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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절 아닌 인민군창건일 열병식…선대와 차별화 '만고절세 김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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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기념해 열병식을 진행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박정천·이병철 당 비서를 비롯해 이영길·권영진·임광일 등 군 간부들과 주석단에 자리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지난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기념해 열병식을 진행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박정천·이병철 당 비서를 비롯해 이영길·권영진·임광일 등 군 간부들과 주석단에 자리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벌인 4월 축제의 마무리는 열병식이었다. 그것도 최대 명절인 김일성 생일(4월 15일, 태양절)은 건너뛴 '택일'과 최신 전략 무기 무더기 공개 등 '김정은 스타일'을 그대로 담아냈다.

북한은 매년 김정일 생일(2월16일)부터 김일성 생일로 이어지는 2달간을 축제 기간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기념행사를 진행해왔다. 올해 4월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공식 집권 10주년(4월 13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일(4월 25일)도 있어 경축 행사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인 지난 25일 저녁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극초음속미사일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최신 전략 무기들을 선보이며 4월 행사의 마침표를 찍었다.

당초 열병식 날짜로는 태양절이 유력하게 꼽혔다. 전례를 봐도 김 주석 생일의 경우 정주년(5·10년 단위로 꺾어지는 해)마다 열병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김일성·김정일 생일은 올해 각각 110·80주년으로 정주년을 맞았다. 북한은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통해 선대 지도자들의 생일을 '성대히 경축'할 것을 공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선택은 태양절이 아닌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이었다. 집권 10년 차를 맞은 그가 선대지도자인 김일성·김정일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에 성공했음을 과시하려는 정치적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이번 열병식을 통해 90년 전 항일 무력 투쟁을 위해 단출하게 꾸린 혁명무력이 김정은 시대 들어 완성된 핵무력을 가진 강군으로 거듭났다는 '스토리텔링'을 내놨다. 김 위원장의 이날 연설에서도 선대 지도자를 가리키는 ‘김일성’, ‘김정일’, ‘수령님’, ‘장군님’ 등의 언급은 전혀 없었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북한이 이번 열병식에서 김정은의 우상화를 내비치는 전형적인 극장국가의 모습을 보여줬다"며 "앞으로 핵무력 완성과 건설 등 민생분야 성과를 토대로 우상화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매체들도 열병식을 계기로 김 위원장의 우상화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노동신문은 27일 '만고절세의 영웅 김정은 만세'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걸출한 수령을 모실 때라야 자기를 지키고 존엄을 떨칠 수 있는 강위력한 국가방위력, 불패의 군력을 지닐 수 있다"며 "(김 위원장이 있어) 우리의 혁명무력이 있고 오늘의 조선이 있다"고 주장했다.

열병식 내용 자체도 이를 체제 결속과 핵·미사일 등 전략무기를 과시하는 무력시위 무대로 활용해온 김 위원장의 그간 스타일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과거 김일성은 열병식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에 비해 예술에 관심이 많고 영화와 같은 시각물 연출에 능숙한 김정일은 열병부대의 입장 대오를 직접 편성하고 주요 정치기념일을 중심으로 격년에 한 번꼴로 열병식을 여는 등 큰 관심을 기울였다.

김 위원장은 한 국가의 군사역량을 함축하는 의식이라는 열병식의 전통적 의미를 살려 국내·외적 정치적 용도로 톡톡히 활용해왔다. 특히 열병식에 등장했던 각종 신형 전략무기는 어김없이 시험발사로 이어지며 한반도에서 긴장을 끌어올리는 수단이 됐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이 열병식에서 선보인 신무기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북한이 지난달 24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화성-17형'은 2020년 10월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 등장한 ICBM급 장거리 미사일이다. 북한은 지난해 1월 열린 8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에서도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5ㅅ(시옷)'과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단거리 전술 미사일(NK-23) 확대 개량형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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