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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확진인데 회사 오라고요?" 또바뀐 지침에 '출근 아노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최모(32)씨는 지난 25일 같이 사는 부모님이 코로나19에 확진되자 고민에 빠졌다. 직장 상사가 “증상이 없고 PCR 검사(Polymerase Chain Reaction·유전자 증폭 검사) 결과가 음성이면 가급적 출근하라”는 지시를 내려서다. 백신 2차 접종을 하고 90일이 지난 최씨는 기존 지침대로면 7일간 자가격리하는 게 원칙이다. 최씨는 “정부 지침이 워낙 자주 바뀌다 보니 회사에서도 관련 내용을 잘 모르고 있다. 출근했다가 나중에 양성이 나올까 난처하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의 한 대기업 사옥 사무실이 재택근무 시행으로 텅 비어 있다. 뉴스1

서울 종로의 한 대기업 사옥 사무실이 재택근무 시행으로 텅 비어 있다. 뉴스1

가족 확진인데 증상 없으면 나오라는 회사

정부의 확진자 동거인 관련 자가격리 지침이 계속 변경되자 직장인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내달 1일부터 확진자의 동거 가족은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자가격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 9일 관련 지침이 새로 적용된 지 보름여 만에 지침이 또 변경된 것이다. 기존에는 확진자 동거인이라면 의무로 받아야 했던 PCR 검사도 권고 사항으로 바뀐다.

새로운 방역 지침이 한 달을 채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회사와 직원 모두 출근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일부 회사는 정부 지침과 무관하게 가족 중 확진자가 나오면 무조건 재택근무를 시키지만, 일손 부족 등을 이유로 직원에게 출근을 권고하는 회사도 적지 않다고 한다.

중소 제조업체 사무직원인 윤모(30)씨는 “최근 직장 동료 가족들이 확진됐다는 소식이 연일 들리는데 회사에선 증상이 없으면 가능한 출근하라는 방침이다. 내일부턴 확진자와 한집에 사는 사람이 백신도 안 맞고 사무실에 올 수 있어 더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사무실 내 한 직원 자리에 재택근무 팻말이 올려져 있다. 뉴시스

사무실 내 한 직원 자리에 재택근무 팻말이 올려져 있다. 뉴시스

‘출근 아노미’에 빠진 직장인들

직장인들 사이에선 개인의 행동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사라진 상태인 ‘아노미(anomie)’에 빗대 최근 상황이 ‘출근 아노미’ 같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20대 직장인 이모씨는 같이 살던 어머니와 오빠가 23일과 25일 각각 코로나19에 확진됐다. 회사에 소식을 알렸지만, 사측도 정부 지침을 몰라 언제까지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지 따로 지시가 없다고 한다. 이씨는 “아직 보건소에서 문자가 오지 않아 뉴스를 찾아보고 알아서 움직여야 한다. 정부는 알려주는 게 없고 회사도 잘 모르니 각자도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등학생인 남동생이 확진됐다는 직장인 이모(26)씨도 “자가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지만, 회사도 나도 지침을 잘 몰라 일단 카페에서 근무하고 있다. 적어도 출근에 대해서는 정부 당국의 명확한 지침이 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7만1452명으로 급증한 지난 23일 대전의 한 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신속항원검사를 받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7만1452명으로 급증한 지난 23일 대전의 한 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신속항원검사를 받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확진자 폭증하는데 방역 완화는 무리수”

한편 방역 당국은 오는 3월 9일 코로나19 신규확진자가 23만명 이상 발생할 것으로 28일 전망했다. 정부가 확산세를 잡기 어려워지면서 사실상 격리 대신 일상생활 유지에 방점을 찍고 관련 지침을 완화하고 있다는 게 방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러한 기조에 맞춰 정부는 내달 1일부터 식당·카페 등 다중이용시설과 의료기관 등 감염 취약시설에 적용되던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시행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방역 지침이 짧은 주기로 계속 바뀌면서 시민들의 혼선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확진자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방역 지침을 완화하는 식으로 무리수를 두고 있으니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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