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교장관, 3개월 만에 첫 통화…사도광산 놓고 설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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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정의용

정의용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3일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과 전화 통화를 갖고 일본이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데 대해 항의했다. 지난해 11월 하야시 외무상 취임 이후 3개월 만에 성사된 한·일 외교장관 간 첫 통화였지만 ‘협력’이 아닌 ‘갈등’이 부각됐다.

외교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정 장관은 올바른 역사인식이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근간임을 지적했다”며 “일본 정부가 한국인 강제노역의 아픈 역사를 외면한 채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추진키로 결정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함께 항의의 뜻을 표했다”고 밝혔다.

일본 니가타현에 위치한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동이 이뤄진 장소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이 17세기 에도 시대에 최대 금광이라는 점 등만 부각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정 장관은 또 2015년 하시마섬(端島·군함도)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일본 정부가 스스로 약속한 후속 조치부터 충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일본은 해당 근대산업시설에서 조선인 강제노역이 이뤄진 사실을 알리고 정보센터 건립 등을 통해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하야시 요시마사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이날 통화는 일본 측의 요청으로 약 35분간 이뤄졌다. 이 신문은 정 장관이 “(사도광산은) 한국인의 강제노동이 있었던 곳”이라고 언급하자, 하야시 외무상은 “한국 측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양 장관은 이날 최근 북한의 연이은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양 장관은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하고,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 및 조속한 대화 재개를 위해 한·일, 한·미·일 간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는 짤막한 내용만 보도자료에 담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안보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일 갈등이 대북 공조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지난 2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하야시 외무상 간 전화 통화에선 한·일 갈등 상황이 의제에 올랐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이는 과거사 갈등과 독도 영유권 분쟁에 더해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둘러싼 갈등까지 더해지며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데 대해 미국 역시 우려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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