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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은식의 일리(1·2) 있는 선택

"광주가 조국" 범죄 옹호에 분노...광주 출신 의사 尹 찍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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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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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새 기획 칼럼 시리즈 '나는 고발한다. J'Accuse...!'가 대선 이후 드러난 다양한 표심 읽기에 도움이 되는 나는 고발한다 번외편 '일리(1·2) 있는 선택'을 14일부터 일주일 동안 매일 연재합니다.
1번이든 2번이든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무지하다고 비판하거나 악마화하는 대신 그 선택의 이유를 들어보며 상대에 대한 이해를 높여보자는 취지입니다. 경기도에 사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인 40대 화이트컬러 남자 이진용씨의 글에 이어 민주당 텃밭 광주에서 2번을 선택한 30대 의사 박은식씨의 칼럼을 소개합니다. 더 많은 관련 칼럼은 중앙일보 사이트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 다음날인 10일 광주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배경은 지난 2월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연설 중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그래픽=전유진 기자

대통령 선거 다음날인 10일 광주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배경은 지난 2월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연설 중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그래픽=전유진 기자

나는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5·18과 지역 차별이라는 아픈 기억을 대대로 공유하는 환경에서 자란 30대 의사다. 현재 내과 전문의로 코로나 확진자를 진료하고 있다. 많은 광주시민이 그러하듯 오랫동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하며 정통 민주당 계열 정당 지지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서울 소재 의과대학 진학 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무조건 하나의 특정 정당만 지지하기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 생산적 복지를 추구하는 정당에 표를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 이후 공정을 내걸고 당선된 문재인 정권만은 정치적 지향과 무관하게 부디 잘해주길 바라며 지지했다.

'광주가 조국이다' 구호에 분노 

지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집권 초반 드루킹 여론조작이 드러나며 이 정권 정통성에 의구심이 생긴 탓이다. 또 문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 절반의 국민을 적폐로 모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비리 의혹이 촉발한 소위 조국 사태가 터졌고, 당시 광주의 한 시민단체가 내건 ‘광주가 조국이다’라는 플래카드를 보며 분노했다. 내 고향의 견고한 지지를 자기 진영 범죄자 옹호에 이용하는 행태를 참을 수 없었다.

지난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옹호하는 서울 서초동 집회에 나부낀 '광주가 조국이다' 플래카드. [SNS 캡처]

지난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옹호하는 서울 서초동 집회에 나부낀 '광주가 조국이다' 플래카드. [SNS 캡처]

광주에서 자란 평범한 청년인 나로선 고교 시절 의대 교수를 사적으로 만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입시 준비라 해봐야 종일 EBS 문제집과『수학의 정석』을 풀 뿐이었다. 그런데 친한 의대 교수에게 부탁해 고교생 자녀를 주저자로 올리고 표창장까지 위조하는 위법한 방식으로 남의 기회를 빼앗아 내 자식을 기어이 의대생을 만든 '내로남불의 상징' 조국이 어떻게 내 고향 광주를 상징할 수 있는가.

문재인 민주당 정권의 실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취약계층 일자리를 없애버리고, 앞서가는 원자력산업을 무너뜨리고는 멀쩡한 나무 베어낸 자리에 중국산 태양광을 설치하고, 수많은 권력형 성(性) 비위 사건을 저지르고 오히려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 폄하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팔아 후원금을 가로채고, 반일 감정을 자극해 외교를 망치면서까지 자기들 표 장사만 하고, 일관성 없는 코로나 19 방역을 빌미로 국민의 자유를 겁박하고, 검찰개혁을 한다면서 정권 비리 수사하는 검사들은 죄다 좌천시켰다. 어디 이뿐인가. 자신들은 서울 강남의 비싼 아파트에 살면서 힘없는 국민은 살던 집에서 쫓겨나 월세를 전전하게 하지 않았나.

더 기가 막힌 건 잘못이 드러나도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과는커녕 정권 심판론이 불거진 후 대선 후보로 내세운 인물이 민주당의 말단 당직자로도 부적격한 검사사칭, 음주운전, 공용물건손상, 선거법 위반의 전과 4범이었다. 지지자들 반대에도 노동 유연화, 일본 문화 개방,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등의 정책을 추진하며 잘못하면 고개를 숙이는 염치를 보여줬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광주에 갈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나를 비롯한 적잖은 출향민들이 민주당 지지를 철회했다. 하지만 광주에 사는 사람들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 아무리 실망해도 마음을 줄 대안 정당이 없어서다. 그렇게 민주당이 광주에서 장기간 일당 독재를 하고 견제할 세력마저 씨가 마르다 보니 광주시의 청렴도는 5등급 꼴찌가 되고 복합쇼핑몰과 5성급 호텔이 단 하나도 없는 뒤처진 도시가 됐다. 편찮은 아버지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광주를 방문할 때마다 생활 인프라의 부족이 안타까웠다. 최근엔 터미널 인근 화정동 아파트 붕괴 현장과 집 앞 학동 건물 붕괴 잔해를 보며 한없이 부끄러웠다.

지난달 7일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달 7일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중앙포토]

대선 국면에서 이런 사실을 간파한 국민의힘은 호남에 공을 들였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 광주 복합쇼핑몰을 공약하고 "호남이 잘 돼야 영남이 잘 되고 영남이 잘 돼야 대한민국이 잘 된다"는 연설로 화합의 정치에 진심을 보여줬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남의 외진 흑산도까지 찾아 지역 발전 공약을 챙겼다. 한때 호남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30%에 육박한 이유다. 그러자 민주당에서 갑자기 광주정신을 들먹이며 광주는 절대 국민의힘을 찍으면 안 된다고 가스라이팅을 했다.

지난해 11월 광주 지역 50여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음 날로 예정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광주 방문을 비판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광주 지역 50여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음 날로 예정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광주 방문을 비판하고 있다. [뉴스1]

도대체 광주정신이 뭘까? 민주당이 무슨 잘못을 하든 민주당만 찍어주는 게 광주 정신일까? 아니다. 광주는 북한과 이념대결을 하던 시기 이승만과 박정희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자유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또 5·18 때는 ‘북괴는 오판하지 말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민주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광주는 지금 다양한 볼거리와 쇼핑을 즐길 복합쇼핑몰을 원한다. 시장경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를 더한 게 바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다. 나는 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가 바로 광주정신이고 대다수 대한민국 국민이 바라는 보편적인 가치와도 정확히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의해 불타 죽어도 아무 말 못 하고, 민주화 운동 이력을 내세워 사익을 추구하고, 광주시민이 바라는 쇼핑몰 반대도 모자라 ‘어차피 광주는 가난해서 소비할 능력도 없다’며 비하하는 등 광주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해왔다.

국민의힘, 호남 민심 계속 두드려야 

한동안 광주 분위기가 술렁였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기대했던 것만큼의 표는 얻지 못하고 과거와 똑같이 민주당이 싹쓸이했다. 광주복합쇼핑몰 공약 이슈가 도마 위에 올랐을 때 광주에 없는 것들 리스트가 여러 커뮤니티에 떠돌면서 고질적인 광주 비하 밈이(meme) 재현되어 시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탓일까? 출향민인 나도 지인이 "은식아, 광주에 진짜 코스트코·이케아·스타필드 없어? 주말에 뭐 하고 놀아?"라고 물으면 자존심이 상했는데, 하물며 광주 사람들 심정은 어땠을까? 국민의힘이 공들인 만큼 호남 지지율을 얻지 못하면서 일부는 호남 공략을 실패한 전략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실패하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은 역대 최고 호남 득표를 기록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호남 민심을 두드렸으면 좋겠다. 이미 과거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이정현이 순천에서 당선되고, 정운천이 전주에서 당선된 바가 있지 않나. 또 문재인 후보 지지세가 뚜렷하던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호남의 30% 지지를 받았다. 이는 호남 일당독주를 하는 민주당에 대한 비토 정서, 그리고 정치지형이 바뀔 여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증명한다.

무엇보다 희망적인 것은 이번 대선에서 호남 2030의 비(非) 민주당 지지율이 40%에 육박했다는 점이다. 꼭 특정 정당이 지지를 더 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도 있지 않나. 민주당 담론이 지배하는 광주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다양한 주제에 관해 토론할 기회가 마련되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서로 견제하는 정치가 회복되고, 종국에 내 고향 광주·호남 지역이 발전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