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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말 172석 거여 폭주, 검수완박 강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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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72석의 거대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4월 임시국회에서 입법 절차를 강행키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기 전 법안 공포 절차까지 마무리해 검수완박을 제도적으로 못 박겠다는 취지다. 대통령 임기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여당이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법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자 국민의힘은 “폭주. 이성을 잃었다”는 표현을 쓰며 반발했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국회 본청 예결위 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검수완박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 한해 남아 있는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에서 삭제하는 게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검찰은 경찰 내부 비리 등 극히 일부 사건을 제외하곤 직접수사가 불가능해진다. 민주당은 이런 내용의 법안을 4월 중 입법 완료하되, 시행은 3개월 이상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한국형 FBI’ 같은 별도 수사기구 설립은 장기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의총에서는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기도 어렵지만, 통과된다고 해도 지방선거에서 지고 신뢰를 잃지 않을까 걱정된다. 방법과 시기는 충분히 더 논의해야 한다”(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는 신중론도 일부 제기됐다. ‘친이재명계’ 김영진·김병욱 의원, ‘소신파’ 박용진 의원 역시 비공개 토론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검찰개혁을 어젠다로 삼으면 역풍을 맞는다”는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검찰에 대한 골 깊은 불신과 격한 감정이 신중론을 압도했다. 설훈 의원은 “지난 금요일 검사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검찰이 국회 위에 있다’는 걸 몸소 느꼈다. 검찰개혁을 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이학영 의원은 “옛날에 국정원에 불려가 고문을 당하고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이제는 국정원이나 군부가 아닌 검찰이 나를 두렵게 한다. 이 두려움이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의 발언은 의총에서 가장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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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권이 죄다 경찰로 넘어가면 경찰 권력이 비대해진다”는 우려 역시 “일단 하자”는 다수설에 힘을 잃었다. ‘처럼회’ 소속 민형배 의원은 “악마가 디테일에 있다고 그 디테일까지 다 따지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일단 하고 나중에 더 (보완)하면 된다”고 말했다.

검수완박 논의에 최근 불을 지핀 건 열린민주당 출신 최강욱·김의겸 의원과 ‘처럼회’ 소속 강경파 의원들이다.

국민의힘 “이재명 방탄법”… 정의당과 연대 필리버스터 추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둘째)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책 의원총회가 끝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김상선 기자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둘째)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책 의원총회가 끝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김상선 기자

강성 권리당원들은 ‘검찰개혁 반대 의원’ 명단을 만들고, 문자폭탄을 보내거나 사무실을 방문하는 식으로 압박했다. 지난 8일 검찰 내부 반발이 가시화되되면서 입법 여론에 가속도가 붙었다. 지난 6일 민주당 법조인 출신 의원 간담회 때만 해도 신중론이 우세했지만, 8일 중진 의원 간담회에선 “검찰이 집단 정치행위를 하면 입법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다수였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동인의 40%는 강성 당원들의 요구가, 60%는 검찰이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대국민 공청회와 대안 입법, 국회 토론 절차는 생략됐다. “70년 이상 정착한 형사사법제도의 근간을 변경하려면 그 문제점과 보완책까지 완벽하게 마련됐다고 확신할 수 있을 단계에 이르러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형사법학회 전·현직 원로 성명)는 목소리는 묻혔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만나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안까지 적극 검토하고 있다. 전날(11일)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배수진을 친 김 총장으로선 사실상 마지막 카드다. 그러나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이날 울산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거부권 건의와 관련, “너무 앞서간 이야기”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국회에서 진행되는 사안에 대해 청와대가 먼저 입장을 내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국회 논의가 끝날 때까지 입장을 낼 계획이 없다. 과거 코로나 등 현안을 앞두고 국회 파행을 우려한 문 대통령이 여당에 신중한 접근을 요청한 적이 있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민주당의 입법 강행 움직임 때와는 달라진 분위기다. 지난해 2월 검수완박 입법 움직임이 있을 때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에 출석해 “문 대통령께서 속도 조절을 당부했다. 속도 조절이라는 표현을 한 게 아니라 검찰개혁이 잘 안착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언론중재법 강행처리 움직임 때는 문 대통령이 직접 신중론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여권에선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민주당의 움직임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은 “민심과 한참 동떨어진 검수완박 법안 추진은 지방선거에서, 2년 뒤 총선에서 반드시 자승자박이 돼 돌아올 것”(박형수 원내대변인)이라며 반발했다.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서는 “대선 민심을 거스르고 문 대통령과 이재명 상임고문을 지키기 위한 방탄법안”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형사사법시스템 개선 TF 또는 특위 구성을 제안하는 한편,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등으로 저지에 나설 계획이다. 정의당과의 연대도 추진하기로 했다.

정의당은 “수사권 조정 및 공수처 출범 등의 성과와 한계를 살핀 뒤 방안을 마련하자고 요청한 정의당으로서는 유감스러운 결정이다. 국회가 극단의 대결로 동물국회로 치닫지 않을까 우려된다”(장태수 대변인)고 논평했다. 정의당은 13일 긴급 연석회의에서 구체적 대응방안을 논의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입장을 내지 않았다. 내부에서 비판 여론이 거세긴 하지만 법안 처리는 국회 영역인 만큼 인수위 차원의 입장을 따로 낼지는 추후 검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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