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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용 “한·미, 종전선언 합의”에 미국은 명확한 확인 안해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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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 29일 “한·미 간 (종전선언) 문안에 관해 사실상 합의된 상태”라고 말했지만 미국 측은 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대북 외교에 전념한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놨다. 북측의 호응이 없는 데다 미국 정부 안팎에서 종전선언의 파급 효과가 만만찮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한·미의 종전선언 문안 합의 여부를 묻는 중앙일보 질의에 이날 “북한과의 대화·외교를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달성하는 데 계속 전념하고 있다”고 답했다. 종전선언 문안이 합의됐다는 정 장관의 발언이 맞느냐는 질문에 사실상 답을 피한 채 대북정책 원칙을 소개하는 동문서답에 가까웠다. 그는 “조정되고 실용적인 접근 방식의 일환으로 대북 관여를 지속해서 모색하겠다”고도 했다. 북한에 대한 기존 국무부 입장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았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종전선언과 관련한 한·미 온도 차가 느껴지는 데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한·미 양국은 그간 종전선언 추진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 아래 종전선언 문안에 대해 이미 사실상 합의에 이른 상태”라며 “종전선언 추진 방안에 대해서는 계속 협의 중이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11일 정 장관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미 간 (종전선언 관련) 상당히 조율이 끝났다”고 말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당시에도 “북한과의 대화·외교를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달성하는 데 계속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정 장관은 “상당한 조율” “사실상 합의” 등 점차 표현 수위를 높여가며 한·미의 종전선언 공조를 강조하고 있는데, 미국은 이견 조율 및 문안 합의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기계적 답변만 반복했다. 일각에선 정 장관이 “베이징 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로 삼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시인하면서도 한·미가 종전선언 문안에 합의했다는 내용을 공개한 것은 ‘성과 홍보용 메시지’의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종전선언 논의 과정에서 한국은 더는 미국의 이견이 나오지 않으니 ‘합의’라고 평가하지만, 미국은 한국의 입장을 청취하고 있을 뿐 합의나 동의로 보진 않는 동상이몽에 빠져 있을 수 있다”며 “바이든 행정부는 의회 내에서도 종전선언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협의 경과나 문안 합의 여부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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