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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4000명 찾아낸 의병후손 "보훈처 심사, 문제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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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달 25일 이태룡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이 독립유공자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인천대 제공

지난달 25일 이태룡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이 독립유공자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인천대 제공

“독립운동한 게 명백한데, 포상신청을 반려하더라고요…”

이태룡(67)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도 국가로부터 외면받는 독립유공자의 사례를 연구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독립운동을 했지만, 판결문이나 병원 진단서 등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다. ‘대한제국 최후의 충신’으로 불리는 고 이용익(1854~1907) 선생과 반일운동을 한 고 김기오(1900~1955) 선생, 고 고완남(1920-1991) 선생이 대표적이다. 이용익 선생은 광무황제 특사로 해외에 파견돼 활동하다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순국했다. 김기오 선생은 신간회 경동지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잡혀 고문을 당한 뒤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항일결사 ‘조선학생동지회’에 참여한 고완남 선생은 원산상업학교 비밀조직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면서 고문으로 유산하는 아픔을 겪었다.

국가보훈처는 이들을 포상 대상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적극적인 독립운동 사실이 부족하다” 등의 이유에서다. 이 소장은 보훈처의 공적심사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일본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은 이들 중엔 재판을 받지 않은 이들이 많다. 특히 병원 기록은 보존 시효가 5년이라 기록을 찾기 어렵다. 이들이 고초를 겪은 경찰서와 형무소가 북한에 있다면 더 힘들어진다”고 했다. 최근 국가보훈처에서 민간인 심사위원단 100명을 선발한 점은 반가운 일이지만 거증 자료가 부족하다고 포상 신청을 반려하는 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는 게 이 소장의 주장이다.

인천대 독립운동연구소는 인천시 중구 출신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포상신청했다. 왼쪽 상단부터 고희선 권문용 김건옥 김기택 김방운 김삼수 김성규 김영진 김인학  김점권 김홍남 남기원 서동화 신수복 안문식 오쾌근 우종식 유두희 윤기현 이두옥 이민창 이석면 이수봉 이승엽 이억근 이홍순 임갑득 정갑용 정일홍 정희동 조명원 조준상 천선동 최진하 하세창 한태열. 사진 인천대 제공

인천대 독립운동연구소는 인천시 중구 출신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포상신청했다. 왼쪽 상단부터 고희선 권문용 김건옥 김기택 김방운 김삼수 김성규 김영진 김인학 김점권 김홍남 남기원 서동화 신수복 안문식 오쾌근 우종식 유두희 윤기현 이두옥 이민창 이석면 이수봉 이승엽 이억근 이홍순 임갑득 정갑용 정일홍 정희동 조명원 조준상 천선동 최진하 하세창 한태열. 사진 인천대 제공

이 소장은 37년간 독립유공자의 흔적을 찾아 뛴 ‘발굴 베테랑’이다. 국가기록원 등에 등재된 주한 일본 공사관, 한국 통감부, 조선총독부, 일본 외무성 기록을 뒤져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고 포상신청을 한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을 찾아 밝혀낸다는 뜻에서 ‘발굴’이란 단어를 쓴다고 했다. 4000명이 넘는 독립유공자가 그에게 발굴돼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30대에 고교 국어교사로 일하다 의병 문학에 매료된 뒤 이 일을 하게 됐다.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당숙의 이야기도 한몫했다. 그의 당숙은 의병활동을 하다 순국했다. 민족을 위해 희생하고도 잊힌 의병들. 그들의 한을 달래고 빛을 되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에 그 역시 ‘광’나지 않는 외길을 걷게 됐다. 수십만장 기록을 헤매는 힘겨운 일이지만 몇번의 시도 끝에 독립유공자가 포상을 받게 되는 순간이 있기에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이 소장은 2019년 초부턴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연구원들과 독립 유공자를 발굴하고 있다. 3년간 독립유공자 3250명을 발굴해 포상 신청했다. 그는 “15만명으로 추정되는 애국선열 중 포상을 받은 건 1만 7285건에 불과하다”며 “국가보훈처가 노력은 하고 있지만 부족하기 때문에 국가기관인 국립대학에서도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힘이 닿는 한 ‘발굴’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 소장은 “최대한 더 많은 독립유공자를 찾겠다고 나와 약속했다”며 “발굴에 매진하면서 언젠가 내가 떠나도 작업이 동력을 잃지 않게 다른 이들에게 나만의 노하우도 전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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