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안보의 리트머스' 송두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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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교수가 구속수감됨으로써 향후 사건 추이는 사법부 판단에 맡겨지게 됐다. 그러나 이 사건의 의미와 파장은 단순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의 차원을 넘는다. 우리 사회 안보체제의 강도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적 계기가 되고 있다.

평상시에 국가가 직면하는 안보 도전은 통상 정보전의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우리 경우처럼 남북한 적대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돼온 상황하에서 정보전은 필사적이고 치열한 형태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주민이 아사 위기에 내몰리는 재정 파탄 상태에서도 두 가지 분야에서만은 아낌 없이 돈을 퍼붓는 양태를 보여왔다. 그 한 분야는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이고 또 다른 분야는 정보다. 이중 정보분야에 대한 집중적 투자는 북한의 남조선 적화 전략과 연계돼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 정보역량을 육성하고 이를 공세적으로 사용해 오고 있다. 수많은 공작원의 양성과 남파, 민민전방송을 통한 지속적 선전.선동, 남북 민간 교류, 그리고 미녀응원단의 운영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대남 정보프로그램은 실로 다양하고 조직적이며 매우 집요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宋교수 자신은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북한 정보 당국이 宋교수를 이러한 대남 정보게임의 중요한 자산으로 활용해 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보공작원 분류에는 무의식공작원(Unwitting Agent)이란 것이 있다. 자신의 의지나 동의와는 무관하게 정보목적에 이용되는 에이전트를 말한다. 또한 영향력공작원(Agent of Influence)이라는 분류도 있다. 사회적 저명도나 명성을 이용해 정보주체에게 유리한 환경과 국면을 조성하는 데 활용되는 에이전트를 말한다.

宋교수의 경우 최소한 이 두 부류에 해당한다. 宋교수의 활동은 대부분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설령 몰랐다는 宋교수의 주장을 인정한다 해도 그의 활동은 무의식공작원 범주에 속하는 활동이다. 특히 북한 정보 당국은 영향력공작원으로서 宋교수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그의 학문적 명성과 내재적 접근론은 우리 사회 일각의 대북한 인식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우리 국정원과 마찬가지로 북한 정보 당국도 송두율 파일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 파일에는 宋교수의 활동내용, 지원자금 내역, 앞으로의 활동계획 등이 상세히 수록돼 있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宋교수와 관련한 우리 사회 내 논의내용, 그 추이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宋교수가 합법적 활동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宋교수 케이스는 북한 입장에서는 성공적 공작 사례가 될 것이다.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의 전향 없는 성공적 한국 입성이라는 상징성 외에도 북한에 유리한 宋교수의 영향력이 남한 내 깊숙이 자리잡게 되었다고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宋교수를 분단이 빚은 불행한 지식인이라고 묘사하고 관용을 베풀게 되면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국제사회에 과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요지로 말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한 지식인의 이념적 성향에 관한 사안이 아니다. 이는 북한을 위해 활동한 한 에이전트의 에스피어나지(Espionage) 사건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보이지 않는 위해로부터도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원칙에 얼마나 충실하고 철저한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국제사회는 자기보호 의지와 능력이 강력한 기강 있는 사회를 존중한다. 이를 소홀히 함은 오히려 경시의 빌미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 10년 가까이 실형을 살고 있는 로버트 金 사건은 동맹국 간에 통상적으로 공유할 수도 있는 정보를 허가 없이 넘겨주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그만큼 간첩사건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관용의 폭과 여유가 허용되지 않는 것이 국제적 추세다.

안보체제는 구체적 관련 사안이 한건 한건 실무적으로 철저히 다루어진 선례가 쌓여야 강해진다. 그런 관점에서 宋교수에 대한 과도한 온정주의적 자세는 이제는 접어야 한다. 그리고 사법부의 엄정한 판단에 맡겨야 한다. 북한이 우리의 강고한 안보 의지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도록 사건이 마무리되도록 기대해 본다.

이병호 전 안기부 차장, 울산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