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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연설 싸고 잠시 입씨름/남북총리회담 평양 둘째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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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산가족의 눈물 닦아주자”/환영 냉담한 건 “임양 등 석방 안한 탓” 소 기자 “평양 TV 보니 비관적” 송고
○“끝까지 잘해보십시다”
▷17일 회담◁
○…17일 오전 10시 정각 개막된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은 지난달 서울에서 열렸던 1차회담 때와 똑같은 형식으로 약 2시간 동안 진행.
비교적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개막된 회담에서 우리측 대표 강 총리와 북측 대표 연 총리는 본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10여분 동안 가벼운 환담.
회담장에 들어선 양측 대표들은 악수를 나누고 일단 자리에 앉았으나 사진기자들을 위해 양측 총리가 따로 악수를 나누며 포즈를 취했다.
▲연=『잘 주무셨습니까.』
▲강=『너무 조용해서 정신없이 잤습니다.
방음이 잘 되어서인지 새소리도 없더군요. 방이 넓어 춥지 않을까 했지만 따뜻하게 잘 잤습니다.』
▲연=『아침저녁으로 서늘하니 몸조심 하십시오. 어젯밤 영화구경 맘에 들었습니까.』
▲강=『맘에 들고 안들고 보다 처음 보는 게 많아 재미있게 봤습니다.
마지막 부분의 고구려 결혼식 장면은 잘 묘사했더군요. 요즘 북측에서 옛날 유적 발굴한다니 남쪽 학자들도 많이 와서 봤으면 좋겠습니다.』
▲연=『자주 거래하는 게 좋지요. 1차회의 이후 특별히 해놓은 건 없지만 민족단합을 이룩한 데는 도움이 됐습니다.
이번 북경대회에 유일팀이 못나가 애석했지만 공동응원이 실현돼 대회참가자는 물론 인민들에게 민족은 하나,조국은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강=『북측 사람들은 북측이 금메달을 12개 딴 것은 아는데 성적은 잘 모르는 것 같더군요.』
▲연=『경기는 승부대결이 아니라 단합이 필수적 아니겠습니까. 체육인들이 동경 탁구선수권대회와 바르셀로나올림픽에 단일팀을 보내기로 했다더군요.』
▲강=『처음엔 잘되다 마지막에 안되곤 했지만 이번엔 끝까지 잘해봅시다.』
○강 총리 “북에서 먼저 자극”
○…이날 강 총리와 연 총리는 예정시간보다 10여분이 지난 낮 12시10분쯤 회담을 끝내면서 서로 기조연설 내용을 놓고 잠시 입씨름을 벌이는 등 날카로운 신경전.
이날 강 총리가 북측에 대해 대남 적화노선을 포기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발언으로 기조연설을 끝내자 북측의 연 총리는 『서로 진실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상대방을 자극하면 문제가 해결되겠어』라며 언성을 높였다
연 총리가 타이르는 조로 『회담을 논쟁으로 해서는 안되며 대화로 해야 한다』고 하자 강 총리는 『북측에서도 우리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느냐. 어제 저녁 연회장에서는 서로 웃으며 잘 지냈는데 회담만 하면 왜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다』고 응수.
강 총리가 이어 『이것은 어디까지나 싸움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려는 것뿐』이라고 못박자 연 총리는 『내일 다시 보자』며 여운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나 이날 회담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종료.
○강 총리 북 언론태도 비판
○…양측 총리는 기조연설에 앞서 인사발언에 들어갔는데 연 총리는 『쌍방 대표단의 평양ㆍ서울방문은 비록 서로 초행길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 길에서 벌써 구면이 됐다』면서 『계속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 분단의 장벽도 허물어지고 통일의 서광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
강 총리는 『정치의 첫째가는 덕목이 국민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라며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을 적십자에만 맡기지 말고 책임있는 당국이 적극 나설 것을 촉구.
이어 강 총리는 기조연설에서 1차회담 때 북측의 주장과 언론 보도태도를 강경히 비판해 주목.
강 총리는 북측이 1차회담 때 문익환씨ㆍ임수경양 석방문제를 긴급과제로 제안,이 과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의제토의에 응하지 못하겠다고 한 점을 지적하면서 『북측이 통일을 명분으로 내정간섭적인 요구를 한다면 우리도 할말이 많다』고 반격.
강 총리는 또 우리측 주장을 거의 보도하지 않은 북측 언론을 겨냥,『그간 북측 언론은 남북간의 분단을 부추기는 유감스런 보도태도를 보여왔다』고 지적하며 『북측 언론은 불공평하고 편파적인 보도태도를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난.
강 총리는 이날 연설 벽두에 그동안의 정세변화를 설명하면서 북측이 2개의 조선이나 분열고착 운운하면서 일본과 교류한 것을 두고 『종전과 태도를 바꾸었다』고 은근히 일침.
○아침들며 전략 총점검
○…백화원초대소에서 평양의 첫밤을 보낸 우리측 대표단은 17일 아침 초대소 식당에서 한식으로 아침을 들고 고위급회담에 대비.
대표단은 회담시작에 앞서 숙소 회의실에서 1시간 동안 모임을 갖고 전략을 다시한번 점검한 뒤 오전 9시30분 숙소를 출발.
○…역사적인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린 인민문화궁전. 평양시 중구역 보통문동 부지 7만여평방m에 세워진 이 5층건물은 연건평 6만여평방m로 지난 74년 1월1일 개관되었다.
3천석 규모의 대회장,8백석 규모의 연회장과 문화후생시설 등을 갖추고 있으며 미술전람회ㆍ상품전시회 등이 열리고 음악ㆍ무용 등도 공연된다.
○외신기자 30여명 취재
○…남북고위급 평양회담의 첫날 회담장인 인민궁전에는 평양에 상주하는 소련ㆍ중국 특파원 10여명을 비롯,30여명의 외신기자들이 나와 취재했는데 평양측이 북경 상주 불가리아ㆍ독일ㆍ일본 언론기관의 몇몇 취재기자 10여명에게 입국을 허용하면서 상세한 브리핑을 해주지 않아 남한측 기자들에게 회담 진전상황을 묻기도 했다.
특히 이날 재미언론인으로 유에스 아시안뉴스를 발간하는 문명자 씨가 취재했다. 평양에 상주하는 소련국가 TVㆍ라디오의 벨로브 콘스탄틴 알렉세예비치 특파원은 16일 평양측 TV보도를 보니 회담전망이 「비관적」이라고 전망.
알렉세예비치 특파원은 평양 TV가 고위급회담을 짤막히 보도했으며 논평을 통해 남측 입장의 문제점만 지적해 자신은 평양회담이 성과없이 끝날 것으로 전망기사를 송고했다고 말했다.
이날 남측 기자실에는 소련 타스통신의 블라디미르 나다시 게비치 평양지국장 등 타스통신 기자 3명이 찾아와 『보도완장이 지급됐는데도 북한측이 회담장 취재를 불허한다』고 불평.
회담장 2층에는 남북 양측 기자실이 각각 설치됐는데 북측 기자들은 서울에서 온 기자들의 시각에도 신경을 쓰면서 폐쇄회로를 통해 기자실에 중계되는 회담 진행상황을 봤다.
북측 중앙통신ㆍ로동신문 기자들은 회담전 남측 강영훈 총리의 기조연설을 입수하려고 남측 기자실을 찾기도 했는데 회담전망에 대해서는 『서울서 약속했던 사람들(방북인사)의 석방이 안되고…』라면서 큰 기대를 걸지 않으면서도 『통일을 위해 좋은 결과가 나와야지요』라고 했다.
○“40여일 사이 격동체험”
▷첫날 만찬◁
○…16일 밤 북한 연형묵 총리 주최 만찬에서 연 총리는 약 6분간에 걸친 연설을 통해 『우리가 9월초 서울에서 첫 상봉한 이후 불과 40여일밖에 되지 않았으나 이 짧은 기간 동안 45년의 분단역사에서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격동적인 사변들을 거듭 목격하고 체험했다』며 북경아시안게임에서의 남북 공동응원,남북축구,음악인 방북 등을 열거하고 『통일의 함성과 환영의 박수소리는 상봉의 기쁨과 조국통일에 대한 뜨거운 염원의 분출이었다』고 강조.
연 총리는 연설에서 우리측 강영훈 총리를 두번 거명했으나 지난번 서울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총리」라고 부르지 않고 「수석대표 선생」이라고만 호칭. 북측이 강 총리에 대한 호칭을 일부러 「선생」이라고 하고 남한대표단 일행을 개성역이나 평양역에서 환영하는 행사를 갖지 않는 등 비교적 냉담한 자세를 보인 것은 남한정부의 정책과 관련있는 것이라고 북한측 만찬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설명.
조평통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냉대분위기는 남한정부가 임수경 양이나 문익환 목사 등 방북인사를 석방하지 않은 게 첫째 이유고,둘째 이유는 지난 13일 노태우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선언」 때문이라고 주장.
그는 문 목사가 어머니 병문안을 위해서 일시 석방됐을 때 조만간 공식석방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이런 기대가 무너져 『남한정부의 통일의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북측의 분위기를 전달.
그는 또 노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선언」은 통일을 외치는 젊은 학생들을 탄압하기 위한 것 아니냐며 이런 선언이 통일성취에 장애요인이 되지 않겠느냐고 우리측 기자들과 수행원들에게 질문.
그러나 우리 관계자들이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정부정책을 부정하고 개별적인 통일논리와 행동을 펴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두겠느냐』고 묻자 묵묵부답.
○…만찬이 시작된 지 1시간10분 가량이 지난 오후 9시5분쯤에는 북한의 만수대예술단이 등장해 만찬분위기는 더한층 고조.
특히 인민배우인 주창혁과 함금주가 노래한 춘향전중의 사랑가는 만찬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이들이 노들강변을 부를 때는 일부 참석자들이 가사를 따라 부르기도.<평양=안희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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