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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연재소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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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귀하는 남녀 관계 묘사만이 문학이고 성욕만이 예술이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1954년 3월 14일자 서울신문에 서울대 법대 황산덕 교수의 분개에 찬 기고가 실렸다. 귀하는 '자유부인'을 연재 중이던 정비석. 대학교수의 부인이 남편의 제자와 염문을 뿌리고, 남편은 직업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줄거리의 '자유부인'은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성을 묘사했다. 그 덕에 서울신문의 판매 부수가 3만 부에서 9만 부로 올랐다고 한다.

한국의 신문소설은 늘 탈이 많았다. 근대 장편소설의 효시인 이광수의 '무정'부터 그랬다. 남녀상열지사 한 대목 없는 '건전 소설'이지만 자유연애의 파급에 위기를 느낀 봉건 양반들의 연재 중단 압력에 시달렸다.

긴급조치 9호로 보도 기능이 약화된 70년대, 연재소설은 신문 판매경쟁의 유일한 승부처였다. 연재소설 존폐 논쟁이 일 정도로 선정성이 가열됐다. 공전의 히트작 '별들의 고향'(최인호)의 뒤를 이은 아류작들은 '호스티스 문학'으로 불렸다. 90년대 '달아 높이곰 돋아사'를 연재한 이영희는 농도 짙은 성 표현으로 한때 공연윤리위원장이었던 자신의 전력을 의심받았다.

신문소설은 이후 쇠퇴기에 접어든다. 보다 자극적인 영화와 인터넷에 밀린 탓도 있지만 민주화 이후 자유롭게 쓴 기사가 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드라마틱했다는 점이 본질이다. 무릇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법이다.

작금의 디지털 시대, 읽다보면 저절로 낯이 붉어진다는 신문소설이 재출현한 것은 이변이라면 이변이다. 청와대는 한술 더 떴다. 일본에서도 모 경제지가 연재한 '실락원'(1997)과 '사랑의 유형지'(2006)의 노골적 표현이 화제가 됐지만 총리가 구독을 중지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다만 해당 신문의 부수가 올라갔다가 연재 종료와 함께 도로 떨어졌을 뿐이다.

"청와대도 신문 끊을 자유가 있다"면 조용히 끊으면 될 일. 굳이 밝혀 정부 부처가 뒤따르게 한 것은 보통 독자의 행태를 넘어선다.

그러다보니 언론 탄압 논쟁으로 비화되는 대이변을 자초하고 말았다. 청와대엔 결벽증에 가까운 이상주의자가 많으니 의도는 순수했다고 믿고 싶다. 적어도 '3S (섹스.스포츠.스크린)정책'으로 국민을 우민화(愚民化)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하지만 그들은 실로 중차대한 '국가기밀 누설'을 범하고 말았다. 청와대가 그렇게 한가한 곳인 줄 만천하가 알게 됐으니 말이다. 북핵이며 부동산 문제로 밤을 지새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예영준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