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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홍보 치중, 재생에너지 부족해 ‘RE100’ 달성 의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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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호 15면

김경식의 실전 ESG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의 중국 창저우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 공장 전경. 지난해 RE100에 가입한 SKIET는 창저우 공장을 비롯해 전 세계 거점 공장 지붕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해 2025년까지 공장 사용 전력의 60%를 친환경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사진 SKIET]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의 중국 창저우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 공장 전경. 지난해 RE100에 가입한 SKIET는 창저우 공장을 비롯해 전 세계 거점 공장 지붕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해 2025년까지 공장 사용 전력의 60%를 친환경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사진 SKIET]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인 1962년 10월, 미국의 생태학자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을 발간했다. 이 책에서 카슨은 “아침이면 새들의 아름다운 합창이 울려 퍼지곤 했는데, 이제는 기묘한 침묵만이 감돈다”고 경고했다. 인간의 살충제 사용을 문제 삼은 것이다. 책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됐고, 미국과 유럽의 환경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해 2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치하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메시지에는 이런 표현이 있었다. “공업 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 10위권,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초과, 산업화와 민주화를 가능하게 했던 시작점인 그때,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독일 통일을 완성한 비스마르크는 1883년 ‘복지가 곧 안보’라는 신념으로 사회의료보험을 도입했다. 당시 격렬하게 반대하는 기업가들에게 비스마르크는 “기업가들이 지금 정부에 협조하지 않으면 정부가 더 이상 기업가들을 보호할 능력이 없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말로 설득했다. 이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1963년, 우리나라에는 의료보험법이 제정됐다. 이후 경제가 성장하면서 대상 폭을 점점 확대해 오다가 2000년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이 확대 됐다.

27개 기업 “재생에너지 조달 어렵다”

1901년 미국 제2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독점금지법’을 부활시키고, 통상위원회를 강화해 담합이나 독과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시행했다. 록펠러, 카네기, JP모건 같은 쟁쟁한 재벌을 법정에 세웠다. 이는 오늘날 미국의 시장경제가 정착된 계기가 됐다. 80여 년이 지난 1981년, 우리나라에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 법을 계기로 우리나라도 재벌의 과도한 지배를 규제하고 공정거래 질서가 잡히게 됐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관습과 제도에는 그 나름의 맥락과 역사적 배경이 있다. 앞에서 소개한 세 가지 사례는 ‘ESG 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다. 모두 자본주의 시스템의 진행에 따라 나타난 사례인데 ESG 경영은 환경(E), 사회적 가치(S), 거버넌스(G)가 우리보다는 80여 년 앞선 나라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를 따라가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잘 안 된다. 국내 기업들의 ESG 경영에는 큰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ESG 경영이 친환경 홍보활동에 치중돼 있다는 점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올 초 한 언론사에서 ESG 경영 특집기사를 게재했는데, 참가한 15개 그룹 중 제조업 12개 그룹이 모두 친환경 활동 위주로 소개를 했다. LG그룹은 환경 혁신 활동을 소개 했고, 한화그룹은 그룹ESG위원회 발족과 계열사의 K-RE100(사용 전력의 100%를 국내 재생에너지로 충당) 선언을, 삼성전자는 해외사업장 RE100 전환 계획을, 현대차그룹은 계열사의 ‘글로벌 지속가능 경영평가(DJSI) 월드지수’ 첫 편입을 홍보했다. 다른 기업들도 이산화탄소 줄이기 등 대부분 친환경 활동 계획을 홍보했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의 ESG 경영이 ‘환경’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건 세계적 기관투자자의 ‘ESG 경영 평가 기준’을 따라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어쨌든 그나마 친환경 활동이라도 잘 되면 다행이다. 하지만 ESG 경영 보고서를 자세히 보면 ‘무었을 해냈다’는 건 별로 없고 ‘앞으로 하겠다’는 내용만 가득하다. 그 다음 홍보를 할 때도 그 전에 홍보한 것에 대한 실적 홍보가 아니라 또 다른 무엇을 하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친환경 활동 계획 홍보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왜냐하면 RE100 자체가 달성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RE100은 ESG 평가에서 대표적으로 활용되는 환경 평가 항목이다.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로, 2050년까지 사용전력량의 100%를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조달하겠다는 자발적 약속이다. 영국 런던에 있는 국제 비영리기구 더클라이밋그룹(The Climate Group)이 2014년에 시작했다.

현재까지 RE100에 가입한 글로벌 기업은 349곳에 이른다. 애플, 구글, 메타(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에어비앤비, 3M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참여했다. 가장 활발한 곳은 SK그룹이다. SK그룹은 국내 최초로 RE100 가입을 선포했다. SK하이닉스, SK텔레콤, SK실트론, SK, SK머티리얼즈 등이 참여하고 있다. 최근 상장 과정에서 114조원이 넘는 증거금이 몰린 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해 가입했다. 2030년을 목표로 한다. 한국수자원공사, KB금융그룹, 롯데칠성, 현대차그룹의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도 가입했다.

이 기업들이 RE100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직접 재생에너지를 만들어 사용하거나 발전사(한전)로부터 구매해야 한다(K-RE100). 문제는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영국에 기반을 둔 국제 에너지연구기관 엠버의 ‘국제 전력 리뷰 2022’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태양광(4.12%)과 풍력(0.55%)의 발전 비중은 4.7%에 불과했다. 전 세계 풍력·태양광의 발전 비중이 처음으로 평균 10%를 넘어선 것에 비해 한국은 절반도 되지 않는 수치다. 전체 발전량의 4분의 1 이상을 이미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국가도 덴마크(51.8%)·스페인(32.9%)·독일(28.8%)·영국(25.2%) 등 10개국뿐이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절대량이 부족해 기업들이 RE100 가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기업 실천 가능한 계획 세워야

더클라이밋그룹과 지속가능성 평가 기관인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위원회는 최근 ‘RE100 2021’ 연례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이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의 RE100 전환 실적이 33%로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높았다. 아모레퍼시픽이 5%로 그 뒤를 이었고 한국수자원공사·SK하이닉스·SK텔레콤 등은 0%에 그쳤다. 이들 기업은 ▶제한적 재생에너지 전력량 ▶재생에너지 조달 기회 부족 ▶엄두도 못 낼 정도로 비싼 비용 등을 RE100 전환 어려움으로 꼽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아시아 가운데서도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조달이 어렵다고 답한 기업이 27개에 달했다. 이는 일본 24개, 중국 22개에 비해 더 많은 수준이었다. 실제 국내에서 가입사가 조달하는 재생에너지는 전체 전력량 2%에 불과했다. 최근 유통(플랫폼)기업을 포함해 더 많은 기업이 RE100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들 기업이 RE100을 과연 얼마나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사 일부 기업이 달성하더라도 엄청난 원가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2018년 기준 재생에너지 단가(달러/MWh)는 미국의 경우 육상풍력 39, 태양광 56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각각 105, 127이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앞으로 재생에너지는 발전량이 더 늘어나기도, 원가가 더 낮아지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 앞서 소개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해외에서 재생에너지사업을 직접 하거나,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 확보로 대응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 국민들이 깨끗한 전기를 사용하고 맑은 공기를 마셔야 하는 ESG 경영과는 거리가 멀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추진 중인 ‘2050 탄소중립’(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도 힘들어진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지난달 28일 ‘에너지정책 정상화를 위한 5대 정책 방향’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2050 탄소중립은 국제적으로 약속한 목표인 만큼 존중하되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에서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는 비판이 많았던 만큼 이를 다시 들여다 보겠다는 것이다. 아예 목표치를 현실 가능한 수치로 수정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인수위가 밝혔듯이 이미 국제사회에 약속한 만큼 목표치 수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대신 인수위는 2030년까지 원전 발전 비중을 상향하고, 재생에너지는 주민수용성과 경제성,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생태계 등을 고려해 지속적으로 보급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복잡한 현실을 고려할 때 이는 RE100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정부도, 기업도 이제는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라 실제 실천 가능한 계획을 세워야 할 때다. 그러려면 정부와 기업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김경식 고철(高哲)연구소장. 한국ESG학회 부회장(현대제철 전 기획실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당진제철소 건설시 홍보책임자로 일했다. 기업 오너를 보좌하면서 배운 ‘기업이 국력이고 복지’라는 그들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ESG 경영’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람 중심 ESG를 말한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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