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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명 쫓아낸뒤 민주노총이 채웠다" 공정위 제재뒤 쏟아진 제보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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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도와주세요. 현장도, 업체도 너무 고통 받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민주노총 부산건설기계지부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는 보도(4월 12일 중앙일보 기사) 이후 전국에서 이 같은 제보가 쏟아졌다. 부산·울산·충남 등 전국에서 들어온 제보는 주로 민주노총 지역지부에 의해 공사현장에서 쫓겨났다거나 더는 일감을 딸 수 없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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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쫓겨났다” 제보들

지난 2월 부산의 한 공사현장 앞을 가로막은 민주노총 부산건설기계지부 굴삭기지회. 조합원 기계 임대 채용 요구가 목적이다. [건설기계개별연명사업자협의회 제공]

지난 2월 부산의 한 공사현장 앞을 가로막은 민주노총 부산건설기계지부 굴삭기지회. 조합원 기계 임대 채용 요구가 목적이다. [건설기계개별연명사업자협의회 제공]

2020년 8월 울산 북구의 한 골프장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덤프트럭 기사 엄해득(66)씨는 일을 시작한 지 2달도 안 돼 현장에서 쫓겨났다. 엄씨는 건설노조 조합원이었는데 노조의 단체행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노조에서 제명됐다. 엄씨는 “그때 나까지 7명이 쫓겨나고, 그 자리를 노조가 채웠다”며 “그 이후론 울산에서 일을 못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부산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선 레미콘·굴착기 등 모든 장비가 일제히 멈췄다. 민주노총 조합원 굴착기만 계약할 것을 거부하자 노조 측에서 공사를 방해한 것이다. 결국 시공사는 민주노총과 협약서를 체결했다.

공정위 ‘이중잣대’ 지적 

공정위도 이 같은 내용의 사건을 신고받아 조사하고 있다. 노조 사무실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섰지만, 노조 측이 “우린 사업자가 아닌 노동조합”이라는 이유로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 아예 사무실을 폐쇄하기도 해 현장조사를 통해선 자료 확보를 하지 못 했다. 공정위는 사업자단체 금지 행위로 제재에 착수하거나 조사를 하고 있다.

건설기계사업자들 사이에선 공정위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노조 불법행위는 오래전부터 발생했는데 나서지 않다가 국무총리실 주관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TF'가 만들어진 이후에야 조사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굴착기·덤프 개인사업자 등이 주축인 건설기계개별연명사업자협의회에 대해선 사업자단체 금지행위로 여러 차례 과징금을 부과했다. 노조와 협의회에 다른 잣대를 들이대면서 건설기계노조의 규모가 커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월 5일 민주노총 부산건설기계지부 한 지회 밴드에 올라온 게시글. 공정위 현장조사에 대비해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독자 제공]

지난 4월 5일 민주노총 부산건설기계지부 한 지회 밴드에 올라온 게시글. 공정위 현장조사에 대비해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독자 제공]

“경찰·고용부 뒷짐만 져”

특히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건설기계사업자들은 공정위보다도 경찰·고용노동부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노조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노조 관리 책임이 있는 고용부는 소극적이라는 불만이다. 김낙욱 협의회 사무국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경찰이나 고용부나 노조가 얽힌 사건은 시간만 끌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고용부와 경찰에 여러 차례 사건을 접수했다. 건설현장의 노조 채용 강요에 먼저 나서는 곳이 없으니 직접 법을 찾아가며 경찰 등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김 사무국장은 지난해 5월 고용부에 “울산지역 레미콘·덤프 사업자는 전부 건설기계노조에 소속돼있다. 사업자가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게 하거나 근로기준법 위반을 처벌해달라”고 신고했다. 사건은 1년째 진행 중이다. 경찰 역시 업무방해 현장을 앞에 두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2020년 5월 14일 파업에 돌입한 전국건설노동조합 부산건설기계지부 소속 부산, 양산, 김해, 진해지역 레미콘 노동자들이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20년 5월 14일 파업에 돌입한 전국건설노동조합 부산건설기계지부 소속 부산, 양산, 김해, 진해지역 레미콘 노동자들이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공정위와 함께 TF에 참여한 고용부는 채용절차법 위반으로 6건을 적발해 과태료 총 9000만원을 부과했다. 건설현장에서의 채용압력·강요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부과했을 뿐 건설기계 사업자의 노조 가입 적법성이나 근로기준법 위반 의혹은 따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시급하게 호소하는 문제는 외면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의지에 달린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검사 출신 김은정 변호사(법무법인 리움)는 “노조 소속 기계를 임대하라면서 집단행동을 하는 건 업무방해·공갈 혐의에 해당할 수 있다”며 “수사 의지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건설사 관계자는 “노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덤프나 굴착기, 크레인 등 모든 기계가 멈춘다. 공기를 맞춰야 하는 입장에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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