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친서 교환 나흘뒤…김정은 "핵무력 사용할수 있게 준비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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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력을 언제든지 가동할 수 있게 철저하게 준비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26일 전했다. 북한 매체는 전날(25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 소식을 전하며 이같이 밝혔다.

통신에 따르면 열병식에 참석한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우리 국가가 보유한 핵 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며 "우리 핵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여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 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이 최근 들어 '핵전투무력'(김여정)과 '전술핵'(북한 매체)을 언급하긴 했지만 김 위원장이 공개 연설에서 자신의 육성으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한 건 처음이다.

북한이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 창건 90주년인 지난 25일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열병식 뒷부분에 등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포-17형이 사열대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의 이런 주장은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친서를 교환한 지 나흘 만에 나왔다.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노력을 기울여 나간다면 북남관계가 민족의 염원과 기대에 맞게 개선되고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록 조건부이긴 하지만 한국의 정권 교체기에 ‘개선’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점에서 올해 들어 극도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이 한동안 무력시위를 중단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북한이 25일 0시 열병식을 하지 않은 것도 친서 교환 분위기를 고려한 게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왔던 이유다.

하지만 북한이 역대급으로 평가받는 열병식을 강행하고, 이 자리에서 핵무력을 언급한 건 ‘친서는 친서고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의도라는 지적이다. 특히 북한이 최근 공개적으로 한국을 핵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언급에 이은 열병식 강행이어서 눈길을 끈다.

이날 열병식엔 김 위원장의 부인 이설주 여사가 참석했고, 북한은 괴물급 ICBM(대륙간탄도미사일)로 불리는 화성-17형을 비롯해 최신형 전술미사일을 대거 동원했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북한은 열병식을 대내 결속과 대외 메시지 발신 등 이중용도로 활용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이번 열병식은 내부적인 정치 행사의 분위기를 극도로 끌어 올리는 동시에 한국의 새 정부와 미국을 향해 전쟁이냐, 대화냐 양자택일하라는 뜻이 담겼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지난해 1월 14일 8차 당대회 기념열병식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북한이 ‘0시 열병식’이 아닌 밤 10시에 시작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북한은 2020년부터 10월 10일 당 창건 기념일을 비롯해 계기가 있을 때마다 해당일 0시를 시작시간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심야에 하면서도 해당일 밤 10시를 택한 것이다. 1시간 남짓 진행한 것으로 보이는 열병식이 25일을 넘기지 않으려는 의도 알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현준 국민대 교수는 “기상상태로 인해 예정보다 열병식이 늦춰졌을 가능성은 있지만, 북한의 의도적인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외부에서 24일 밤, 25일 0시에 열병식이 열릴 것이란 관측을 고려해 관심을 최대한 집중시키고 역대급 무기공개에 나서는 방식을 택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25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김일성 주석이 (항일 빨치산 기간)독창적 유격전법을 창조했다”며 “적들의 수적,기술적우세를정치사상적, 전략전술적우세로 단호히 제압하여 승리를 이룩할수 있게 한 근본비결”이라고 주장했다. 일종의 빨치산식 열병식을 진행한 셈이다.

한편, 이날 열병식에는 이명수, 태종수, 최영림, 김경옥 등 은퇴한 군 고위 인사들이 초대를 받아 참석했다. 특히 지난 2월 1일 설명절 공연 관람후 모습을 감췄던 북한 군부 서열 1위인 박정천 당 비서 83일만에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