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예술 영화 년 평균 30편 제작 조선영화 예술 촬영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평양=김경희】북한이「전면적 개화기에 들어섰다」고 내세우는 영화예술의 중심지는 평양 북서쪽 형제산 구역 하당리의 조선 영화예술 촬영소.
지난 18일 최신 과학 기술 장비들과 엄청난 촬영세트를 갖췄다는 북한 최대의 이 촬영소 정문을 들어서자 최고령의 현역 인민 배우 유원준씨(72), 월북 원로 배우 문예봉(76)씨, 인민 배우 남궁연씨, 이 촬영소 대외 사업처장 강성철씨(51) 등이 미리 나와 기다리다가 반겨주었다.
『유언』『임진왜란』『아무도 몰라』등의 영화포스터가 붙어있는 대형 게시판과 혁명가극『꽃 파는 처녀』를 영화화한 기념으로 세웠다는 초대형 동상에 눈길을 뺏기며 촬영세트로 향하는 사이 환영 나온 배우와 촬영소 관계자들은 앞다투어 이 촬영소의 역사·규모 등을 소개했다.
김알성 주석이 양말공장이 있던 이 자리가 촬영소로. 쓰기에 매우 적합하다고「1교시」한 날이 이 촬영소의 창립 기념일인 47년2월7일. 1백만평방m(촬영소 구내 25만평방m, 야외의 촬영소 75만평방m)의 부지에 세워진 이 촬영소에는 ▲옛 왕궁과 양반집 등이 있는 조선거리 ▲중국거리 ▲일본거리 ▲너와집이 있는 백두산 양각마을 ▲서양 거리 ▲녹촌 마을 ▲지방 도시 등 7개「피사체거리」(야외세트)가 있다. 2백명의 전속 배우, 27명의 연출가(감독), 1천5백명의 종사원이 연평균 30편의 예술 영화(단편 문화영화 포함)를 만든다. 최고 책임자는 연출가 출신의 백민 총장. 그 아래 ▲예술 ▲제작 ▲기술 ▲행정 등 4개 부문의 부총장이 있고 예술부총장 산하에 ▲백두산 ▲보천보 ▲삼지연 ▲왕지산 ▲대홍단 등 5개 창작단이 각각 영화를 만든다. 각 창작단은 3개의 제작단을 두고 있어 실제로는 15개 제작단이 영화를 만들고 있는 셈. 따라서 영화마다 어느 창작단이 만들었다고 표시돼 있다.
배우단에 속한 2백명의 배우들은 다시 7개 그룹으로 나뉘어있다. 주로 58년에 개교한 경양 영화 연극대 졸업생가운데 매년 15명 정도씩 새로 선발한다.
배우들은 매주 목요일 기량 발표회를 열어 재담·시낭송·노래 등을 통해 기량을 닦으며 정년은 남자60세, 여자55세. 그러나 건강이 허락하면 계속 활동할 수 있다. 89년에 은퇴한 문예봉씨처럼 현역에서 물러나면 공로자 작업반원에 편입대 매주 토요일 직품 평가 및 자문활동에 참가하기도 한다고.
이 촬영소의 대표작은『꽃 파는 처녀』. 그밖에 인민배우 유원준이 주연을 맡은『춘향전』, 서경섭의『숲은 설렌다』, 공훈 배우 김명희의『양기말 사람들』등이 유명하다고 그들 스스로 손꼽았다. 30∼40대의 신진 연출가들로는 박상복·정건조·박정주 등이 각광받으며 『임꺽정』을 만든 장영복은 심리파악의 귀재라고 소개했다.
연간 3백50만원(약1백70만달러)의 예산으로 평균20만∼30만원씩 들여 영화를 완성하면 필름을 2백∼3백벌 떠서 문화예술부 영화관리국이 보급한다. 전극에는 1천여개의 5백∼1천석 짜리 영화관이 있다. 관람료는 대체로 어른이 40전, 대학생10전, 어린이와 중고생 5건 정도.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좋은 영화에 대해서는「인민상」이 수여된다.『꽃피는 마을』『요람』『나의 행복』『보증』등의 영화로 잇따라 인민상을 받은 대홍단 소속의 연출가 김영호씨는『요즘 인민들이 모두 통일을 열망하고있어 통일에 관한 영화를 구상 중』이라며『기자선생께서 작품을 하나 써 보내주면 어떻겠냐』고 제의하기도 했다. 북한 영화에도 입맞춤 등 농도짙은 애정장면이 나오느냐는 질문에는 『필요하다면 넣을 수도 있으나 흥미보다는 교양적인 면이 우선』이라며『안기는 장면 정도는 나오지만 침대에서의 정사장면 같은 것은 「인민이 외면」한다』고 대답했다.
한편 일반인들의 월급이 평균 1백50원 정도인데 비해 수준급 배우들은 3백50원쯤 받고, 좀더 나은 주택을 배정받는 등의 특혜가 있다. 지방 촬영시에는 분장실·침대칸·식당칸 등을 갖춘 특별열차를 운행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