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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코로나 치료 현장에서 희생된 의료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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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충기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김충기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기본적인 위생 개념조차 전무하던 시대에 인류를 절멸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감염병은 악마의 저주나 천형(天刑)으로 여겨졌다.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이 대유행한 이후 작은 병균이 이미 휩쓸고 간 자리에서 공포로 쇠약해진 사람들이 뱉어낸 분노는 타인을 악마적 존재로 규정하는 차별과 혐오의 형태로 전염됐다. 이러한 전염은 과학과 이성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감염자에 번호를 붙이며 동선을 낱낱이 공개하고 감염원 일대를 폐쇄하는 방역 전략은 무지에서 비롯된 공포 때문이다. 이를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이미 그 과정에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된 이들이 적지 않다.

감염병 공포가 차별·혐오로 작용
의료인 안전한 근무 환경 보장을

감염병 유행 시기 가장 심각하게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된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의료기관이었다. 감염자가 발생한 의료기관은 공개적으로 기피 대상으로 지목되고 급기야 혐오 대상이 됐다. 방역 방침을 적절히 준수해도 ‘감염의 온상’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벗어나기 어려웠고 결국 폐업하거나 의료기관 이름을 바꾸는 사례도 있었다.

수시로 선별진료소에 자원한 경기도 파주의 한 의사는 현장에서 느끼는 아쉬움을 전했다. 진료 현장에서 환자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하며 폭염 속에서 대체인력 지원 없이 과로하다 질병을 얻기도 했지만, 누구도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 큰 상처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불특정 환자의 얼굴을 매일 맞대는 의사들은 누구보다 감염 공포를 벗어나기 어렵다. 경기 광명과 성남의 병·의원에서 진료하던 이비인후과 의사 두 분이 올해 연달아 코로나에 감염돼 영면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기침·콧물 등 상기도 증상으로 내원한 환자의 코와 입안, 목구멍을 직접 들여다보는 진료 과정에서 코로나 노출 위험이 누구보다 컸을 것이다. 필자가 입수한 지난 1월 15일 기준 통계를 보면 코로나 감염 의료진 중 위중증으로 분류된 71명 가운데 40명, 사망자 15명 중 10명이 의사였다. 지난 3개월 동안 더 늘었을 수 있다. 중증 감염에 의사들이 더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급격한 오미크론 확산 이후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의사들은 부지기수다. 몇몇 병원은 인력 공백을 이유로 확진되더라도 격리 기간을 대폭 단축하고 업무 복귀를 재촉하고 있다. 의료 인력에 대한 체계적 돌봄과 관리가 부재한 가운데 환자 진료를 위해 의료진은 스스로 안전과 생명을 돌볼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1월 ‘위드 코로나’로 의료 붕괴 위기를 겪었다. 최근에는 ‘위드 오미크론’ 상황을 위태롭게 보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겪은 의료 위기 상황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하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정확하고 치밀한 계획보다는 돌발적 상황을 모면하고자 각계각층의 헌신과 희생으로 이룬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공포와 불만을 이해하고 조율하지 못했고, 국민을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을 충분히 심어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지금 상황은 여전히 위태롭다.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진은 유난스러운 감사나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감염병 창궐 현장에서 꿋꿋이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제대로 지원해주기를 원한다. 비이성적인 공포에 사로잡힌 차별과 혐오뿐 아니라 감염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기를 바란다.

또한 방역 일선에서 얻은 경험과 전문가적 의견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집단지성의 중요한 주체인 의료인이 위기 극복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의사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얻은 현장 경험이 효과적인 방역 전략에 참고가 되길 기대한다. 그것이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소명을 다 하려 애쓰는 현장 의사들의 작은 소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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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기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