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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주민들 소 얘기 나오면 “발끈”(안희창기자가 본 평양: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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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달러 탐내 우리를 배반한 나라”/대남시각 「표준화」… 타협여지 안보여/「변화」는 고작 최상층부서만 보일듯 말듯
급변하는 국제정세하에서 북한 주민들은 외부세계 소식을 어느정도 알고 있을까.
또 어떤 방법으로 소식을 듣고 있으며 사태변화에 대한 반응은 어떤 것일까.
『차우셰스쿠가 죽었다는데 누구한테 피살당한 겁니까.』
기자단 숙소관리를 맡았던 김성호씨(36)의 질문이었다.
『인민들이 죽였다』고 하자 그럴리가 있겠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시 북한 보도매체들은 차우셰스쿠가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북한 정무원 원호사업 총국에 소속되어 있다는 김씨는 TV보도로 루마니아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중앙TV나 로동신문에서 외부세계 정보를 알게된다고 한다.
○“동구 몰락은 지도자 탓”
백화원 초대소의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김인호씨(24)는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9월초 북조선에 왔다간 후 한국과 소련이 수교한다는 보도가 로동신문에 난걸 보았다고 했다.
이들은 보도내용에 대해 매우 상세한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소련이 한국으로부터 23억달러를 받는다든지,북한이 일본에 36년 지배기간과 전후 45년에 대해서도 「보상」이 아닌 「배상」을 요구했다는 것 등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는 매주 토요일에 실시하는 「토요학습」의 성과라고 했다.
이들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계층은 보다 폭넓게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아는듯 했다
이들은 과거처럼 『사회주의 국가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식의 억지주장은 더이상 하지 않았으나 동유럽 공산당의 몰락은 전적으로 지도자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이 문제는 북한사람들에게 「위대한 수령」과 직접 연관돼 있어서 그런지 철저히 준비가 돼 있었다. 만나본 사람들의 1백%가 동구 몰락의 배경에 대해 훤할 정도로 그들 나름의 논리가 정연했다.
연형묵 총리ㆍ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ㆍ최문선 평양시 인민위원회위원장이 각각 주최했던 만찬장에서 만난 북한사람들이 그런 부류에 속했다.
지도자가 부패해 인민의 배반을 당했으나 북조선은 절대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역사발전 법칙에 따라 진행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긴 하지만 끝내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면서도 소련에 대해서만은 더이상 북한의 동맹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확고히 갖고 있었다.
○“중국은 배반 않을 것”
17일 인민문화궁전 앞길에서 만난 40대 남자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통일얘기 하러온 사람이 왜 소련얘기를 하느냐』고 쏘아붙였다.
로동신문 편집국의 한 간부도 『북남이 통일하자고 담화하는 판에 소련이 왜 남조선과 수교를 하려는지 이해 못하겠다』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평양 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대표단 숙소에서 접대원으로 있는 김순옥양(23)은 더욱 분개했다.
그녀는 18일 오후 식당에서 여러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소련은 미제가 제공한 달러를 남조선을 통해 받고 동맹국을 배반한 나라』라고 로동신문의 논평을 그대로 격한 감정에 담아 옮겼다. 다른 남자접대원에게 『만약 중국도 소련처럼 한다면 중국 역시 배반자가 되느냐』고 물어 보았다.
이 접대원이 머뭇거리자 김양이 가로막고 나서 『우리는 중국이 그러리라고 보지 않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와도 우리는 주체로 나간다』고 거들었다.
중국이 앞으로 한국과 수교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미 알고 신경을 쓰는 눈치가 역력한 대답이었다.
한 안내원은 『중국이 한 때 개방을 했다가 다시 교훈을 찾아 이제 사회주의 원칙을 지켜나가고 있으니 북조선과의 좋은 관계를 그대로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그리 자신에 찬 표정은 아니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일본이 북한에 완전히 백기를 든 것으로 모두 믿고 있었다. 북한 주민들은 일본이 뒤늦게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쳐 배상까지 하겠다고 나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미국에 대해서는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기자단 숙소 접대원 김양은 대학에서 영어를 공부한 것이 미제를 타도하기 위해서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미국과 북한이 화해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느냐』고 하자 『미제가 백기를 들고 무릅을 꿇으면 왜 안되겠느냐』는 식이었다.
주변 4대강국에 대해 한치도 타협의 자세를 보이지 않는 주민들을 가진 북한­.
그들의 말 그대로 자주ㆍ자립ㆍ자위의 건실한 국가인지,아니면 아직도 철부지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그들에게 사고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녹음기 듣는 것 같아”
남한에 대한 시각에서도 북한주민들의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다.
「미제식민지,빈부격차,자본가의 횡포,분단고정화 정책….』 지겹고 신물나는 표현 외에 새로운 말은 단 한마디도 들어보지 못했다.
국제관계에 대해서는 「지식」의 차이를 보이던 한단계 높은 계층의 사람들조차도 남한문제에서만은 접대원이나 관리원들과 시각차이가 없었다.
세차례의 만찬에서 20명 가까운 북측 인사들을 만났으나 그들의 고정된 대남 시각은 한마디로 「표준화」되어 있었다.
로동신문의 중견기자든,김일성대학 교수든,또는 당간부나 인민배우 같은 연예인이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마치 오래된 녹음기를 번갈아 듣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따라서 「남북」이라는 주제를 놓고서는 단 5분간도 대화를 지속시킬 수 없었다.
현재 북한의 변화란 결국 이제 겨우 봄가지에 움이 터오듯 최상층부의 일각에서만 보일듯 말듯한 수준에 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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