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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선제 핵공격’ 위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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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핵무기를 ‘전쟁 방지’ 목적 외에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국가의 근본 이익 침탈’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을 뜻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7년 ‘핵보유국’을 선언한 북한이 ‘국가의 근본 이익 침탈’이라는 포괄적인 목적으로 핵무기 사용 조건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전략이 근본적으로 변경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열병식 연설에서 “우리 핵 무력의 기본 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돼 있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전했다. 이어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 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공화국의 핵 무력은 언제든지 자기의 책임적인 사명과 특유의 억제력을 가동할 수 있게 철저히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위원장이 언급한 국가 이익은 모호한 개념으로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며 “사실상 자의적 판단으로 군사적 상황(무력 충돌, 군사적 대치 등)이 아니더라도 핵을 선제 사용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전쟁 초기 주도권을 장악하고 타방의 전쟁 의지를 소각하며 장기전을 막고 자기의 군사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핵 전투 무력이 동원되게 된다’는 지난 5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발언과 연계해 볼 때 “북한은 핵 사용 시기·용도·대상 측면에서 가장 공세적인 핵전략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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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또 이날 연설에서 “우리 국가가 보유한 핵 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 조성된 정세는 보다 적극적인 조치들을 강구할 것을 재촉한다”고 평가하면서다.

이는 올해 7차 핵실험과 각종 미사일 시험발사를 빠른 속도로 진행하겠다는 의미여서 2017년과 같은 북·미 간, 남북 간 대립 구도가 조성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북, 윤 당선인 취임일 전후 핵·ICBM 도발 가능성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북한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일(5월 10일)을 전후해 7차 핵실험이나 정찰위성 발사를 명분으로 ICBM 시험발사를 기습적으로 강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과 친서를 교환한 지 나흘 만에 나왔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노력을 기울여 나간다면 북남 관계가 민족의 염원과 기대에 맞게 개선되고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은 25일 열병식을 강행했고, 이 자리에서 핵전략 변화를 언급하는 등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했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이번 열병식은 한국의 새 정부와 미국을 향해 전쟁이냐, 대화냐 양자택일하라는 뜻이 담겼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6일 “북한이 열병식을 통해 지난 5년간 겉으로는 평화와 대화를 주장하면서도 실제론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수단들을 개발하는 데 몰두해 왔다는 것을 입증했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우리에게 엄중하고 현실적인 위협이 됐으므로 이를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고 밝혔다.

이번 열병식은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이 조선인민혁명군(항일빨치산)을 조직했다고 주장하는 1932년 4월 25일을 기념한 것이다. 항일빨치산 기념 열병식 개최는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처음이다. 이날 오후 9시쯤 시작된 열병식엔 김 위원장의 부인 이설주 여사가 참석했고,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과 극초음속 미사일 2종,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각종 최신 전략무기를 대거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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