. 과거 일시금으로 받은 보험료를 반납하거나 과거에 못 낸 보험료를 나중에 내거나 60세 이후에도 보험료를 계속 내도록 권장했다. 이런 걸 활용해서 연금을 늘려 평생 받는 게 나은지, 건보료를 덜 내는 게 나은지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연금공단이 조언자로 나서기로 한 것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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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양자는 무임승차 제도이다. 경제 능력이 없는 가족을 보호하는 장치이다. 직장가입자당 평균 0.95명이 얹혀있다. 독일(0.29명)의 경우 부모는 피부양자가 될 수 없고 미성년 자녀만 가능하다. 부모·자식 관계가 옅은 유럽의 특징을 반영했다. 일본은 0.68명이다. 한국은 초저출산 여파로 피부양자가 계속 줄지만 다른 나라보다 많은 편이다. 그래서 5년 전 국회에서 피부양자 축소에 합의했고, 이번에 시행한다.

재산건보료 더 낮춰야 반발 덜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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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피부양자 탈락 후 소득에만 보험료를 내면 그나마 반발이 덜할 수 있다. 문제는 재산 건보료다. 정씨 같은 경우 소득 보험료만 9만7860원이지만 과표 2억원짜리 집만 있어도 재산 건보료가 12만원 넘게 나온다. 2023~2025년 80~20% 깎아준다지만 2026년엔 27만 명이 월평균 15만원을 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은 “공시지가가 올라서 이번에 피부양자 재산 기준을 현행대로 유지한다면서 재산공제(국회 합의안 5000만원)를 단 1원도 올리지 않은 것은 앞뒤가 안 맞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이번 공제 조치의 혜택을 전혀 못 보는 재산 보유자가 15만 세대에 달한다. 지역가입자 건보료(10조원) 중 재산 비중은 지난해 11월 46.3%에서 이번 개편 후 41.1%로 소폭 줄어든다.

2015년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장을 맡았던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은 이번 개선안을 이렇게 평가한다.

“옛날식으로 했다(미흡하다는 뜻). 자영자가 이제는 소득을 거의 다 신고한다. 의사·변호사 등 소위 ‘사’자 붙은 전문직은 없다. 종전과 다르다. 사업자 번호가 없는 농어민·행상·재래시장 노점상 등이 남았다. 소득 중심으로 과감하게 가야 한다. 다만 경비인정률이 너무 높은 점은 조정할 필요가 있다. 국세청이 맘만 먹으면 실제 경비를 파악할 수 있다. 용감한 공무원이 없다.”

이 원장은 “독일도 카드 안 받는 데가 있다. 정부가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재정이 부족하면 국고를 넣으면 된다. 3조원 정도면 소득 중심으로 갈 수 있다. 직장건보와 지역건보가 재정을 같이 쓰면서 부과체계가 다른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재산 건보료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다. 그나마 일본은 계속 없애고 있어 우리보다 비중이 훨씬 낮다. 몇 년 전 기자가 독일·일본을 방문했을 때 관계자들은 “재산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느냐”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