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하르키우·헤르손 공방전…러 공수부대 투입 총공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러시아군이 국제사회의 반발에도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등에 대한 총공세에 나서며 민간인 피해가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 취임 후 첫 국정 연설에서 “우리는 역사를 통해 독재자가 침략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더 많은 혼란을 불러온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28일에 이어 2일 밤 벨라루스에서 2차 회담을 연다고 우크라이나 대통령 대변인이 밝혔다. 러시아와 가까운 중국은 지난달 24일 러시아 침공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 피해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평화 중재자로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러시아군은 2일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르키우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고 BBC가 전했다. 하르키우 도심 자유광장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거대한 폭발과 함께 건물을 뒤덮는 연기구름이 피어올랐다. 우크라이나 국가비상대책본부는 이날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최소 20명의 민간인이 숨졌다고 밝혔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러시아군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우크라이나 내 군사작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 키이우 도심에서 27㎞ 떨어진 안토노프 공항에서 64㎞가 넘는 러시아군 행렬이 위성사진에 지난 1일 포착됐다. 뉴욕타임스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포위 공격하려 한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젤렌스키 “우리와 함께해달라, 그러면 삶이 죽음 이길 것”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의회에서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의회에서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군은 이날 두 차례 미사일로 키이우의 방송 수신탑(TV 타워)을 공격해 최소 5명이 숨지고, 방송과 뉴스 전달이 마비됐다. 이날 방송 수신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유대인 학살 추모 시설 ‘바비야르’도 러시아 미사일에 세 차례 폭격됐다. 바비야르는 1941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며 소련 내 유대인들을 데려다 총살했던 협곡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유대인이며 그의 가족 중 일부도 유대인 학살 당시 죽었다.

러시아군은 2일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헤르손에서도 공방전을 벌였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러시아군이 헤르손을 장악했다고 보도했으나,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현재 전투가 진행 중이며 일부는 우리가 통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인구 28만 명의 헤르손은 러시아가 장악한 크림반도와 접해 있어 크림반도에 병력을 집결시킨 러시아군의 북진 통로가 될 수 있다.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병원 등 민간 시설 피해가 잇따랐다. CNN은 1일 키이우 인근 아도니스 산부인과 병원장인 비탈린 구린의 페이스북을 인용해 “미사일이 산부인과를 맞혔고 건물은 상당히 망가졌다”고 보도했다. 의약품 부족도 심각하다. 키이우 오흐마데트 국립어린이전문병원은 피란을 갈 수 없는 어린이 백혈병 환자들이 혈액 등 의료 물자를 공급받지 못해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 키이우 북동쪽으로 150㎞ 떨어진 체르니히우 소아암 병동은 진통제와 치료제가 떨어져 가고 있다. 리즈 스로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UNHCR) 대변인은 이날 “개전 후 어린이 13명을 포함해 최소 136명이 숨졌다. 사상자 숫자는 교차 검증을 거쳐 집계된 결과로, 실제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군 일부, 장갑차 버리고 항복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 마을에서 도로를 막은 러시아 장갑차량 잔해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 마을에서 도로를 막은 러시아 장갑차량 잔해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 들어간 러시아군의 사기가 형편없다고 로이터통신이 미국 국방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1일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러시아 병사들이 식량과 연료 부족 등 기본적인 병참 문제와 함께 임무 불만 때문에 차량을 파괴하고 무더기로 항복했으며, 일부는 차량의 연료 탱크에 구멍을 뚫는 등 기물 파손 행위도 저질렀다고 말했다. 장갑차 수백 대가 버려지거나 우크라이나군에 나포됐고, 현지 농민에 붙잡힌 사례도 소개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1일 국정 연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은 엿새 전 자신의 위협적인 방식으로 자유 세계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근간을 흔들고자 했다”면서 “하지만 그는 심각하게 오판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푸틴은 서방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대응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를 분열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틀렸다. 우리는 준비돼 있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내내 ‘대통령’ 직함을 빼고 푸틴이라고 불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수개월간 “자유를 사랑하는 나라”들과 푸틴에게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연대했다면서 그 결과 유럽연합(EU) 27개국과 영국·캐나다·일본·한국·호주·뉴질랜드·스위스가 제재에 동참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세 차례 한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연설 중 대러 제재 동참국으로 한국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총 62분의 연설에서 러시아 침공과 규탄에 12분을 할애했다.

바이든, 제재동참국으로 한국 첫 언급

1일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의 옷. 소매에 노란색 해바라기 자수를 새긴 파란색 원피스를 입었다. 파랑과 노랑은 우크라이나 국기 색이고,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 국화다. [AFP=연합뉴스]

1일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의 옷. 소매에 노란색 해바라기 자수를 새긴 파란색 원피스를 입었다. 파랑과 노랑은 우크라이나 국기 색이고,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 국화다. [AFP=연합뉴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을 위해 중재자로 나설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2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 따르면 전날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중국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충돌 폭발에 애석(痛惜)하다”며 “평민이 상해를 입은 것에 대해 매우 주시한다”고 말했다. 왕 국무위원은 이날 통화에서 “중국은 각국의 주권과 영토 보존의 존중을 주장했다”며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크림반도와 동부 돈바스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러시아의 입장과 배치되는 발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 중국과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의 통화를 전하면서 “중국이 중재자 역할을 제안했다”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로 게재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일 EU 특별 회의 화상 연설에서 “여러분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걸 증명해 달라. 여러분이 정말로 유럽인임을 증명해 달라. 그러면 삶은 죽음을 이길 것이고, 빛은 어둠을 이길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의 연설은 우크라이나가 EU 가입을 공식 요청한 다음 날 이뤄졌다. 그가 연설을 마치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EU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힘찬 박수를 보냈다.

글로벌 기업들은 대러 제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애플은 1일 “러시아에서 모든 제품의 판매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GM·볼보에 이어 포드자동차도 이날 러시아에서의 사업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은 러시아 항공사들에 대한 지원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페이스북·트위터·마스터카드·디즈니·소니픽처스·셸·BP 등도 대러 제재에 동참했다. 테슬라·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우크라이나에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망을 제공했다.

키예프→키이우, 오늘부터 현지식 표기

중앙일보는 3일부터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키이우’로 변경하는 등 우크라이나 내 지명을 현지에서 사용하는 발음으로 표기합니다. 키예프는 러시아어 발음입니다. 이는 국립국어원이 2일 권고한 데 따른 것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