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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윳값 사실상 2000원…우크라 사태는 아직 반영도 안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8일 서울 한 주유소에 게시된 유가. 연합뉴스

8일 서울 한 주유소에 게시된 유가. 연합뉴스

유류세 20% 인하 효과를 덜어낸 실질 휘발윳값이 L당 2000원을 넘어섰다. 국제 유가와 환율 ‘쌍끌이’ 급등에 국내 석유류 가격은 더 치솟을 전망이다. 정부는 유류세 추가 인하를 예고했지만 가파르게 오르는 유가 탓에 효과가 희석될 가능성이 커졌다.

8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사이트 ‘오피넷’에서 집계한 전국 주유소 보통 휘발유 판매가격(소매가)은 1L에 1853.73원으로, 하루 전보다 25.39원 상승했다. 2014년 7월 이후 7년 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5일 1800원 선을 넘어선 이후에도 휘발윳값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그나마도 유류세를 낮춰 전국 평균 휘발유가가 아직 1800원대다. 유류세를 낮추지 않았다면 이날 휘발유 가격은 2000원을 이미 돌파했다. 오피넷 자료를 토대로 모의 계산한 결과 유류세 20% 인하 효과(부가가치세 포함)를 뺀 원래 휘발유 소매가격은 8일 기준 L당 2018.14원에 이른다.

유류세 인하 전후 휘발유 가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유류세 인하 전후 휘발유 가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역대 최고 기록 ‘L당 2063원’ 경신 초읽기

유류세 인하 덕에 휘발유 가격이 아직 1800원대지만 추가 상승은 기정사실이다. 이미 서울지역 휘발유 가격은 1900원 선을 뛰어넘었다. 이날 28.2원 급등하며 1927.46원으로 올라섰다.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국제 유가 급등이 석유제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았는데 국내 유가에 빨간불이 켜졌다. 보통 국제 유가 등락은 2~3주 시차를 두고 국내 석유제품값에 영향을 미친다.

위험 요인은 더 있다. 환율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유럽 지정학적 위기,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 위험 우려가 금융시장에서 부각되며 원화가치가 빠르게 추락(원ㆍ달러 환율 상승)하고 있어서다.

이날 오전 서울 외환시장 개장과 함께 달러당 원화값은 1230원 선을 뚫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5월 이후 1년9개월 만의 일이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러시아 원유수입 금지 등 서방 경제 제재에 의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확산하자 안전 선호 심리에 (달러화가) 강세”라고 분석했다.

전국·서울 주유소 휘발유 가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국·서울 주유소 휘발유 가격.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원화가치가 내려가면 달러화로 거래되는 원유를 상대적으로 비싼 값에 사들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오른 국제유가에 환율 급등까지 겹치며 국내 석유류 가격 폭등이 예고되고 있다. 지금 상승 속도라면 휘발윳값 역대 최고 기록인 L당 2062.55원(2012년 4월 18일) 돌파도 시간문제다.

유류세 더 낮춰도 유가 상승 못 막아

정부는 유류세 ‘딜레마’에 빠졌다. 다음 달 끝날 예정이었던 유류세 인하 조치를 오는 7월 말까지 3개월 연장하기로 했지만, 기대한 효과를 내기 어려워서다.

기획재정부 내부에선 다음 달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160달러를 오가는 초고유가 상황이 되면 선제적으로 유류세 인하 폭을 현행 20%에서 30%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유류세 인하 조치가 재연장되는 5월 1일에 맞춰 유류세 인하율을 아예 30%로 조정하는 내용이다. 앞서 지난 4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향후 국제 유가가 현 수준보다 가파르게 상승해 경제 불확실성이 더 확대될 경우 유류세 인하 폭 확대 여부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고민되는 부문은 유류세를 추가로 인하하더라도 유가가 더 올라버리면 소용이 없다는 점”이라며 “고유가 상황이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자칫 수조원 세수만 날리고 실제 유류세 인하는 체감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일 강원도 춘천시 소재 중소기업 빅데이터 플랫폼 운영 기업인 ㈜더존비즈온 강촌캠퍼스를 방문,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일 강원도 춘천시 소재 중소기업 빅데이터 플랫폼 운영 기업인 ㈜더존비즈온 강촌캠퍼스를 방문,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류세 인하 폭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도 뚜렷한 해법이 못 된다. 우선 유류세 인하 한도를 30%로 못 박은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교통세)법을 개정해야 하는 점이 걸림돌이다. 세금 수입 감소도 고려해야 한다. 기재부 ‘재정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세 수입은 16조6000억원이다.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로 적지 않다.

교통세에 따라붙는 교육세(교통세의 15%), 주행세(교통세의 26%), 부가세까지 포함하면 유류세 관련 세수는 20조원 안팎에 이른다. 유가 급등세로 유류세 인하 효과가 제대로 날지 의문인 데다, 고유가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불투명하다. 재정 당국 입장에서 유류세 인하 폭 40%, 50% 확대에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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