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ㆍYS 동상이몽이 화근/분당 위기에 빠진「민자호」/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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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개헌 낙관론”과 “대권집착”서 발단한 셈/화해 두고봐야지만 현재론 “결별” 우세
­민자당이 분당으로 줄달음질치고 있습니다. 내각제 합의각서가 중앙일보 10월25일자에 보도된 이후 확산일로를 치닫던 합의각서 파동으로 김영삼 대표가 급기야 내각제를 정면으로 거부하며 마산으로 내려가버려 한지분 세가족의 어려운 살림을 하던 민자당의 민정ㆍ공화계와 민주계가 딴살림 채비를 하는 파국을 맞게 됐어요. 정국은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제로」의 안개상황으로 빠져들었고 정치판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상황입니다.
이렇게까지 된 원인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김대표는 자신을 고사시키려는 민정ㆍ공화계의 음모가 이번 합의문 공개로 인해 그 실체를 드러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다시말해 민정ㆍ공화계의 줄기찬 공작정치라는 거지요.
­김대표가 이번 합의문 공개를 공작정치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공작정치로 되치기
­김대표의 주장은 지금까지 합의문 사본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거죠. 당초 박준병 사무총장이 내각제 추진 합의각서를 만들자고 조르면서 1부만 만들어 청와대 금고속에 보관키로 했다는 거죠. 그런데 사본이 흘러나왔으니 누가 의도적으로 흘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김대표는 결국 이번 유출사건은 관리소홀에서 빚어진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청와대측의 고의적인 유출로 몰고가려는 거죠.
­합의문 공개 직전 공화계의 김용환 전정책위의장이 박철언ㆍ황병태 의원 등과 골프를 치면서 합의문 사본을 황의원에게 직접 보여준 것도 사본유출과 같은 맥락이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공화계에서는 청와대로부터 사본 1부를 받았다고 확인하고 있어 김대표의 주장과는 차이가 있어요.
­결국 김대표가 각서유출을 공작정치로 보는 것은 민정ㆍ공화계와 결별하기 위한 명분이라는게 타당한 분석인 것 같아요.
김대표는 사실 합당당시부터 내각제 개헌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었고 어떻게해서든 대통령 직선제를 고수해 대권을 장악해 보고 싶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아닙니까.
그러나 김대표의 이같은 계획이 자신의 의도대로 풀리지 않은데다 합의문에 직접 서명을 해놓고도 이를 부인한데 따른 도덕성의 훼손과 약속불이행이라며 자신을 압박해 오는 민정ㆍ공화계를 「공작정치」라는 맞바람으로 되받아침으로써 자신의 약점을 상대편에게 뒤집어 씌우고 스스로의 입지를 확보하려는 계산에서 비롯된 고도의 정치술수라는 것입니다.
­그 점은 김대표도 부인할 수 없는 여러가지 정황들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최근 김대표는 합의문에 서명할 당시만 하더라도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내각제에 동의하리라고 믿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김총재와 재야의 반발이 완강했기 때문에 내각제 개헌은 불가능해졌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김총재는 1ㆍ22 합당선언 직후부터 내각제 개헌에 대해 소극적이었어요. 따라서 김대표의 그같은 설명은 앞뒤가 안맞는 것이고 합의사항을 뒤집은데 대한 변명에 불과한 겁니다.
­사실 김대표는 내각제합의를 무효화하려는 시도를 쭉 해왔지요. 김대표는 노대통령을 만날때마다 개헌이 어렵다는 점을 역설했고 몇달전엔 『내각제 개헌 포기선언을 제2의 6ㆍ29선언으로 채택하면 대통령도 살고 나도 산다』면서 노대통령을 집중적으로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같은 설득이 먹혀들지 않자 지금까지의 모든 잘못을 대통령에게 뒤집어 씌움으로써 탈당의 명분을 찾겠다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실 공작정치인가,아닌가 하는 것은 합의문 서명작업에 직접 참여하고 합의문을 보관했던 사람들은 스스로 잘 알겁니다. 특히 민주계와 김대표 자신이 합의문이 공개됐을 때 가슴속으로 뜨끔한 점이 없지 않았을 겁니다.
­내각제를 선호하지 않으면서도 4당 시절 정국이 노­김대중 총재 중심으로 굳어져가는데 불안을 느낀 나머지 합당을 한 것이기 때문에 이미 그때부터 오늘의 위기상황이 잉태됐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연말이나 내년초 내각제 문제가 표면화되면 갈등이 곪아 터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시기가 한두달 앞당겨진데 불과 합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데는 개헌추진파인 민정ㆍ공화계의 잘못도 크고 특히 내각제에 강한 집념을 보여온 노대통령의 오판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지도 모르죠.
­민정ㆍ공화계는 대통령제를 통해 권력을 잡아보겠다는 김대표의 계산을 애시당초부터 오산이라고 생각했고 더욱이 김대표에게 대권을 넘겨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이른바 「대권밀약」을 맺어 내각제 개헌이 이뤄질 경우에만 김대표에게 총리직을 주겠다는 것이고 김대표가 대권에만 집착하는줄 잘알면서도 흐릿한 태도를 보여 이런 결과를 초래한거죠.
○어정쩡한 태도 불씨
­김대표로 하여금 대권에 집착하도록 한데는 청와대측이 내각제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어정쩡한 입장을 취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봅니다. 김대표가 『국민과 야당이 반대하면 개헌할 수 없다』고 설득하자 노대통령은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는 거죠. 노대통령 특유의 흐릿한 스타일이 김대표로 하여금 오산하도록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노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김대중 총재가 내각제로 돌아설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아래에서 김총재는 내각제 반대하고 해도 『내가 직접 확인했다』고 역정을 냈다는 거죠. 주변의 친ㆍ인척이 하는 소리나 믿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김대표의 대권욕 못지않게 노대통령 역시 정치적으로 순수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운 상황입니다.
내각제를 추진하려면 분명히 할 것이지,밖으로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느니 운운하면서 다른쪽으로는 민정계 중진의원들을 은밀히 개별적으로 불러 내각제 개헌을 분명히 추진하겠다고 했으니 민주계가 더블플레이로 보는건 당연하죠.
­결국 1노2김과 3계파 모두 순수하지 못한 정치적 이익만을 추구하며 동상이몽으로 이룬 3당합당은 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앞으로 민자당이 와해되고 말것인지,아니면 내부 투쟁으로 계속될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민정계에서는 세가지 가능성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김대표를 밀어내야 한다는 주장,김대표 스스로 걸어나가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에 반해 어떤 식으로든 화해를 해야한다는 주장입니다. 현재로서는 어차피 잘못된 결합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갈라서는 편이 서로를 위해 좋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앞서 얘기했지만 김대표에게 있어 내각제개헌은 부차적인 문제이고 대권장악이 힘들다는 판단에서 취한 행동이기 때문에 김대표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넘어서고 말았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입니다.
­민정ㆍ공화계의 가장 큰 우려는 김대표가 복귀한다 하더라도 당이 재생하기 어렵고,그럴 경우 총선에서 모두 몰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 새 출발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부담이 적다는 거죠.
­민정계는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것 같아요. 초ㆍ재선의원을 중심으로 한 소장그룹은 노대통령이 항복하고 들어오지 않을 경우 뛰쳐 나가야한다는 주장인 반면 노장그룹은 민주계가 먼저 뛰쳐나갈 것이 아니라 민정ㆍ공화계로부터 밀려 나간다는 인상을 주면 상처는 상대방에게 더 크다는 손익계산을 따져 신중론을 펴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주계가 탈당할 경우 이탈자가 없을까요.
­민정계 일부에서는 김대표가 탈당할 경우 15∼20명의 이탈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로 그 점때문에 김대표의 탈당을 불가능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어요. 김대표가 탈당할 경우 민주계는 예전에 비해 더욱 초라한 상황으로 전락하게 되고 야당으로부터는 변절자로 낙인 찍혀 설땅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김대표는 사태수습책으로 총재직을 내라고 했다는데 이건 대권을 내놓으라는 얘기고 민정계가 받을 수 없는 조건이죠.
­김대표를 보좌하는 비밀연구소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한 탈당 시나리오를 이미 작성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이미 민자당은 무너져 내리고 있으므로 이번 사건을 통해 당권을 요구하고 노대통령이 이를 거부할 경우 대통령을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정치인으로 몰아붙여 당을 뛰쳐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민정계도 큰 상처를 입게될 것이고 군과 TK세력이 주축이 된 민정계와 공화계가 주축이된 자민당은 허물어진다는 거죠.
­민정계나 청와대측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김대표가 결별할 경우 민주계는 초라한 제3당으로 떨어지게 되므로 민정ㆍ공화계는 잘만 추스리고 대통령 선거시 양김 퇴진론만 부추기면 김대표나 민주계는 몰락할 것이라는 판단이지요.
○물건너간 내각제
­결국 따져놓고 보면 한쪽은 나가되 모양좋게 나가겠다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내보내되 쪽박마저 깨뜨려서 내보내겠다는 생각이라고 할 수 있어 한바탕 충돌이 불가피할 겁니다.
­이번 사태를 보는 평민당은 눈에 가시같은 라이벌도 넘어지고 힘에 겨운 거대여당도 쪼개진다는 생각에 고소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더군요.
특히 김대표가 보따리를 싸들고 나온다 하더라도 한번 외도를 한 전력 때문에 과거와 같은 라이벌은 못될걸로 보지요.
­그 점에서는 조금 다른 생각을 민정계는 갖고 있어요. 김총재와 김대표는 공생공사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서로가 망하는 길은 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지요. 지난번 김총재의 단식현장을 김대표가 찾아가기 전에 김동영 당시 총무가 찾아가 김대표가 죽으면 김총재도 죽는다며 상부상조하자고 했다는 거죠.
­김대표가 완전히 함몰하는 것을 김총재 역시 원치않을 겁니다. 특히 세대교체론이 고개를 들면 양김이 모두 무너지기 때문에 김총재 역시 김대표를 어느정도는 부축해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내각제 개헌은 완전히 물건너간 것이 확실해 지고 말았습니다.
­내각제가 불가능해진 상황이라면 제2의 정계개편이 뒤따를까요.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좀더 두고봐야겠지요.
­여당은 그렇다치고 정국 정상화도 안개속으로 사라져 버렸어요. 여당 스스로가 집안싸움에 정신이 팔린 마당에 대야관계는 신경쓸 겨를이 없으니 예산이나 제때 통과될지도 의문입니다.<정리=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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