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부장관이 그래도 되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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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통일에의 접근방식은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마주해야 함을 우리는 최근의 남북교류 속에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축구시합을 보는 남북 관중들이 한민족 한핏줄임을 교감하는 뜨거운 가슴이 있어야 하는 다른 한쪽엔 그런 교류가 가능하게끔 주도면밀한 계획과 협의를 거치는 맑은 이성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북교류의 현장을 뜨거운 가슴으로 지켜보는 관중이 일반국민이라면 그 교류를 한치의 착오도 없이 계획하고 추진해야 할 맑은 머리의 소유자가 교류를 맡고 있는 당국자여야 한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남북교류에서 협상의 책임자들이 보여준 추태와 무책임성은 한심한 단계를 넘어서 지탄의 대상으로까지 비화하고 있음에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통일축구 행사의 마지막 환송연에서 체육부 장관은 거나하게 술을 마신 뒤 북측 대표를 강권해서 기념촬영을 한 것까지는 만찬회의 흥을 돋우기 위한 애교로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만찬회가 끝난 다음 곧이어 진행될 남북체육장관회담이 있는데도 걸음이 비틀거릴 만큼 술을 마셔야 했는지,또 남북 체육교류를 위한 2시간에 걸친 회의에서 맑은 머리로 과연 대좌할 수 있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체육교류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정 장관이 북경과 평양에서 보여 왔던 추태와 몰지각한 자세에 대해서는 수행기자들의 자세한 보도가 잇따라 있었던 터였다.
남북축구대회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대회일자ㆍ시합종목ㆍ취재기자 선정문제 등에서 북측 제의에 따라 끌려만 다녔던 협상자세에 대해 많은 질책과 비난이 있었다.
그 질책과 비난은 어느 특정인을 터무니없이 매도하고 비난하기 위한 성질의 보도가 아니라 체육교류의 중대성에 비춰 책임을 지고 있는 당국자의 금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깨우치기 위한 경고이고 시정을 촉구하는 고언이기도 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양의 환영식장에서도 장관의 체통을 잃은 실수를 저질렀다고 전해지고 있고 서울의 축구대회에서도 교류의 책임자로서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 같다.
TV 주간연속극과 평양체류기 기사를 편파와 왜곡으로 트집잡아 선수단을 철수하겠다는 북쪽 항의에 편파시정을 약속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맑은 머리와 치밀한 계산으로 맞서 체육교류의 장래를 협의하고 추진해야 할 남북체육장관 회담장에서까지 만취된 모습으로 등장했다고 하니 할 말을 잃을 뿐이다.
물론 체육교류의 책임자로서 그 교류가 몰고온 민족적 흥분에 장관의 뜨거운 가슴이 북받쳐 올라 잠시 이성을 잃을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체육교류의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차가운 이성은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채 뜨거운 가슴만으로 내달은 책임자에게 더이상 그 직분을 맡겨야 할 것인가.
통일을 향한 교류의 중대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어야 할 이 때에 맑은 이성과 치밀한 두뇌를 갖고 이를 추진할 인물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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