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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 발언 이동걸…“부울경이 한국 경제 싱크홀되서는 안 돼”

중앙일보

입력

최근 사의를 표명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기자간담회.[산업은행]

최근 사의를 표명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기자간담회.[산업은행]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이 한국 경제의 싱크홀이 돼서는 안 된다. 알짜 산업 다 갖고 있으면 구조조정하고 키워서 발전해달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사의를 표명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2일 온라인 기자회견서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었던 산은 부산 이전에 대한 작심 발언인 셈이다.  이 회장은 내년 9월 임기 만료를 약 1년5개월 남긴 지난달 26일 금융위원회를 통해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부산 이전이) 충분한 토론과 공론화 절차 없이 무리하게 추진되는 게 우려스럽다”며 “잘못된 결정은 치유할 수 없는 폐해를 야기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산은 부산 이전이 부울경에 2조~3조원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전혀 근거가 없다“며 “국가 경제에 미치는 막대한 마이너스 효과는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기업 구조조정에 빗대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선 지역의 고통 분담과 책임있는 역할, 지속가능한 지역발전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산은의 부산 이전은 ‘지역 이기주의’라는 게 이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부울경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 이후 가장 특혜받은 지역으로 국가의 집중 지원으로 기간 산업이 집중돼 있다“며 “(부산이) 제2의 경제도시라면 빼앗아 가려 하지 말고 스스로 노력해 경쟁력을 찾고 국가 경제와 다른 지역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지난 5년간 산은의 성과도 피력했다. 그는 "'지난 5년간 산은이 한 일이 없다' '3개로 쪼개야 한다'는 등 도가 넘는 정치적 비방이 있다"며 "이는 산은 조직에 대한 모독이고, 어려운 여건서도 묵묵히 일하는 3300명 산은 직원과 가족에 대한 모독"이라고 밝혔다.

그는 2017년 9월 취임 당시 산은 회장의 위치를 ‘10여개 부실기업을 거느린 국내 최대 재벌 회장’이라고 했다. 금호타이어를 비롯, 대우조선해양과 대우건설, 현대상선(현 HMM) 등 굵직한 부실기업을 끌어안은 탓에 산은도 자본잠식 직전 수준까지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 부임 직전인 2015~16년 산은은 부실기업 구조조정으로 5조5000억원 상당의 순손실을 냈다.

이 회장은 "최근 대우조선해양과 KDB생명, 쌍용차 매각이 무산되는 등 차질이 발생해 안타깝고 책임을 통감한다"며 “하지만 3건을 제외하면 금호타이어와 대우건설, HMM 등 11개 기업의 구조조정을 끝냈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부터 5년간 정부에 지급한 배당금과 납부한 법인세만 2조2102억원에 이른다”며 “(시장의 오해와 달리) 산은은 (정부의) 돈을 받아서 정책을 하는 게 아니라 돈을 벌어서 하는 ‘시장형 정책금융기관’”이라고 설명했다.

매각이 불발된 대우조선해양과 쌍용차의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놨다. 그는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업 차원의 구조조정 필요하다”며 “국내 조선 3사가 공존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만큼 '빅2' 체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쌍용차에 대해선 “본질적인 경쟁력이나 지속 가능성이 낮은 만큼 자금 지원으로 회생하기 어렵다”며 “회생법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번 사의 배경에 대해 “산은은 은행인 동시에 정부 정책을 금융 측면에서 집행하는 정책기관”이라며 “정부와 정책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 회장직을 수행하고, 정부와 함께 평가받는 게 맞다”며 "정부와 임기를 맞춘다는 차원에서 사의를 표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교체기마다 기관장 교체 관련 잡음이 일어나는 데 이는 소모적인 정쟁으로 5년 주기로 반복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중요 정책기관을 선별해 임기를 5년이나 2년 6개월로 정해 정부와 정책기관장의 임기를 맞추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의 대표적인 친문(親文) 인사로 꼽히는 이 회장은 문재인 정부 임기 초인 2017년 9월 취임한 뒤 2020년 9월 한차례 연임했다. 2020년 9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출판기념회에서 "가자 20년"이란 건배사를 제안한 것이 알려지며 정치 중립 의무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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