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7세 추행한 13세 시설 소년…억장 무너진 2년싸움의 결말

중앙일보

입력

“2년을 싸웠는데 80만원 배상금이라니…”

[사건추적]

7살 딸의 성추행 피해를 놓고 법정 다툼을 벌여온 김모(35)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2020년 초, 김씨의 딸은 잠시 시골 조부모댁에 머물다가 인근 아동보호 치료시설을 지나가다 한 소년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

피해도, 가해도 모든 사실관계는 명확했다. 그러나, 처벌은 없었다. 가해자 A(당시 13세)군이 형사상 처벌 대상이 아닌 ‘촉법소년’(觸法少年·10세 이상~14세 미만)이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동보호치료시설을 상대로 법정 싸움을 벌였다. “강제추행으로 신체적·정신적 피해자를 입은 건 우리 딸인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서다.

지난달 9일 드디어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김씨 가족들은 다시 억장이 무너졌다고 한다. 배상액이 사실상 80만원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기나긴 법정 다툼으로 가족들 사이 견해차가 커졌고, ‘우리 책임’이라는 죄책감마저 든다. 미칠 지경이다”라고 토로했다.

2020년 3월 김모양은 아동보호시설을 지나던 도중 시설에 거주하는 A군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

2020년 3월 김모양은 아동보호시설을 지나던 도중 시설에 거주하는 A군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

동일 범행으로 격리 중이었는데…

불행의 시작은 코로나19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딸의 초등학교 개학이 연기되면서 조부모의 집에 머물게 됐다. 2020년 3월 28일, 김양은 인근 다른 친척 집에 가기 위해 한 아동보호치료시설을 지나고 있었다. 이 시설에 거주하던 A군은 김양을 시설 안으로 데려가 강제 추행을 했다.

A군은 시설에서 여러 차례 성 문제를 일으킨 전력이 있었다. 사건 발생 한 달 여 전에는 A군을 우범소년으로 법원에 통고하기도 했다. 그해 3월 초엔 시설의 다른 아동을 추행했고 별관 2층에 격리해놓은 상태였다.

“감독 책임” vs “현실적 한계”

김양의 부모는 “A군에 대한 관리 감독 의무를 소홀히 했다”며 4000만원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시설 측은 “감독 및 교육 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시설 측은 “한정된 근무 인력과 가해 아동의 인권 보호 차원 등 현실적 한계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반박했다. A군의 성적 비행 행위 후 거주 아동들이 머무는 공간과 약 1㎞ 떨어진 별관에서 혼자 거주하게 했지만, 한정된 근무 인력으로 24시간 감시는 불가능했고 A군을 온종일 한 공간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A군의 상담 치료 등을 소홀히 하지 않고 범행 이후 조치를 한 만큼 감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1년 8개월 법정 다툼 끝에...

지난달 9일 대구법원 민사2부(부장 이영숙)는 1심 원고 패소 판결을 뒤집어 시설 측에 대해 500만원을 배상하고 소송 비용의 30%를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범행시간이 오전 일과시간이었고, 범행 이전에도 수차례 성범죄 행위를 저지른 만큼 시설이 A군에 대해 필요한 보호·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김양이 판단능력이 부족한 나이였지만, 보호자가 적절한 보호를 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2년 가까이 법정 다툼을 했지만, 변호사비를 제하면 사실상 받은 피해배상은 80만원이다”고 말했다. 배상액도 적었지만, 소송비용의 70%를 원고 측이 부담하게 되면서 그마저도 액수가 줄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어 “사건 이후 아이는 남자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어른들의 후유증 역시 심하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A군은 2020년 한 소년원 부속의원에 감호위탁 처분을 받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