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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소주성 얘기 안 나오게"…한은, 노동소득분배 지표 60년만에 대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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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연합뉴스

한국은행.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노동소득분배율 산출 지표를 확 바꾸기로 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이하 소주성)의 근거로 활용한 통계다. 이 통계의 지표를 바꾸는 것은 1960년대 이후 60여 년만이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지표 개선작업을 마무리하고 오는 6월부터 적용할 방침이다.

한국은행은 이런 내용을 담은 '노동소득분배율 지표 개선을 위한 세미나'를 18일 열고 개편 내용을 공개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한 해 동안 생산활동으로 생긴 국민소득에서 자본에 의한 소득을 제외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한국은행은 지금까지 근로자 보수와 기업 소득(영업 잉여)을 합한 금액(전체 소득)에서 근로자 보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산출했다. 1960년대 이후 바꾸지 않았다. 올해 6월부터는 달라진다. 현재의 산출 지표는 주(主)지표로 유지한다. 대신 몇 가지 보조지표를 추가해 국가통계로 공표하기로 했다.

노동소득분배율, 한국은행의 국가통계와 현 정부의 주장 비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노동소득분배율, 한국은행의 국가통계와 현 정부의 주장 비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근로자 보수에다 자영업자가 번 소득(혼합소득)을 합한 금액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첫 번째 보조지표로 내놓는다. 지금까지 노동소득분배율 산출 방식으로는 영세 자영업자의 노동소득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한국은행은 추가 지표도 생산할 방침이다. 전체 소득에 고정자본소모(시설 투자비와 감각상각비 등)를 포함하고, 그 총액에서 근로자 보수와 혼합소득의 비중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이는 분배 지표라기보다 자본과 노동의 생산기여도를 볼 때 사용하는 지표다. 생산 측면에서의 노동탄력성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한국은행이 오는 6월부터 적용하기로 하고 개편하는 노동소득분배율 통계 지표.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국은행이 오는 6월부터 적용하기로 하고 개편하는 노동소득분배율 통계 지표.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신석하 숙명여대 경제학 교수는 "보조지표를 통해 노동소득분배율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그러나 "다만 첫 번째 지표는 노동소득분배와 관련된 것이다. 기업의 투자비를 포함한 두 번째 지표는 소득의 분배를 따지는 지표가 아니라 생산 기여도를 들여다보는 지표"라며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각 지표의 성격과 활용방식에 대한 설명을 추가로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이 60여 년 만에 노동소득분배율 생산 방식을 바꾸기로 한 것은 노동소득분배율을 둘러싸고 통계가 임의로 왜곡 적용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그동안 발표해온 노동소득분배율은 2010년 58.9%에서 매년 꾸준히 늘어나 2016년 62.5%를 기록했다. 2017년 62%로 소폭 감소했지만 2018년 63.8%로 오르는 등 증가 추세를 이어왔다.

2018년 6월 3일 노동소득분배율을 두고 논란이 일자 당시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현 KDL 원장)이 청와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개인기준 근로소득 증가율 표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6월 3일 노동소득분배율을 두고 논란이 일자 당시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현 KDL 원장)이 청와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개인기준 근로소득 증가율 표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한국은행의 통계와 정반대로 주장했다.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하는 등 이른바 소주성을 경제운용의 근간으로 삼았다. "공식적인 국가 통계인 한국은행의 통계를 제쳐두고 자의적인 기준을 썼기 때문"(유경준 국민의힘 의원, 전 통계청장)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현 정부가 쓴 산출 방식은 근로자 보수와 기업 소득에 고정자본소모를 합한 액수로 근로자 보수 비중을 나눠 계산했다. 한국은행이 6월부터 발표하기로 한 보조지표 중 두 번째와 유사하다. 고정자본소모는 공장과 기계설비 등 고정자본(시설)이 마모되는 것을 고려한 설비 보수 등에 필요한 비용 또는 연구개발 투자비로, 기업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증가할 수밖에 없는 비용이다. 실제로 고정자본소모는 1970년대 국민총소득(GDP)의 7%에서 지난해 20%까지 증가했다. 이런 투자비를 포함하면 분모가 커지게 되고, 근로자 보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진다. 기업의 투자비가 증가할수록 분배율은 계속 하락할 수밖에 없다. 즉 기업의 투자가 노동소득을 빼앗는 행위가 되는, 엉뚱한 결과를 산출하게 된다. 이 때문에 현 정부의 산출방식을 두고 자의적 통계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한국은행은 현 정부의 이런 주장에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2년여 동안 연구작업을 거쳐 새로운 지표를 내놓기로 한 것이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면서 한국은행의 공식 국가 통계와는 전혀 다른 지표를 이용해 노동의 몫이 자본의 몫에 비해 지속적으로 하락했다고 주장해왔다"며 "이 때문에 최저임금의 급상승에 따른 자영업자의 몰락과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고용시장의 추락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더는 통계 왜곡으로 인한 소주성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새로운 노동소득분배율 지표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용어 해설 ■

▶고정자본소모
생산활동에는 공장이나 기계설비와 같은 고정자본(시설)이 필요하다. 시설은 생산활동 과정에서 마모되기 마련이다. 현 수준의 생산을 지속하려면 보수해야 한다. 이에 드는 투자 비용이다. 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구개발과 같은 투자도 게을리할 수 없다. 이 비용도 포함된다.

▶혼합소득
자영업자가 생산활동을 하며 창출한 소득의 경우 노동 소득과 시설 등의 자본 수익을 분리해 측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혼합소득을 사용한다. 외국 대부분 국가는 소득분배지표를 공표할 때 혼합소득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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