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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획 시론

형사사법 시스템 수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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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새 대통령에 바란다 ⑤

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시대 포청천은 어디에 있는가(전제). 공정하고 정의로운 포청천만 있다면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검찰개혁이니 사법개혁이니 하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없다. 그러한 포청천은 신이거나 드라마의 환상일 뿐이다. 정의를 갈망하는 경찰이든 검찰이든 판사든 대통령이든 그 실존적 존재는 본능과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다. 제도는 객관적이나 현실의 제도 운용자는 주관적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한 인간을 전제로 제도를 구성해야 한다. 누가 맡더라도, 나아가 아무리 극악한 인간이 맡더라도 정의로운 결과가 나오는 제도를 찾아 길을 떠나는 것이다. A는 악하므로 모든 권한을 빼앗고, B는 착하므로 모든 권한을 주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이다. 시스템이 정의를 찾도록 해야 한다. 사람보다 제도다.

검·경의 유기적 협력 체계 필요해
정의로운 결과 낼 제도 모색하되
정치권력이 일일이 관여 말아야

누구를 위하여 제도는 울리나(목적). 우리는 모두가 조화롭게 잘 살려고 제도를 만든다. 제도는 사회 구성원의 복리를 증진할 때 정당하다. 지휘니 독립이니 하는 소란이 국민과 연결되지 않고 제도 담당자에 머무를 때 그것은 치졸한 권력다툼일 뿐이다. 국민은 피와 살이 있는 구체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추상화한 국민은 관념으로만 존재해 국민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사익을 탐하는 공간을 제공한다. 가령 절대적 신임을 받고 선출된 권력이라도 국민이 그의 사익까지 위임한 것은 아니다. 정치권력이 언제나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제도는 국민을 위해야 한다.

국민을 위하는 길은 무엇인가(구성원리). 구체적 존재로서의 국민, 즉 갑돌이와 갑순이를 위하는 형사사법은, 피해자의 눈물을 따뜻하게 닦아주고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처벌받지 않으며 죄지은 사람이라도 공정한 절차를 보장받도록 해야 한다. 점점 복잡해지며 갈등도 깊어지는 현대사회에서 학문도 융합을 통해 진리와 당위를 찾으려 한다. 경찰과 검찰을 나눠 벽을 치면 각자의 골방에 들어가 다른 것은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뿐만 아니라 그 각 골방에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양자의 분리로 권력이 분산됐다고 자위하는 동안 권력(형사권력)은 남용되고 또 다른 권력(정치권력) 앞에 무력해진다.

오류와 편견에 취약한 인간이라도 서로 다른 의견들을 교환하며 정의를 찾아갈 수 있다. 시작부터 종결에 이르는 절차의 전 과정에서 어느 누구도 단독으로 결정하지 않는 유기적 합력이 시스템 안에서 이뤄질 때 그 제도는 공정한 결과를 보장한다.

그런 제도는 어떻게 만드는가(방법론). ‘연느님’의 올림픽을 보고 피겨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샘솟았다, 그래서 피겨의 기술을 고안하고 채점방식도 고안한 다음 피겨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그런데 나의 열정을 따라올 사람이 없으므로 나의 방식이 가장 옳다고 주장한들, 피겨가 발전할 수 있을까. 나는 피겨를 해본 적이 없는데… 피겨는 연느님이 한다. 형사사법 제도를 구상하는 일은 전문가가 해야 한다.

국민을 위한 열정을 가졌다 한들 제도 작동 기제에 대한 이해가 없이 막연한 구름 속에서 구상한다면 그 제도는 허망하게 흩어질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념의 열정이 강할수록 사실을 왜곡할 위험이 커지고 거기서 만들어진 제도는 독이 가득한 연기가 돼 스멀스멀 국민을 해칠 가능성이 커진다. 제도 개혁이 입법화할 때까지 수많은 전문가가 참여하고 논의하고 합의를 이루는 과정을 거치는 선진국들의 사례는 그래서 의미 있다.

합의는 어떻게 이루는가(절차). 진리로 효력요청을 할 수 있는 참된 합의는 이상적 대화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어야 한다는 하버마스의 순수함에는 이르지 못할지라도, 대화를 회피하는 트랙을 타고 대화 주제와 관계없는 사탕으로 4+1이 모이고 그러고 나서 몸싸움까지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입법이라면, 참된 입법으로서 효력이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나아가 제도의 구상은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선량한 입법이라도 단지 그런 제도가 국민의 이익에 봉사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뿐이다. 과학적 명제는 검증될 때 비로소 참으로 인정받는다. 제도 개선이 기대효과를 실제로 가져올지 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검증을 거친 연후에야 제도는 정당하게 된다. 제도 개선은 과학이다.

제도는 정치적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그러나 형사사법은 제도가 담당해야 한다. 제도를 탄생시킨 정치가 제도의 구체적 적용에까지 일일이 관여하는 것은, 제도 밖에서 제도를 지배해 제도를 왜곡시킨다. 권력을 탐하는 정치는 칼로 정적을 제거하면서 권력을 틀어쥔다. 과거에는 그 칼이 생물학적 목숨을 도려냈다면 이제는 그 칼이 사회적 생명을 도려낸다. 칼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권력은 제도를 이용해 왔다. 당사자적 이해관계가 있는 정치권력이 구체적 사안에 관여하는 것은 그 명칭이 무엇이든 결국 제도라는 허울을 쓰고 칼을 휘두르는 것이다. 형사사법은 제도에 맡겨두라. 가이사(Caesar)의 것은 가이사에게, 가이사의 것만 가이사에게.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