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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 시골집 뒤주, 버려진 문짝…세월의 더께 위에 삶을 그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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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창 밖을 바라보는 누이의 모습을 담은 ‘결-누이의 방’앞에 선 김덕용씨. [김성룡 기자]

"버려진 소나무를 구해서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석달간 비바람에 내맡깁니다. 그후 사포로 문지르고, 나무가 숨 쉬도록 아교를 칠하고, 반나절 넘게 가만히 쳐다보기도 하고…. 나무랑 연애를 하고 살지요."

김덕용(45)은 캔버스 대신 나무에 그림을 그리는 작가다. 오래된 고목, 시골집 모퉁이의 뒤주, 버려진 대문짝이 그에겐 훌륭한 소재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나무에서 그는 결의 아름다움에 주목한다. "나무는 세상에 하나뿐인 결을 갖고 있어요. 사람마다 손금이 다른 것처럼…. 결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영감이 떠올라요. 이건 여인의 뒷모습이다, 이건 거문고로 딱이구나."

그의 작품은 보는 이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나무 바탕에 그려진 그림들은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대문을 살짝 열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새색시, 다소곳이 앉아있는 소녀 등 우리 주변의 인물이 정겹다.

주로 여인을 소재로 작업해 온 그가 이번열한 번째 전시 '집-들러보다'에서는 '동네'로 시선을 돌렸다. 서울 삼청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선보이는 20여 점의 작품은 그의 주변 인물이나 사물들을 대상으로 한다. 아내가 시집 올 때 갖고 온 색동 요며 녹슨 손잡이가 달린 책장, 심드렁한 표정의 누렁이 등이다. 나무의 타고난 결과 몇번의 붓 터치로 다양한 변주를 선보인다.

원래 그는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열심히 그렸지만 아쉬움이 많았던 때"였다. 수묵화의 경지를 올릴수록 중국화 냄새가 났다. 그는 한국적인 걸 찾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국립민속박물관의 선사시대 암각화 탁본을 보고 무릎을 탁 쳤다. 벽이나 바위에 그린 그림은 투박하긴 하지만 우리 정서가 배어났다. 그는 화선지를 버리고 질감을 느낄 수 있는 나무를 택했다.

"처음엔 요즘 장농을 재료로 작업했는데, 합판이라 영 느낌이 안나더군요. 그래서 시골을 돌아다니며 전통가구를 찾기 시작했어요. 장인들의 손길이 밴 전통가구는 작은 조각 하나도 버릴 게 없어요."

그는 여러 개의 작품을 동시에 늘어 놓고 작업한다. 작품마다 매일 손길을 줘야 그 맛이 제대로 나오기 때문이란다. 나무와 작업한 지 10년, 그에게 나무는 어떤 존재일까. "나무는 숨을 쉬어요. 얼마 전부터는 나무 판 사이에 간격을 조금씩 뒀어요. 숨 쉬면서 살라고. 이제서야 그걸 깨달았으니, 아직 갈길이 먼가봅니다. " 20일까지. 02-730-7818.

박지영 기자 <nazang@joogn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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