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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위기, 한반도 흔들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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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

현대에 블라다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만큼 약한 패를 갖고도 힘쓰는 지도자는 많지 않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핵무기를 보유한 주유소’라고 했듯, 경제적 생존은 석유·가스 수출, 국제적 영향력은 핵무기에 의존해서다. 푸틴은 러시아의 옛 영광을 회복하고 서방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기꺼이 국제질서와 안정을 위협하려 한다. 매케인 의원이 푸틴의 눈에서 K·G·B 세 글자를 보았다고 했다(※KGB는 소련 정보기관으로 푸틴은 요원 출신). 그의 말이 옳았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에 러시아군 10만여 명을 배치해 국제적 고립과 제재 위험을 자초했지만 이로 인해 나토 내 불거진 논쟁과 분열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끝나고 우크라이나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러시아군이 침공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2월 말이나 3월 초다. 1945년 이래 유럽에서 가장 폭력적인 지상전이 벌어진다면 그 지정학적 충격은 한반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러, 미와 경쟁 … 북에 도발 기회
한국 새 대통령, 안보동맹 힘써야

이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런 냉전식 적대감을 활용, 어떻게 북한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려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지난주 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은 이례적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 동맹을 비난했다. 중·러는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함께 대북제재 강화에 반대했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이 북한을 골칫거리로 여기기보다 미국에 맞서는 수단으로 본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러시아도 미국의 양보를 요구하는 북한을 지지한다. 중국이 푸틴을 돕기 위해 제재 중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를 수입한다면 중국이 러시아와 한편이란 극히 위험한 신호일 것이다. 현재 중국은 이런 지원을 할 가능성이 있다.

김 위원장이 최근 중·러에 대해 과장된 찬사를 늘어놓는 이유도 설명된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북한에 더한 기회를 줄 것이다. 유엔 안보리에서의 연대는 깨지고, 러시아의 침공 시기에 북한이 핵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재개할 수 있는데 그렇더라도 도발 대가를 덜 치르게 될 것이다. 나토에서의 안보협력 요구가 미국의 군사적 대응 능력에도 부담을 줄 것이다. 미군을 유럽에 더 전개해야 하고 정찰자산을 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 돌려야 한다. 1980년대 후반 김일성은 유럽이나 중동에서의 분쟁이 평양엔 한반도 통일을 할 절호의 기회란 연설을 했다. 현재 북한은 남침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미국도 당시와 달리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극적으로 다른 국제정세를 마주하게 될 수 있다. 지금처럼 지정학적 경쟁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대북관계를 위해 중·러에 유화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유혹이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실책이다. 중·러는 북한의 핵 야심을 늦추기보다 미국과의 동맹을 약화시키는 데 훨씬 더 관심이 많다. 섣부른 유화책은 한국이 미국 동맹 체제에서 이탈하는 것으로 호도될 수 있다.

새 대통령은 먼저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에서 한국의 중심적 위치를 보강해야 한다. 그래야 한반도 외교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한·미 동맹 및 억지력과 아시아 내 타 동맹국, 특히 일본·호주와의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나토·유럽연합(EU)과의 유대도 키워야 한다. 바로 지금이 ‘글로벌 대한민국’으로 돌아올 때다.

어느 시점엔 한반도 외교가 재개돼야겠지만 지금은 푸틴의 모험주의로 지정학적 긴장이 극히 악화할 수 있는 시기다. 힘과 제휴(alignment)가 대단히 중요해졌다. 제휴에 대한 결정이 복잡해지는 외부 환경을 관리하는 데 한국이 얼마나 힘을 가지는지에 대한 결정이란 걸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곧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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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