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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작년 자사주 102조원어치 소각 후 주가 30% 올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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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호 14면

자사주 매입의 경제학 

국내 한 상장사의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들이 경영 현황을 담은 책자를 보고 있다. [뉴시스]

국내 한 상장사의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들이 경영 현황을 담은 책자를 보고 있다. [뉴시스]

“자사주라도 매입하세요.” “쥐꼬리만큼의 배당금 줘 봤자 도움도 안 되니 자사주 소각해서 주식 숫자 좀 줄입시다.” 최근 수개월간 네이버 등의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를 수놓은 국내 주요 상장사 주주들의 목소리다. 삼성전자 주식 2000주가량을 보유했다는 박모(52)씨는 “글로벌 악재가 많아서 주가 반등이 쉽지 않은 상황인 건 알지만 이런 때일수록 (회사 측이) 주가 관리에 적극 나서 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지난해 9만원대 고점을 찍은 삼성전자 주가는 이달 현재 7만원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지난 10년간(2012~2021년) 삼성전자가 매입·소각한 자사주는 약 60조원어치였다. 이는 국내 최대 규모이지만,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440조원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부족하지 않느냐는 게 박씨 같은 일부 주주들의 목소리다. 같은 기간 애플은 560조원(4670억 달러)어치의 자사주를 매입·소각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2018년 이후로 4년째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있다. 최근의 이정배 사장(지난달 16일 5000주 장내 매입)처럼 일부 경영진이 개인적으로 매입한 경우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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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주주 환원율 한국 28%, 미국 89%

통상 주주들은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자사주 매입을 긍정적 신호로 본다. 매입 자체가 주가 부양·안정 목적으로 읽히는 데다, 매입 후 소각하면서 유통량을 줄이면 그 주식의 가치는 수요·공급 원칙과 주당 순이익(EPS) 증가에 따라 자연스레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외려 적극적인 편에 속할 정도로 국내 기업들은 이 같은 주가 부양·안정을 통한 주주 환원(주주 가치 제고)에 나서는 데 지금껏 인색했던 게 사실이다. KB증권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 10년간 평균 주주 환원율(기업의 자사주 매입과 배당의 합을 순이익으로 나눈 비율)은 28%로, 미국(89%)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미국 등 선진국 증시 상장사들은 자사주 매입·소각을 배당보다 주가 부양·안정 효과가 큰 주주 환원 정책이라고 보고 이를 적극 활용한다. 주가 상승은 더 많은 투자금 유치를 의미하므로 주주들은 물론 기업한테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애플은 지난해에만 102조원(855억 달러)어치 자사주를 사들여 소각했는데 이 기간 주가는 130달러대에서 170달러대로 우상향하면서 크고 작은 악재에도 순항했다. 이를 포함해서 2018년 초부터 현재까지 애플 주가는 4배 넘게 뛴 상태다. 반면 이 기간 자사주 매입·소각이 없었던 삼성전자는 주가가 1.5배 정도 되는 데 그쳤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기업 입장에선 자사주 매입·소각이 재무구조 안정에도 도움을 준다. 예컨대 미처분이익잉여금(영업 활동으로 발생한 순이익금 중 따로 처리하지 않아 남은 것)을 과도하게 보유하고 있으면 내야 하는 법인세가 늘어날 수 있다. 특히 가업 승계나 상속 등으로 지분 변동이 발생했을 때 과세당국이 더 많은 세금을 추징할 만한 근거로 미처분이익잉여금 규모를 살펴볼 수 있다. 물론 미처분이익잉여금은 사내 상여금 지급이나 주주 배당으로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이 그래도 남거나, 혹은 주가 부양 필요성이 강한 경우 이를 자사주 매입·소각에 쓰는 게 나을 수 있다.

달리 보면 기업 입장에서 자사주 매입은 경영권 안정·강화용 히든카드로 손색이 없다. 대주주는 자사주 매입으로 지분율을 높여 의결권 강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적대적 인수·합병으로부터 경영권을 지키려면 우호지분이 최대한 많아야 하는데, 이 경우 자사주 자체가 우호지분으로 쓰일 순 없지만 우호적인 기업과 서로 주식을 교환하는 식으로 우호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경영권 안정·강화 목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하면 주주들이 기대하는 소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국내 상장사, 최근 자사주 매입 적극 나서

이 같은 다양한 이유로 국내 기업들도 최근 들어서는 그래도 과거보다는 자사주 매입에 더 적극 나서는 편이다. 지난해 SK텔레콤은 2조6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869만주를 소각해 화제를 모았다. 2017~18년 삼성전자(약 19조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자사주 소각이었다. SK텔레콤 측은 “인적분할에 앞서 기업과 주주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메리츠금융그룹도 지주사와 주요 계열사가 지난해 자사주 매입에 적극 나섰다. 이에 지난해 5월 1만6000원대였던 메리츠금융지주 주가는 최근 3만원대 중반을 기록 중이다.

주가 하락으로 주주들의 불만 목소리가 높아진 올해 들어선 이런 흐름이 한층 거세졌다. 지난달 11일 카카오는 지난해 영업이익의 절반 수준인 3000억원어치의 자사주 소각에 연내 나선다고 발표했다. 카카오는 지난해 골목상권 침해 논란과 계열사 카카오페이의 상장 직후 경영진 ‘먹튀’(스톡옵션 행사로 취득한 주식을 상장 한 달여 만에 대량 매도해 차익 실현) 논란 등으로 주가가 급락하면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뒤늦게 이를 결정했다. 주가 하락과 함께 분식회계 의혹으로 시련을 겪고 있는 셀트리온그룹도 올 초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자사주 매입·소각을 통한 ‘책임경영’을 다짐한 이들 기업의 주주 환원 정책을 전문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임박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 초대형 악재가 남은 만큼 단기 주가 부양 효과는 과거보다 미미할 것으로 보이나, 중·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자사주 매입을 선언한 코스피 상장사들은 그로부터 250거래일 뒤 주가가 평균 12.5%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조승빈 대신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매입·소각은 기업 가치가 현재 저평가된 상태이며, 앞으로 반등할 것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시장에 준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업들의 주주 환원 정책 중 자사주 매입·소각이 고배당보다 나은 선택지인지에 대해선 분석이 다소 엇갈린다. 안상희 한국ESG연구소 책임투자센터장은 “자사주 소각이 장기적 주식 가치 제고 측면에서 유리하다면, 배당은 즉각적으로 기업의 현금 흐름이 좋아진다는 면에서 투자자에게 득이 된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다른 전문가는 “고배당주는 성장성보다 안정성 면에서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사주 소각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지 불확실성이 커진 요즘 같은 때에 기업이 자사주 소각을 이유로 배당 성향을 축소하면 투자자들은 득보다 실(失)이 클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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