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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 기업·시민단체·언론 ‘긴장된 균형’이 핵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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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호 16면

김경식의 실전 ESG 

지난해 독일 서부 라인강변에는 ‘100년 만의 폭우’가 쏟아졌다. 그런가 하면 미국 서부와 캐나다에서는 긴 가뭄 탓에 곳곳에 산불이 일어나 삼림이 훼손되기도 했다. 모두 지구 온난화가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기업들의 관심도 환경 문제로 쏠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독일 서부 라인강변에는 ‘100년 만의 폭우’가 쏟아졌다. 그런가 하면 미국 서부와 캐나다에서는 긴 가뭄 탓에 곳곳에 산불이 일어나 삼림이 훼손되기도 했다. 모두 지구 온난화가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기업들의 관심도 환경 문제로 쏠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본주의의 경제적 효율성 추구는 누적된 화석연료 개발로 기후 위기를 초래했다. 사회적으로는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에 위기를 느낀 전세계 225개 대형 기관투자자들은 2017년 12월 12일, 파리협정(Paris Agreement) 채택 2주년을 기념해 ‘기후행동(Climate Action) 100+’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기업들에게 파리협정에서 제시한 목표에 맞게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관련 정보를 상세히 공개하도록 요구했다.

이들 기관투자자 중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최고경영자 래리 핑크가 2018년 초에 주요 기업에 보낸 공개서한은 이른바 ‘ESG 경영’이 확산하는 기폭제가 됐다. 그가 서한 발송 이후 에너지 다(多)소비 기업에 대한 신규 투자를 축소한 때문이다. 이 때문에 래리 핑크는 마치 ESG 경영의 화신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이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을 개발해 큰돈을 번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래리 핑크를 비롯해 기관투자자들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의구심마저 든다.

기후 위기와 양극화는 전 세계적 과제

기관투자자들은 아마도 이익 증대를 위해 최우선 리스크를 제거하는 것 즉,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생태적 진실을 가치화해 그들의 최우선 리스크인 기후 위기와 양극화를 극복하기 보다는 ‘헤징’ 하자는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의도야 어떻든, 기후 위기와 양극화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전 세계적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기관투자자들은 ESG를 기반으로 종합적으로 기업을 평가하고 투자를 결정한다. 따라서 ESG 관련 항목에 대한 MRV(측정·보고·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ESG가 우리나라에서는 특이하게 전개되고 있다. 환경친화적이고(Environmental),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Social), 거버넌스(Governance) 별로 각 평가항목을 만들어 평가한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기이한 결과가 나왔다. 각  분야별 평가항목 간에 인과관계도 없이 단순 평가 결과의 합산으로 ESG 경영을 판단하고 있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기관투자자와 시민단체(NGO)가 오월동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가스는 탄소중립으로 가는 중간 단계로 택소노미(Taxonomy)에 포함되었음에도 SK E&S의 호주 바로사 가스전 사업은 환경단체의 반대로 기관투자자들이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그동안 시민단체의 투쟁에도 꿈쩍 않던 기업들이 ESG 앞에서 바짝 긴장을 하고 있으니, 오월동주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기업들이 ESG의 계량적 성과가 상대적으로 쉽게 나오는 환경(E)에 집중하다보니 정작 인권과 삶을 개선시키는 이슈(S)와 이를 설계·추동하고 견제하는 문제(G)는 소외하고 있다는 점이다. 때마침 ‘2050 탄소중립’과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하는 RE100 등 전 세계적인 환경 이슈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 기업은 환경(E)을 앞세우면서 사회(S)와 거버넌스(G)에 대한 관심은 슬그머니 감추는 ‘ESG 워싱(위장)’을 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각 기업에는 이사회가 있는데도 새로 ‘ESG 위원회’를 설치하면서 위원 구성은 ESG 전문가(이해관계자 대표)가 아니라 이사회와 같이 교수·법조인·고위공직자로 채우고 있다. 활동 계획 역시 주로 환경 이슈 중심의 계획을 홍보하는 수준이다. 이렇듯이 현재 우리 사회·기업의 ESG 경영은 온통 환경(E)에 집중돼 있다.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 이유는 기관투자자들이 기후 위기(E)가 리스크 최우선 순위에서 벗어나면 그 때는 또 다른 리스크 타깃을 찾아갈 것이고, 그러면 기관투자자와 시민단체의 오월동주 파경에 따른 후유증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3월 에비앙이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프랑스의 식품기업 다논의 파베르 회장이 주주행동주의 펀드에 의해 해임됐다. 파베르 회장은 탄소비용을 t당 35유로로 평가해 순이익에서 이를 공제하는 ‘탄소조정 주당순이익제’를 도입하는 등 ESG 경영을 앞장서서 실천했다. 그런데 헤지펀드는 파베르 회장이 ‘주주이익과 다른 이해관계자와의 사이에서 책임과 균형을 유지하지 못했다’며 해임했다. 이는 주주이익과 ESG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의 충돌 문제가 투자자의 의도에 따라 언제든 이슈화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자본주의는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변화하고 있다. ESG 경영은 바로 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긴 역사를 볼 때 ‘진정한 ESG’는 ‘자본주의의 자기 진화’가 잘 되도록 기업의 가치사슬을 재설계하고, 가치사슬 상의 이해관계자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이들에게 가치에 합당하는 보상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좋든 싫든 진정한 ESG 경영을 위해 기업을 이해하고 기업을 잘 키워야 한다. 기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듬어지고 있는’ 조직이다.

ESG 경영은 ‘기업의 지속 가능을 위한 가이드(Enterprise Sustainability GUIDE)’라고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자기 진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조건(GUIDE)을 잘 만들어 줘야 한다. 태양·물·바람과 같은 기본요소가 생태계를 공존시키기 위해서는 진화의 촉매자이면서 생태계 파멸의 원인이기도 한 ‘인간(기업)’이라는 최상위 포식자의 ‘욕망’을 가이드 해주어야 한다. 즉, 건전한 시민단체와 언론이 기업을 감시하고 또 지원하는 ‘긴장된 견제와 지원’의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업은 물론 시민단체도 회계 투명성과 내부 지배구조의 합리성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언론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갖고 감시와 비평자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ESG 보고서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현재 각 기업이 발행하고 있는 ESG 보고서의 한계는 최근의 네이버와 카카오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회사는 ESG 보고서는 미사여구로 포장해 놓고 실제 행동은 반(反) ESG 경영 모습을 보여 지탄을 받았다. 가령 네이버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직원이 극단선택을 했는데도 ESG 보고서에는 직장 내 괴롭힘이나 고압적 언행을 엄격히 금지한다고 표기돼 있다.

ESG 보고서는 미사여구의 나열이 아니라 계량적 평가가 가능하도록 모든 사항을 수치화해야 한다. 지속가능보고서와 차이점도 여기에 있다. 그 수치의 의미가 나타나도록 장기 목표 대비 진도율을 밝히고, 국내외 가장 모범적인 기업과의 비교 데이터가 표시돼 상대적 평가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이산화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회사의 ESG 보고서라면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대비 진도율과 국내외 동종 기업들의 같은 항목이 비교 수치로 나타나야 한다. 또한 이 수치는 시계열로 제공돼야 한다.

일부 기업, 환경에만 집중 ‘ESG 위장’

다음으로는 ESG 평가 항목 간의 인과관계를 풀어줘야 한다. 한 기업의 노동항목을 평가할 때 비정규직 수치(비율)만 봐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동일 회사 다른 임금체계’를 만들어 줘야 한다. 기업이 부담할 수 있는 인건비 총액을 직무의 난이도에 따라 세분화하고, 노동자는 자신에게 맞는 직무와 근무조건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비정규직 없이 모두가 정규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입사와 동시에 직무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정해지는 지금의 호봉제는 ESG 경영 생태계에 맞지 않는 임금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임금체계를 직무급제로 전환시켜줘야 한다. 전환을 막고 있는 노동단체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와 언론이 나서서 풀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환경과 사회의 모든 문제는 거버넌스로 귀결된다. 우리가 직면하는 문제는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전 세계적인 문제이고, 서로가 얽혀있다. 그러면서도 국가 단위로 생태적 질서는 심각한 차이를 보이고, 같은 국가 안에서도 기업 단위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거버넌스가 그 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ESG 경영 실행의 가장 기초단위는 ‘기업’이기 때문에 개별 기업의 ‘생태력 회복’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각종 법령과 조직 등 국가 거버넌스를 ESG 가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민주적 절차에 따라 체계 있게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각 기업 거버넌스가 잘 작동되어 생태력 회복과 더 나은 삶이 되는, 스스로 진화하는 조직이 되도록 기업 스스로의 노력과 시민단체와 언론의 긴장된 견제와 지원이 필요하다.

김경식 고철(高哲)연구소장. 한국ESG학회 부회장(현대제철 전 기획실장). 강원산업 정인욱 명예회장실에서 경영전략을 배우고,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당진제철소 건설시 홍보책임자로 일했다. 기업 오너를 보좌하면서 배운 ‘기업이 국력이고 복지’라는 그들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ESG 경영’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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