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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프리츠커상, 희망을 주는 건축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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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우리나라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커튼과 벽지 고르기가 집에 대해 가르치는 것의 전부다. 집이 무엇인지, 집이 모여 어떤 공동체를 이루는지, 또 함께 살려면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전혀 가르칠 줄 모른다. 참 신기한 일이다. 매일 들어가 살고 일하는 게 건축물이건만, 불행하게도 건축물은 그냥 지으면 되는 것으로만 알고 있고, 집은 투기 대상, 공시가격으로 매겨지는 부동산 같은 것으로만 여기며 산다. 슬픈 일이다.

생활 수준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인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의 한 건축가가 지난 16일 올해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디베도 프란시스 케레(57). 이름도 생소하다. 몹시 가난한 나라의 고향을 떠나 다행히도 좋은 건축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그는 훗날 자기가 간 길을 다음 세대도 따라갈 수 있게 공동체에 보답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학부생 때부터 고향에 학교를 지을 협회를 세워 3만 달러의 기금을 모았다.

올해 수상자는 서아프리카 출신
‘미래를 함께 짓는 건축’ 일깨워

그런 그가 수도 와가두구에서 한참 떨어져 있고 수도나 전기도 없으며, 깡통이나 짚으로 만든 지붕을 얹은 오두막집에 사는 고향 마을에 처음으로 학교를 지었다. 간도 초등학교다. 그래 봐야 커다란 지붕 아래 진흙 벽돌로 지은 교실 3개뿐인 학교다. 유명한 대학에서 건축을 배웠다는 사람이 고작 진흙 벽돌로, 그것도 마을의 모든 사람이 함께 짓자는 그의 제안에 주민들은 실망했다.

그러나 그는 가장 흔한 재료인 진흙 벽돌 건물은 무더운 기후에 대응하고 전기도 덜 소모할 뿐 아니라, 누구나 이 건설 기술을 익혀서 이웃 마을에도 학교를 지어줄 수 있다고 그들의 협력을 호소했다. 이에 남자들은 건설 현장에 돌을 운반했고 시멘트와 물을 섞어 진흙 벽돌을 만들었다. 여자들은 벽돌 만드는 데 필요한 물을 담은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7㎞가 넘는 길을 운반해 주었다. 아이들은 1년 동안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할 때 기초에 놓일 돌을 하나씩 날라 줬다. 그들은 이렇게 진흙·돌·물로 자신의 미래를 함께 지었다.

초등학교 학생이 많이 졸업하게 되니 1000명이 다닐 중학교도 짓게 됐다. 이 학교는 공동체가 만나고 회합하는 장소도 됐다. 건물로 교육을 짓는 일은 이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케레는 간도 마을의 300명 회원에게 농업, 물 관리, 임업을 가르치고 곡물 창고도 제공하며 여성회관도 완성했다. 케레의 건축물은 자기 고향의 미래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공동의 가치를 발견해 갔다.

건축물을 짓는 것은 지역의 잠재력을 살리고, 공동체의 모든 이가 희망과 미래를 함께 짓는 일이다. 학교를 짓는 것은 교육의 미래를 짓는 것이고, 청사를 짓는 것은 행정의 미래를 짓는 것이다. 건축물이 지어지면 그때부터 사회의 자산이 된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사람의 생활을 규정한다. 이 ‘아주 오랫동안’이 건축물로 주어지는 우리 공동의 미래다.

한국사회는 유명 건축가가 지은 멋진 건축물, 뿌리 없는 인문학적 지식을 덧씌워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건축가에게 특별한 관심을 둔다. 그러면서 우리는 왜 건축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못 받느냐고 아쉬워한다. 그러나 프리츠커상은 스포츠의 금메달이 아니다. 프리츠커상은 건축은 제도를 바꾸고 사회를 비판하며 재구성하는 힘이 있음을 알고 이를 실천해 사회에 희망을 주는 건축물을 지은 건축가에게 주어진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우리 사회는 ‘건축은 미래를 함께 짓는 것’이라는 사실에 얼마나 동의해줄까. 특히 정작 사회를 바꿀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장관·국회의원들은 이 사실을 얼마나 마음으로 받아줄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면 “교육이 없으면 개발은 하나의 꿈이다”라고 한 케레의 말에서나, 그가 받은 프리츠커상에서나 배울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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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