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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얘기인 줄…핀란드화에 경기 보이는 핀란드인들

중앙일보

입력

핀란드 국기가 수도 헬싱키에 나부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핀란드 국기가 수도 헬싱키에 나부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리 역사에서 그 시기는 진정 힘들었던 때였어요. 현재에도 부정적 울림이 큽니다.”

한국의 일제 강점기를 일컫는 말이 아니다. 핀란드 국제문제연구소(FIIA)의 미카 알톨라 소장이 뉴욕타임스(NYT) 9일(현지시간)자에 한 말이다. 알톨라 소장의 답은 일명 ‘핀란드화(Finlandization)’에 대한 NYT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핀란드는 약 700년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은 뒤 1917년 러시아 내 속국이 됐다가 독립했다. 자주권은 가졌으나 대외 정책, 즉 외교에 있어서는 러시아의 정책과 기조를 그대로 따랐다. 외교적 속국이 되는 길을 택하면서 인근의 대국으로부터 자주권을 지켜낸 케이스로, 이런 핀란드의 선택을 ‘핀란드화’라고 부른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한반도에도 울림이 큰 용어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핀란드화’가 다시 화두가 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을 두고 전운이 짙어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핀란드화의 길을 답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불을 본격 지핀 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다. 독일이 총리 교체 이후 외교적 침체기인 틈을 타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대륙의 외교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서면서,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를 선택지 중 하나로 언급했다. 우크라이나가 핀란드의 전철을 밟되 자주권은 보장받으라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핀란드화를 실용적 외교 해법으로 언급했으나 사실 이를 두고 핀란드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고 NYT는 전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8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만나 회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8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만나 회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NYT는 핀란드 수도 헬싱키발 기사에서 ‘핀란드화’에 대한 핀란드의 다양한 국민 층위의 반발심을 전했다. 알톨라 소장과 같은 외교안보 전문가는 물론, 장삼이사 역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핀란드화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게 NYT 기사의 요지다. 물론 NYT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해서도 강력한 비판을 해온 맥락을 고려해야 하긴 하지만 핀란드화를 엄연한 자주국가인 우크라이나에 권한 마크롱 등 일부 인사들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는 분명하다.

마크롱 대통령만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를 언급하진 않았다. 앞서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의 1라운드격인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당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핀란드화만이 살 길이라는 요지의 주장을 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역시 비슷한 맥락의 주장을 펼쳤다. ‘외교의 거인’들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주목은 받았지만, 역시 당시에도 비판을 받았다.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자주권을 지킬 만큼 국력이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미국 싱크탱 브루킹스연구소는 당시 보고서에서 “핀란드가 러시아에 비해 소국이라고 해도 1인당 국민소득은 4만7000달러(약 5620만원)이지만 우크라이나는 4000달러이며, 국가 청렴도 역시 우크라이나는 177개국 중 144위인반면 핀란드는 3위”라며 “우크라이나는 핀란드화를 고려할 국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헬싱키의 한적한 저녁 모습. 핀란드 국민들에게 '핀란드화'는 환영받지 못한느 말이다. 로이터=연합뉴스

헬싱키의 한적한 저녁 모습. 핀란드 국민들에게 '핀란드화'는 환영받지 못한느 말이다. 로이터=연합뉴스

핀란드의 민심은 핀란드화에 대해 반감이 상당하다. 한 40대 여성은 NYT에 “러시아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가족 내에선 금기”라고 전했다. 69세인 마티 히에르페는 “그 말은 계속해서 나온다”며 “러시아가 계속 자국의 영향력을 주변국에 확대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심지어 ‘핀란드화’라는 말의 뜻을 잘 모른다는 40대 여성도 NYT에 “말 뜻은 정확히 몰라도 부정적인 의미라는 건 안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는 러시아인이 아니다. 우리는 서구 사회에 속해있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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