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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재용이 고발한다

"15% 안올려주면 파업"…연봉 1.4억 삼성전자 노조에 묻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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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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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서울시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 노조. 그래픽=김현서

지난 2월 서울시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 노조. 그래픽=김현서

2021년 평균 연봉 1억 4000만원(2021년 감사보고서 기준)을 받은 회사 직원들이 올해는 기본급 15% 인상, 영업이익 20% 성과급 지급(2021년 기준 인당 1억원 수준)을 요구하며 "안 들어주면 파업하겠다"고 한다면.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그야말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는 많은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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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2020년 11만명 국내사업장 임직원에게 인건비로만 총 13조원을 썼습니다. 동종업계 국내 경쟁사보다 영업이익률, 1인당 매출액 면에서 우수하지만 직원 급여 수준 역시 훨씬 높습니다. 이 회사를 한참 앞서가는 세계 최고기업과 비슷한 수준이고요. 만약 위와 같은 노조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연 인건비만 20조원을 넘게 됩니다.

동학개미 여러분, 이런 회사 주식 사겠습니까? 다들 짐작하겠지만 지난해 최고 실적을 낸 삼성전자 얘기입니다.

대기업의 성과급 잔치 

삼성전자 계열사 직원 급여. 그래픽=김은교

삼성전자 계열사 직원 급여. 그래픽=김은교

올해도 어김없이 대기업 성과급 기사가 넘쳐납니다. 코로나 19 와중에 역대 최대 실적을 낸 반도체와 배터리·정유·철강·바이오 업종 기업 직원들은 후한 성과급을 받았습니다. SK 하이닉스는 기본급의 1300%,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 부문은 연봉 50%에 추가 기본급 500%, SK 이노베이션과 LG 이노텍은 기본급의 1000%, LG전자 H&E 사업부는 기본급의 최대 710%, CJ 제일제당 바이오 사업부는 연봉의 최대 82%, LG 에너지 솔루션은 지난해의 2배가 넘는, 기본급의 450%를 받았습니다.

쉬쉬하던 기업 성과급이 대중의 뜨거운 관심사가 된 이 생경한 풍경은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됐습니다. MZ 세대가 선봉에 섰던 SK 하이닉스 성과급 사태 말입니다.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대기업 MZ 세대 직원들은 성과 보상에 대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했고, 기업 오너들과 경영진들은 이 문제를 봉합하느라 땀을 뻘뻘 흘렸습니다.

화이트칼라 MZ 세대 직원들은 기성세대보다 보상의 공정성에 민감합니다. 이들에게 성과급은 더 이상 실적 좋을 때 조직이 선심성으로 쏘는 선물이 아니라 내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보상)입니다. 직장에서의 보상이란 본인이 제공한 노동(시간·노력·기회비용)에 상응하는 대가이며, 이 교환관계가 공정한지 따지는 건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존 생산직 위주 노조가 정년보장, 임금 및 근로조건의 개선 등 모든 근로자의 권리를 내세워 투쟁했다면 최근 MZ 세대 위주의 대기업 사무연구직 노조는 개인 성과를 반영한 공정한 보상체계를 가장 중요한 어젠다로 내걸고 있습니다.

더 많은 성과급 총대 멘 삼성전자

이번엔 역대 최대 실적을 낸 삼성전자 노조가 총대를 멨습니다. 아직 가입자가 많지는 않지만 삼성전자 내 4개 노조가 결성한 노조 공동교섭단은 사측에 15%대 기본급 인상과 영업이익 20% 성과급 지급을 요구해왔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에도 사측과 합의하지 못해 쟁의권을 확보했습니다. 1969년 설립 이후 53년 만에 처음으로 삼성전자에서 파업이 일어날 수 있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그동안 일절 노조의 요구에 응하지 않던 경영진이 18일 노조 교섭단과 임금교섭 대화에 나선다고 합니다. 경계현 반도체(DS) 부문 사장이 직접 화성사업장에서 노조 대표자를 만납니다.

여기서 노사 이외에 또 생각해볼 주체가 있습니다. 바로 주주입니다. 대기업 성과급 기사마다 "그 돈은 주주의 돈인데 누가 맘대로 성과급 잔치냐"는 비판 댓글이 붙습니다. 주주 자본주의하에서는 기업이 초과이익을 내면 내부유보든 자사주 매입이든 주주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ESG 경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대두로 경영성과를 주주뿐 아니라 협력업체·직원·고객 등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공정하게 배분하는 게 첨예한 이슈가 됐습니다. 최근 MZ 세대 직원들의 성과 배분에 대한 불만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지금까지도, 그리고 SK하이닉스는 지난해까지 영업이익에서 세금을 빼고 자본제공자 몫을 뺀 경제적 부가가치(EVA)의 20%를 임직원 성과급 재원으로 삼았습니다. LG그룹도 2006년까지 EVA의 3분의 1을 성과급 재원으로 정했고요.

 반도체 사업의 호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높은 실적을 내면서, 임직원들의 성과급에도 관심이 쏠렸다. [연합뉴스]

반도체 사업의 호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높은 실적을 내면서, 임직원들의 성과급에도 관심이 쏠렸다. [연합뉴스]

그러나 SK 하이닉스는 올해부터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하고, 삼성전자 노조는 급기야 영업이익의 2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경영성과급을 평균임금에 산입해야 한다는 하급법원 판결까지 나왔습니다. 모두가 주저하지 않고 기업에 경영성과 배분을 요구하는, 그야말로 성과 배분의 춘추전국시대입니다. 각자가 각자 받아 마땅한 몫을 받는 게 공정이라면 그 몫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할까요? 불행히도 우리는 아직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보다 많은 성과 공유를 요구하는 MZ 직원들 말도 경청해야 합니다. 사실 그동안 성과급 지급기준은 불투명했고 규모 역시 경영진 재량으로 결정했습니다. 직원들은 여기서 소외된 대신 평생 고용과 승진으로 보상받았죠. 하지만 평생직장 따위 없는 세상이 왔으니 이런 젊은 직원들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연봉인상 경쟁하다 실적 저하 게임업계 잊었나 

지금 개발자 등 인재 확보 전쟁 중인 일부 직군 연봉은 부르는 게 값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연봉 인상 경쟁을 벌였던 게임업계가 개발자 직군 인건비 상승 탓에 실적이 크게 하락한 데서 알 수 있듯 보상이 인건비 부담으로 직결되는 걸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삼성전자 11만 직원들이 13조원의 가치가 있는 ‘자원’인지 정교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과급이 자신의 노력에 크기에 과연 비례하는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MZ세대의 강한 목소리에 맞서 이제 회사 최고경영진도 이해관계자 간 배분 비율 (sharing rule)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분명 한국 최고 인재인 삼성전자 노조분들. 제가 삼성전자 직원 1인당 평균연봉을 상장기업 전체 자료를 토대로 통계모형을 만들어 추정치를 한번 내보았습니다. 모형에 의한 예측치는 실제 평균 연봉보다 꽤 낮은 1억원이 채 안 됩니다.

『일의 격』이란 책에서 KT 신수정 부사장은 직원 연봉은 기업의 수익모델, 직원의 회사 수익에 대한 기여도, 그리고 해당 직원 능력의 희소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능력 대비 최대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국내 최고 수익 모델을 가진 삼성전자에 다니는 건 분명 축하할 일입니다. 다만 내 능력이 회사의 280조 매출, 52조 영업수익을 올리는 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내 업무역량이 얼마나 대체 불가한지도요. 삼성전자의 이번 최대 실적은 상당 부분 업황의 결과입니다. 운이 작용했다는 거죠. 매출과 영업이익이 과거보다 훨씬 못 미쳤던 당시에도 직원 여러분이 노력을 덜 했던 건 아니잖습니까. 운이란 좋을 수도 있지만 나쁠 수도 있습니다. MZ의 공정이 선택적인 공정이라는 기성세대의 비판을 피하려면 성과가 안 좋아졌을 때 수천만 원이던 성과급을 아예 못 받거나 심지어 연봉삭감도 감수해야 합니다.

지난해 삼성라이온즈 야구단의 새 연봉 체계를 흥미롭게 봤습니다. 과거 5년 동안 삼성은 가을 야구, 즉 플레이오프전에 진출을 못 했죠. 지난해엔 정규시즌 2위, 그리고 6년 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했습니다. 새 연봉제의 핵심은 ‘연봉체계를 스스로 선택한다’는 겁니다. 선수 23명에게 카페테리아처럼 3개의 메뉴, 그러니까 기본형·목표형·도전형을 줬습니다. 기본형은 말 그대로 연초 결정된 고정 연봉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목표형은 고정연봉의 90%를 기본급으로 받고 나머지는 성과목표를 달성하면 덜 받은 10%의 몇 배를 보너스로 받는 겁니다. 도전형은 고정연봉 80%만 받고 덜 받은 20%의 몇 배를 보너스로 받습니다. 능력과 성과에 비례하는 보상을 원한다면 기본급·성과급이 동시에 오를 수는 없는 겁니다.

타협점이 있을까 싶은 MZ 세대 직원과 회사 경영진과의 첨예한 시각차를 감안하면 임금 협상을 둘러싼 갈등은 연례행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양측 모두에 제 칼럼이 타협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