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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전단지 포격한 러시아, 즉각 철군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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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호 30면

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 포격 모습. 사진=우크라이나 전략통신정보보안센터 텔레그램, 뉴시스

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 포격 모습. 사진=우크라이나 전략통신정보보안센터 텔레그램, 뉴시스

러군, 자포리자주 원전 포격으로 화재

전 세계가 등돌린 침공, 러시아의 패배

유엔 압도적 결의 따르고 살상 멈춰야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지 20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지난 세기 피의 전쟁들을 거치며 자리 잡은 국제질서 근간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9일째. 도시는 파괴되고 수천 명이 사망했으며 100만 명이 국경 넘어 흩어졌다. 아비규환이다. 4일 러시아군은 유럽 최대 규모로 꼽히는 자포리자주 원전 단지까지 포격했다. 주민들이 인간 장벽을 만들어 막아섰지만 장갑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원전단지 경계의 빌딩에 발생한 화재 진압이 늦어지면서 아찔한 상황이 이어졌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폭발하면 체르노빌의 10배 이상 피해가 난다. 포격을 멈추라”고 러사아군에 요구할 땐 지구촌이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을 떠올리며 가슴을 졸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화재가 진압됐고 원전 ‘필수장비’엔 영향이 없었다. 방사능 수치도 변동 없다”고 밝힐 때까지 말이다.

원전을 포격하다니 제정신인가. 앞서 푸틴은 핵 단추를 누를 기세로 위협도 했다. ‘인류 공멸’을 카드로 협박한 것 아닌가. 이 무슨 21세기의 야만이란 말인가.

푸틴은 힘으로 주권국을 유린했다. “회원국의 주권과 독립, 영토 보존을 해하는 어떤 무력 위협과 행사도 금지”(2장 4조)한 유엔헌장 위반이다. 유엔은 2일(현지시간) 25년 만에 긴급특별총회를 열어 러시아의 침공을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하며 “즉각적이고 완전하며 무조건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냈다. 1950년 6·25전쟁 직후 유엔이 가결했던 ‘평화를 위한 단결’(Uniting for Peace)결의다. 193개 회원국(투표 181개국) 중 141개국이 찬성했다. 압도적이다. 반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침공의 길을 내준 벨라루스, 북한, 시리아, 에리트레아 등 5개 독재국이 다였다. 중국 등 34개국은 기권했다.

2일(현지시간)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채택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에 대한 회원국의 표결 결과. 녹색이 찬성, 붉은색이 반대, 노란색이 기권국가다.         [더디플로맷 캡쳐]

2일(현지시간)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채택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에 대한 회원국의 표결 결과. 녹색이 찬성, 붉은색이 반대, 노란색이 기권국가다. [더디플로맷 캡쳐]

핵탄두 최다 보유국이자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 시간대가 11개나 되는 영토 강국 러시아의 이웃국 침공에 국제사회는 단결했다. 통제 안 되는 독재자의 무모함이 초래할 위험성과 파국에 대한 우려와 각성이다.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을 감수하며 러시아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하는 등 고강도 제재에 나섰다. 거대 테크 기업은 물론, 스포츠· 문화예술계도 물적·인적 옥죄기로 러시아를 심판했다.

EU는 중립국 핀란드, 스웨덴까지 나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냈고 각국은 국방비 증액 계획을 밝혔다. 안보의 실질적 위협을 목도해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유럽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했다.

침공을 받은 이후 모래주머니를 쌓아 놓고 집무실을 지키고 있는 젤린스키 대통령을 항전의 구심점으로, 2013년 친러 유로코비치 부패 정권에 대항하다 희생된 190명의 정신을 이어받은 시민들이 결사항전에 나서면서 전 세계인이 실시간 연대를 표하고 있다. 초유의 양상이다. 이를 가능케 한 SNS의 힘을 가리켜 ‘레지스탕스 4.0’이란 말도 나왔다. 성금, 전투 인력까지 밀려들고 하늘, 땅을 묘사한 파랑·노랑색 국기와 수도 키이우는 저항의 상징이 됐다. 각국 정부와 언론은 기존 러시아식 지명을 우크라이나식 표기로 바꿔 문화·감성의 연대를 보여줬다.

전쟁이 어떻게 결론 나든 분명한 건 이번 침공의 패자는 러시아란 점이다. 루블화 가치 폭락, 신용도 부도 직전 위기 등은 두고라도 전 세계인이 마음을 돌렸다. 푸틴이 국내 반전 시위자 수천 명을 체포하고 관영 매체로 국민의 눈을 가리지만 지금은 20세기가 아니다. ‘러시아제국’ 부활은커녕 푸틴 정권의 붕괴를 자초할 수도 있다.

푸틴은 인명 살상을 멈추고 유엔 결의대로 무조건, 즉각, 완전하게 철군해야 한다. 그것이 러시아가 덜 패배하는 길이고 인류에 죄를 덜 짓는 길이다.

일제의 침략,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협공으로 참혹한 전쟁을 겪은 한국도 이참에 동맹을 다지고 무력 침공에 정의를, 자유의 가치를 얘기해야 한다. 그게 국익이다. 우리를 둘러싼 북·중·러의 형질(形質)은 70년 전과 그대로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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