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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칫덩이’ 폐어망…‘초기 흥행몰이’ 갤럭시S22 소재로 변신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가라프 리틀비치하우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 북' 시리즈 신제품 사전체험 행사장에 폐어망을 재활용해 만든 '갤럭시북2 프로' 부품이 전시돼 있다. [뉴스1]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가라프 리틀비치하우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갤럭시 북' 시리즈 신제품 사전체험 행사장에 폐어망을 재활용해 만든 '갤럭시북2 프로' 부품이 전시돼 있다. [뉴스1]

스마트기기용 부품 소재를 만드는 한화컴파운드는 지난해 1월 삼성전자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친환경 제품 생산을 늘릴 수 있도록 바다에 버려지는 폐어망을 스마트폰용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석유화학업계 폐어망 소재 재활용 사업 본격화

이때부터 한화컴파운드 연구개발(R&D)센터에서 근무하는 신찬균 수석 등 6명의 연구원은 폐어망 재활용 플라스틱 개발에 몰두했다. 신찬균 수석연구원은 3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미 오랜 시간 해수와 자외선에 노출돼 염분도 많고 물성이 떨어지는 폐어망을 휴대폰 부품에 맞도록 재가공하는 것이 숙제였다”며 “관건은 기존 소재와 같은 수준의 품질을 충족시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한화 연구진은 폐어망을 화학적으로 분해한 뒤 여러 다른 소재를 섞어 새로운 특성을 가진 플라스틱 소재로 바꿔나갔다. 삼성전자는 이 소재로 부품을 만들어보며 내구성·내열성 등을 검증했다.

약 10개월간의 연구 끝에 두 회사는 스마트폰 부품 제작에 적합한 폐어망 재생 소재를 개발했다. 지난달 25일 공식 출시한 삼성전자 갤럭시S22 시리즈에 적용된 폐어망은 이렇게 ‘변신’에 성공했다.

폐어망을 재활용한 소재는 갤럭시 시리즈 측면의 소리·전원 버튼을 안정적으로 지지해주는 ‘키 브래킷’, 갤럭시S22 울트라 모델 내부의 ‘S펜’ 커버, 갤럭시북2 프로 시리즈의 터치패드 홀더 등에 쓰였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갤럭시 언팩 2022’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를 통해 친환경 부품을 사용한 갤럭시 시리즈를 공개했다.

삼성 갤럭시S22의 키 브래킷과 S펜 내부 커버에는 폐어망을 재활용한 플라스틱 소재가 사용됐다. [사진 삼성 유튜브 캡처]

삼성 갤럭시S22의 키 브래킷과 S펜 내부 커버에는 폐어망을 재활용한 플라스틱 소재가 사용됐다. [사진 삼성 유튜브 캡처]

어망은 흔히 ‘나일론’으로 불리는 폴리아미드(PA)로 만든다. 바닷물에서 오래 쓸 수 있도록 염분에 강하면서도 실로 가공할 수 있도록 연성이 높은 게 특징이다. 반면 휴대폰 부품에 쓰이려면 잘 휘지 않으면서도 열에 견디는 성질이 중요하다.

신찬균 수석은 “이번에 개발한 폐어망 재생 소재는 국제 인증기관을 통해 전자기기에 사용 가능한 내구성과 친환경성을 인증받았다”며 “앞으로 더 많은 전자기기 부품에 확대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바닷가에서 수거한 폐어망. [사진 삼성 유튜브 캡쳐]

바닷가에서 수거한 폐어망. [사진 삼성 유튜브 캡쳐]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석유화학업계가 폐어망을 재활용한 플라스틱 개발에 골몰하고 있다. 탄소 저감과 해양환경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취지에서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매년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플라스틱 양은 800만t 이상이다. 이 중 버려진 어망만 64만t에 이른다. 폐어망이 분해되기까지는 약 600년이 걸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돌고래나 바다거북 등 해양 생물이 바다에 남아 있는 어망에 걸려 목숨을 잃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프로젝트 루프 소셜벤처 1기 협약식에서 롯데케미칼 김교현 부회장과 관련 업체 대표, 임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롯데케미칼]

지난해 12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프로젝트 루프 소셜벤처 1기 협약식에서 롯데케미칼 김교현 부회장과 관련 업체 대표, 임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롯데케미칼]

폐어망 재생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 해수와 자외선 영향으로 플라스틱 고유의 성질이 훼손된 경우가 많지만 다양한 방법과 형태로 재활용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2007년 세계 최초로 폐어망 재생 섬유를 개발했던 효성티앤씨는 최근 폐어망을 재활용해 만든 나일론 섬유 ‘마이판 리젠오션’을 생산 중이다. 지난해 부산시·전남도 등과 손잡고 폐어망 분리·배출 체계를 구축했으며 소셜 벤처기업 넷스파를 통해 파쇄·세척한 어망을 공급받는 통로를 마련했다. 어망의 불순물을 제거해 원료의 순도를 높여주는 해중압 설비 투자도 확대했다.

효성티앤씨 관계자는 “올해 초까지 부산과 전남 지역에서 수거한 폐어망으로 만든 마이판리젠오션을 월 150t 이상 생산해 국내외 아웃도어 브랜드를 중심으로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케미칼은 폐플라스틱 수거 사업인 ‘프로젝트 루프’를 통해 폐어망 재활용업체 포어시스를 지원하고 있다. 포어시스는 폐어망 탈염과 전처리 시설 개발을 통해 재생 플라스틱 원료를 생산하고 있다.

김교현 롯데케미칼 부회장은 “폐플라스틱 이슈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지방자치단체, 시민이 함께 대응해야 한다”며 “플라스틱 재활용을 통한 순환경제 구축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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