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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획 시론

왜곡된 주택정책 ‘대못’ 하나씩 뽑아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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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새 대통령에 바란다 ④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초입부터 부동산 공약이 승부를 판가름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주택 가격이 급등하고 세금 부담이 급증해 집을 소유했거나 못 가졌거나 모든 국민이 힘들고 고단했기 때문이다. 두 주요 정당의 후보가 경쟁적으로 부동산 공약에 공을 들였지만,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문 정부와의 단절을 강조하는 모습이 유달리 인상적이었다.

후보들 모두 문 정부 정책의 파산 선언을 출발점으로 삼다 보니 부동산 공약이 엇비슷해졌다. 우선 대규모 주택 공급을 약속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250만호 공급 목표를 세웠고, 이재명 후보는 무려 311만호를 약속했다.

할 수 있는 일, 없는 일 구분부터
다주택자 희생양으로 몰면 곤란
부동산 세금 전면적인 개편 필요

상당 물량을 재개발과 재건축에 할애하면서 과감한 규제 완화를 내세웠는데, 특히 경기 분당·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재정비를 강조했다. 두 후보 모두 청년층 등 무주택자가 쉽게 많은 대출을 받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부동산 세금 부담 완화 방향에도 공감대가 있었다. 공통점이 많다 보니 부동산 공약이 대선의 결정적 승부처가 되지 못했지만, 이재명 후보의 파격적인 공약이 문 정부의 부동산 실정을 덮을 수는 없었다.

여소야대 구도에서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입법적 뒷받침을 받을 수 있을까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곧 야당이 되는 민주당이 내걸었던 공약에 진정성이 있었다면 협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 정책의 대전환을 추진하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유념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잘 가려내야 한다. 주택시장은 약 2000만 가구가 같은 숫자만큼의 주거를 찾아가는 거대한 생태계다. 이 복잡한 생태계를 흔들어 놓는 정책이 과연 의도한 결과를 낳을지, 부작용이 크지 않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핀셋 규제’ 같은 것은 애당초 가능하지 않다. 주택이 고가이고 실제 공급까지는 몇 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정부 정책의 한계가 뚜렷한 점도 충분히 유념해야 한다.

정책 불확실성과 높은 정책 비용을 고려하면, 대부분 국민에게 더 좋은 주거를 누리고 싶은 희망은 시장을 통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택지개발, 금융 및 조세, 저소득층 주거복지 등 여러 측면에서 정부 개입이 필요하지만, 이는 시장이 해결하기 어려운 애로 요인을 보완하는 성격이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뼈저리게 경험했듯이 시장과 싸우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둘째, 부동산정책의 모든 측면은 물론이고 특히 세제에서 다주택자를 희생양으로 몰지 말아야 한다. 문 정부는 다주택 보유자를 투기자로 몰아 가혹한 중과세 조치를 중첩 적용했다. 그러나 문 정부의 과격한 실험 결과는 “세금으로 가격 안정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소수 다주택자의 투기 때문에 주택가격이 급등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는 주택 임대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체 가구 중 자가거주자 1146만 가구, 공공임대주택 거주자 166만 가구를 제외한 723만 가구가 민간 임대인으로부터 셋집을 구해 살고 있다. 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임대주택 공급자 중 다수가 다주택자들이다.

다주택자 때리기는 임대주택 공급을 줄이고, 전세가를 올리며, 전세의 월세 전환을 촉진해 결국 무주택자의 주거비 부담을 늘린다. 새 정부는 다주택자의 역할을 인정하고, 적어도 중립적인 세제와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때까지만 해도 1가구 1주택에 대해서는 혜택을 주되 다주택자는 일반 세율을 적용했던 것을 기억하자.

셋째, 주택건설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유연한 집행이 필요하다. 노무현 정부 때 “주택은 부족하지 않다. 투기가 문제다”라고 우기다가 뒤늦게 너무 많은 주택을 공급했고, 그 결과 극심한 미분양에 시달렸다. 3기 신도시 등 대규모 물량이 시장에 나오는 시점에 주택경기와 중장기 주택 수급을 면밀히 검토해 연도별 공급 물량을 세부 조정해야 할 것이다.

도시환경과 주거의 품질에 대해서도 고심해야 한다. 도심·역세권 20만호 건설이나 1기 신도시 정비사업 등에서 모두 용적률을 높인다고 하는데, 대략 300% 이상의 용적률은 아이를 키우며 살기에 너무 과밀한 환경이다. 없는 땅에 밀도만 높이지 말고, 제한적인 그린벨트 규제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

문 정부의 주택 정책은 각종 제도를 영구적으로 왜곡시켰다. 새 정부가 여러 곳에 박힌 ‘대못’을 뽑는 작업은 지난할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택 경기가 가라앉고 있어 다소 여유가 생겼다. 따라서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조치는 조속히 시행하되 크고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2024년 총선까지 대안 마련과 공감대 형성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해도 좋겠다.

특히 부동산 조세는 당장 시행할 수 있는 몇 가지 조치를 제외하면 전체 체계를 다시 짜야 하는 큰 작업이므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수고로운 과정을 건너뛰어서 초래된 문 정부의 총체적 부동산 정책 난국을 돌아보면 2년을 투자해 그만큼 더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닐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