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 무너지자 10명이.." 그 형제복지원 장본인 참혹한 기억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2.05.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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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호 내셔널팀장의 픽: 비상상고 기각 후 형제복지원

지난 3월 30일 오후 부산 자갈치시장. 손에 피켓을 든 40여명이 가두행진을 벌입니다. 1970~1980년대 부산 형제복지원에 불법 수용됐던 피해자들이 거리로 나선 겁니다. 이들은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통해 국가가 배상에 나서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앞서 지난 1월 23일에는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만나 이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1975년 설립된 형제복지원에서는 부랑아 선도라는 명목 아래 온갖 가혹행위가 이뤄졌습니다. 어린이와 시민들을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과 구타, 학대, 성폭행을 했다는 의혹을 받습니다. 부산시에 따르면 12년간 최소 3만8000명이 감금됐고, 523명이 숨졌습니다. 당시 암매장된 시신 중 일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답니다.

원생 30명 집단 탈출…“희대의 인권유린”

1987년 당시 형제복지원 모습(왼쪽). 2018년 11월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이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 피해자들의 진술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중앙포토

1987년 당시 형제복지원 모습(왼쪽). 2018년 11월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이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 피해자들의 진술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중앙포토

희대의 인권유린 사건은 1987년 3월 세상에 알려집니다. 원생 30여명이 집단 탈출하던 중 1명이 맞아 숨진 겁니다. 앞서 1982년 12월쯤에도 보수 중이던 담이 무너질 때 10여명이 탈출했으나 국민들은 알지 못합니다. 탈출에 성공한 소년들마저도 다시 잡혀갈 수 있다는 공포감에 입을 꼭 다문 겁니다. 당시 무너진 담은 10대 소년 등이 하루 10시간씩 돌을 캐고 날라다 쌓았다고 합니다.

500명 이상이 죽어간 복지원 참상과 달리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칩니다. 형제복지원 원장 고(故) 박인근씨는 당시 공금 횡령 혐의만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만 선고받습니다. 특수감금 혐의는 7차례의 재판 끝에 1989년 무죄가 확정됩니다. “박씨가 한 행위가 당시 정부 훈령에 기초한 정당행위이기 때문에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판결입니다.

당시 내무부 훈령 제410호에는 부랑인을 임의로 단속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수용인들의 동의나 수용기한 없이 강제 수용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둔 겁니다.

“형법 20조 정당행위…법 위반 아니다” 

부산 형제복지원 원생 폭력 및 공금횡령등으로 구속된 박인근 전 원장 등이 항소심 첫공판을 받기 위해 호송되고 있다. 중앙포토

부산 형제복지원 원생 폭력 및 공금횡령등으로 구속된 박인근 전 원장 등이 항소심 첫공판을 받기 위해 호송되고 있다. 중앙포토

법원 판결 후 묻히는 듯했던 사건은 2018년 11월 다시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당시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피해자들의 신상기록카드가 처음 공개된 겁니다.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검찰이 인권침해 실상을 규명하지 못했다"며 사과했습니다.

아울러 문 총장은 "(내무부) 훈령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한 판결은 법령 위반"이라며 사건을 비상상고 합니다. 당시 훈령은 법률이 위임한 바가 없고, 명확성·과잉금지·적법절차 원칙에도 반하는 '위헌'이라고 본 겁니다. 비상상고는 확정된 형사 판결에서 위법한 사항이 발견됐을 때 대법원이 다시 심리하도록 하는 구제절차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3월 11일 “원심판결에 적용된 법령은 형법 제20조”라며 비상상고를 기각합니다. “당시 훈령은 형법 20조 정당행위를 구성하는 사정 중의 하나일 뿐이어서 훈령이 위헌인지 등과 판결과는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음달 보고서…“배·보상은 기약 없어”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이 돌을 날라 담장을 쌓고 있다. 사진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형제복지원 수용자들이 돌을 날라 담장을 쌓고 있다. 사진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선고 직후 피해자들은 대법원 법정 앞에 주저앉아 오열했습니다. 한 피해자는 “폭력·감금 등 말도 못할 생활로 40년 넘게 약을 먹고 살았는데 억울하고 분하다”고 했습니다. 다른 피해자는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아이들을 국가에서 잡아들였으면 책임져야 한다”고 소리쳤답니다.

현재 사건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가 1년째 조사 중입니다. 피해자들은 이르면 다음달쯤 나올 첫 진상조사 보고서를 두고 "반쪽 조처"라는 반응입니다. “진실위 보고서는 '명예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배·보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겁니다. 진실위는 조사를 신청한 피해자 523명 중 300여명에 대한 조사를 마친 상황입니다.

진상규명이 길어질수록 피해자들의 고통은 커집니다. 지난해 11월에는 피해자 이춘석(63)씨가 빙초산 음독을 시도했다가 목이 망가졌습니다. 또 다른 피해자는 한강다리에서 투신해 허리를 다친 뒤 연락이 끊겼답니다.

“40년 전 참혹한 기억”…커지는 고통 

경찰이 넘긴 어린이 등 수용자들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경찰이 넘긴 어린이 등 수용자들이 차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형제복지원의 참혹한 실상은 피해자 김세근(60)씨 등의 증언을 통해 확인됩니다. 1971년부터 11년간 수용됐던 그는 1982년 담장이 무너질 때 탈출한 소년 중 한 명입니다. 김씨는 지난 3일 옛 형제복지원 터를 찾았을 때 40여 년 전을 회상하며 이런 말을 했답니다.

“도망치다 잡힌 사람들은 피떡이 되게 맞았다. (탈출하다 잡히면) '나는 도망가다 잡혔습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식당에 세워뒀다. 나머지 소년들을 향해서는 ‘이놈 탓에 너희가 맞는 것’이라고 윽박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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