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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도매가·기금 운용 개선 땐 전기료 인상 요인 줄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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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호 15면

김경식의 실전 ESG

정부와 한국전력이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했지만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이 상향돼 전기요금은 kWh당 6.9원이 오른다. 사진은 서울의 한 전기계량기. [뉴스1]

정부와 한국전력이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했지만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이 상향돼 전기요금은 kWh당 6.9원이 오른다. 사진은 서울의 한 전기계량기. [뉴스1]

정부와 한국전력이 전기요금의 핵심 요소인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했다. 정부가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 적용 유보 의견을 통보한 데 따른 것이다. 한전은 분기별 조정 상한을 적용해 3원/kWh 인상하는 방안을 지난 16일 정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현재 연료비 조정단가를 유지하도록 했다. 정부가 연료비를 동결키로 한 가장 큰 이유는 물가 부담 때문이다. 연료비 조정단가 동결로 당장 가계의 추가 부담은 덜게 됐지만, 올해 사상 최대 손실이 예상되는 한전의 경영에는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한전은 지난해 약 5조원가량 적자를 기록했는데, 올해도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이어지고 있어 적자가 불가피해 보인다. 더 이상 방치할 경우 재무구조 악화로 한전의 신용도가 떨어지면 차입금리가 올라가게 된다. 이는 소비자에게도 결코 득 될 일이 아니다.

어정쩡한 한전 민영화, 전기료 인상 요인

그러나 한전(정부)의 전기요금 인상 주장에 쉽게 동의가 안 된다. 한전의 실정을 몰라서가 아니다. 2000년 이전까지 한전은 전력산업을 잘 이끌어 왔다. 덕분에 우리는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전기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사용해왔고 경제성장도 이뤘다. 그러나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가 틀어졌고, 이후 어정쩡한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전의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하려면, 그에 앞서 전력산업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정부는 1999년 전력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민영화 계획을 발표했다. 그 계획에 따라 2001년 4월 한전의 ‘발전부문’을 6개사로 분할(한수원 및 석탄 5개사) 했고, 변전소에서 소비자에게 공급되는 ‘배전부문’도 2004년까지 5~6개사로 분할 후 2008년까지 민영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하면 전기 생산(발전)은 민간 경쟁체제, 이 전기를 변전소까지 나르는 것(송전)은 한전 독점, 변전소에서 소비자까지 판매(배전)하는 것은 민간 경쟁체제 구조가 된다. 그러나 이 계획은 첫 발을 내딛지도 못했다. 2002년 9월 남동발전 매각을 시도했지만 유찰됐고, 노무현 정부 때 민영화 일정이 중단됐다. 문제는 전력시장 운영 시스템은 민간 경쟁시장을 전제로 만들어 놓고, 실제 운영은 과거와 같은 한전 독점체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기요금을 이해하려면 이 시스템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데, 전력시장 경쟁체제를 대비해 당시 새로 만든 제도는 크게 두 가지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먼저 발전된 전기를 거래하는 도매시장을 위해 정부기관으로 ‘전력거래소’를 개설했다. 그리고 발전사업이 민간 경쟁이 될 경우 그동안 해오던 한전의 공익사업이 중단될 수 있기 때문에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신설했다. 그런데 이 두 제도가 지금의 전력시장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우선 전력거래소를 들여다보자. 전력거래소가 채택한 가격결정 원리는 ‘계통한계가격’(SMP)이다. 원자력·석탄·유류 등 각 발전사는 발전기별로 사전에 전력거래소로부터 평가받은 고정비와 변동비를 구분해 놓고 하루 전에 전력거래소에 시간대별 발전 계획을 통보한다. 그러면 전력거래소는 다음날 전기 수요를 예측해 각 발전기의 변동비가 가장 싼 것부터 발전하도록 알려준다.

2000년 구조개편 당시 각 발전원별 변동비(원/kwh)는 원자력 4원, 석탄 13원, 유류 52원, LNG 87원이었다(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LNG는 180원 수준). 재생에너지는 정산단가와 보조금이 있어 별도로 봐야 한다. SMP는 각 시간대별 전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마지막으로(marginal)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기의 ‘변동비’를 말한다. 예를 들어 피크시간인 오후 2시에 변동비가 낮은 기저발전부터 시작해서 전기를 공급하다가 마지막에 LNG발전까지 공급하게 되면 그 시간의 SMP는 87원이 된다. 그러면 그 시간에 발전한 모든 발전기에는 87원을 주게 된다. 따라서 원자력 발전기는 83원, 석탄 발전기는 74원, 유류 발전기는 35원을 추가로 받게 된다(windfall). 소비자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이 같은 제도는 왜 도입한 걸까. 우습게도 2000년 민영화 추진 당시 영국이 그렇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기업의 이윤극대화 조건은 한계비용(MC)과 한계수입(MR)이 일치하는 점(가격)이고, 초과 이익을 내는 발전기는 추가로 시장에 진입하게 되어 장기적으로 균형을 이룬다는 경제학적 논리를 들었다.

여기에 더해 하루 전에 발전기별 생산계획을 세웠다가 당일 전력 수요가 적어 발전을 못하거나, 더 하게 될 경우에는 그에 따른 보상까지 해주고 있다. 계획된 발전을 못한 발전기에는 기회비용을 보상하고(Constrained-OFF), 계획보다 추가로 발전한 경우에도 보상(Constrained-ON)을 해주는 식이다. 이러한 보상금액이 2013년 약 8000억원에서 2019년에는 약 1조2500억원으로 계속 늘고 있다. 이는 수급 예측을 잘 못해 추가로 지불하는 비용이다. 간헐·변동성이 높은 재생에너지의 확대로 전기 공급 예측 차질이 높아짐에 따라 보상비용이 늘고 있는 것이다.

전력거래소(도매시장)를 만들어 두고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를 일반 소비자들은 잘 모른다. 도매시장과 소매시장(소비자가격)이 단절돼 있는 데다 최근 10년간 전기요금 인상이 없었기에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전력 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전도 발전자회사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령 전기를 비싸게 사 오더라도 발전사의 수익에서 다시 가져오므로 상계가 된다. 그러나 이제 민간 발전량이 늘어나고 있고, 특히 원가가 싼 원자력 발전 감축으로 비싼 LNG발전이 늘어나면서 SMP가 높아졌다. 최근의 에너지 가격 상승이 SMP를 높이고 있고, SMP에 보조금까지 추가해 주는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서 한전의 적자는 더 쌓이는 구조다. 그러자 한전은 전력거래소에서 구입하는 비용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게 전력정산가격 상한제까지 검토하고 있다(중앙SUNDAY 3월 19일자 참조).

전기료 인상에 앞서 전력산업 혁신해야

전력산업기반기금도 전기요금 인상(소비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금은 사실 소비자가 낸다. 우리가 내는 전기요금의 3.7%가 기금이다. 매년 2조원 이상이 쌓이고 있고, 현재 잔액은 7조원이나 된다. 여유 재원이 급격히 증가하다 보니 기재부, 감사원, 국회 예결특위에서 적정 요율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요지부동이다. 이 기금은 당초 전력산업이 민영화될 경우 취약해 질 수 있는 전력산업 기반이나 공익사업을 위해 도입했다. 그러나 민영화가 중단됐음에도 기금은 계속 모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당초 목적과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전원개발(電源開發·발전에 필요한 댐·저수지·수로 등을 설치하거나 고치는 것) 사업자의 비용 즉, 전원개발 기반 훼손에 따른 비용을 이 기금에서 보전해 줄 수 있도록 개정했다. 역설적인 일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한전공대 운영비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배구협회 지원금도 이 기금에서 나갔다. 지금이라도 집행내역 하나하나를 분석해서 당초 취지에 맞게 시행령을 바꾸어야 한다.

전력산업은 일대 전기(轉機)를 맞았다.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 에너지 독립은 매우 중요하다. 탄소중립도 해야 하고, 재생에너지도 늘려야 하는데 이 둘은 따로 노는 게 아니다. 재생에너지는 4차 산업혁명과 ‘융합’을 해야 둘 다 살 수 있는 관계다. 민영화가 중단된 석탄발전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탄소중립과 고용승계라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재통합도 검토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친환경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진정한 ‘ESG 경영’ 이기도 하다. 전기요금 인상은 이러한 모든 것을 고려한 마스터플랜 하에서 검토해야 한다.

에너지 독립 차원에서라도 원자력 가동률은 74.5%(지난해 기준)에서 90% 이상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10%포인트 개선시 영업이익은 약 3조8000억원이 개선된다. 아무런 기능도 발휘하지 못하면서 가격만 올리는 SMP는 폐지하고, 발전원별 원가 절감을 유도할 수 있는 가격입찰제로 바꿔야 한다. 석탄발전을 재통합해서 질서 있는 전환을 꾀하고, 원료구매력을 높여 직접비용은 물론 간접비용도 절감해야 한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현 3.7%에서 2% 이하로 낮춰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간 4조원이나 되는 특례요금(원가이하 요금)을 정상화 시키고, 이 과정에서 보호가 필요한 부분은 예산으로 지원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요인들을 다 감안하면 현재의 기준으로 전기요금은 인상이 아니라 인하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앞으로의 전기요금은 가격신호가 작동되는 시스템을 도입해 시장에서 스스로 해결되도록 해야 한다.

김경식 고철(高哲)연구소장. 한국ESG학회 부회장(현대제철 전 기획실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당진제철소 건설시 홍보책임자로 일했다. 기업 오너를 보좌하면서 배운 ‘기업이 국력이고 복지’라는 그들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ESG 경영’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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