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20일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개월 만이자, 올해 첫 해외 출장길에 오른다. 지난달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때 평택 공장 안내부터 한·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 참석, 450조원 대규모 투자 계획 발표,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와 회동, 6년 만의 삼성호암상 시상식 참석까지 최근 활발한 대외활동을 보여온 이 부회장의 글로벌 경영 보폭도 넓어질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오는 7일부터 18일까지 네덜란드 등 유럽으로 출장을 떠난다. 이번 출장은 이 부회장이 매주 출석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관련 재판에서 2일 재판부가 검찰에 해당 일정에 따른 이 부회장 불출석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서 알려졌다. 검찰은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7~18일 네덜란드 등 유럽 방문 예정
이 부회장의 해외 출장은 지난해 12월 아랍에미리트 출장 이후 6개월 만이다. 재판부가 네덜란드 소재·장비 관련 출장이라고 언급하면서 업계는 이 부회장이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을 방문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확보를 위한 협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UV 노광장비는 메모리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미세공정에 필요한 핵심 장비로 ASML이 연간 40대 정도만 독점 생산해 반도체 회사들의 쟁탈전이 치열하다. 이 부회장은 2020년에도 같은 이유로 ASML을 찾아 페터르 베닝크 CEO 등을 만났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4일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첨단기술 선제 적용으로 메모리반도체 초격차 리더십을 공고히 하고,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등 차별화한 차세대 생산 기술을 적용해 3나노미터(㎚, 10억 분의 1m) 이하 제품을 조기 양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UV 노광장비 확보 위한 협의 나설 듯
지난 30년 동안 메모리 시장을 선도했지만 경쟁사들의 거세 도전에 더는 ‘세계 최초=삼성’이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1위 수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파운드리는 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꼽는 핵심 투자 분야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두 분야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필수로 있어야 하는 장비”라고 말했다.
![2020년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네덜란드 ASML 본사를 방문해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4/fb6a3e0a-7c80-43db-8f4f-c67b9f8e9919.jpg)
2020년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네덜란드 ASML 본사를 방문해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번 출장으로 삼성전자의 대형 인수·합병(M&A)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부회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 취재진이 ‘1월 CES(소비자가전쇼)에서 (M&A 관련)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한 건을 진행 중이냐’고 묻자 “그렇게 보면 된다”고 답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분기 실적 발표에서 “3년 내 의미 있는 규모의 M&A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17년 전장 업체 하만 인수 이후 대형 M&A가 없었던 데다 현금성 자산이 124조원(올 1분기 기준)으로 재계에서 가장 많아 M&A에 관심이 쏠린다.
글로벌 네트워킹 복원 행보 시각도
지난 팻 겔싱어 인텔 CEO와 회동 후 샘모바일 등 해외 매체에서 삼성전자가 인텔 등과의 컨소시엄으로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인 영국 ARM 인수에 나설 수도 있다고 보도하면서 이 부회장의 영국 방문설도 나온다. 다만 삼성전자 측은 “이번 유럽 출장의 세부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를 찾아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와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 삼성전자]](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6/04/8c0eb3a2-a322-4ded-ab75-c1ec2c4e9204.jpg)
지난해 1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를 찾아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와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 삼성전자]
재계는 이번 출장을 위기감 속에서 글로벌 네트워킹을 복원하고, 사업에 힘을 싣는 행보로도 해석했다. 7월 미국 아이다호주의 선밸리에서 열리는 미디어·정보기술(IT) 업계 거물들의 모임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 모임에는 지난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팀 쿡 애플 CEO 등이 참석했다. 이 부회장은 2002년부터 2016년까지 꾸준히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