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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중국이란 편리한 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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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한슬 약사·작가

박한슬 약사·작가

치열했던 대선이 끝나고, 드디어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 같다. 급격히 치솟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의 증가세도 한풀 꺾인 데다, 영업시간 제한 등 현 정부 방역 정책의 전면적 개편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윤석열 후보에 대한 기대감이 겹친 탓이다. 그렇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내년 이맘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선순위에서만 밀렸을 뿐이지,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기간에 걸쳐 의제화가 이뤄진 탓에 미세먼지의 위험성은 비교적 널리 알려졌지만, 이를 어떻게 줄이겠냐는 논의는 몇 년간 소모적인 ‘원인’ 논쟁으로만 흘러갔다. 중국이라는 편리한 핑계가 있어서다. 논쟁의 여지는 있으나, 계절성 미세먼지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이다. 별다른 산업시설이 없는 서해 백령도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서울보다 높을 이유는 중국밖에 없다. 그런데 원인 중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과 원인 중 실제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이냐는 것은 전혀 다른 질문이다. 국내에서는 개선할 부분이 없을까.

여기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는 연구가 지난해 중순 무렵 한국대기환경학회지에 실렸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전후 서해의 백령도, 남해의 제주도, 동해의 울릉도 세 곳의 미세먼지 농도를 비교함으로써 미세먼지의 국내 영향을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섬에서의 2020년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직전 5년 평균보다 줄었는데, 백령도는 17.8%, 제주도는 23.4%, 울릉도는 30.3%가 감소했다. 중국발 초미세먼지만의 영향이라면 백령도의 감소 폭이 가장 크고, 울릉도 감소 폭이 가장 작았어야 했는데 결과가 반대로 나온 것이다.

중국의 지역별 초미세먼지(PM2.5) 농도 변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중국의 지역별 초미세먼지(PM2.5) 농도 변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실제로 이를 뒷받침하는 다른 근거도 있다. 중국이 이웃국을 얕잡아보는 깡패국가라곤 하지만 자국민까지도 무시할 순 없다. 과거 베이징의 미세먼지 농도는 서울 미세먼지 농도의 5배 수준이었고, 몇 년간 꾸준히 누적된 불만이 위험수위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중국 정부는 이를 극적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중국의 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매년 감소했는데도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엇비슷하게 유지된다는 건, 국내 요인도 무시할 수 없이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중국이라는 편리한 핑계 뒤에 숨어 제대로 된 국내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수행하지 않았다. 대선 공약을 수행할 주무부처인 환경부 장관이 산하기관장들의 사직을 종용하는 딴짓에만 집중하다 교도소에 갔다곤 하더라도 양해되기 어려운 일이다. 중국에 따끔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좋지만, 새 정부는 부디 실용적인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펴주길 바란다.

박한슬 약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